스타트업은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고민은 친구의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초여름이었는데,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을 찾느라 종로3가에서부터 같이 걷던 중이었다. 친구는 내게 요즘 무얼 취재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모빌리티 스타트업과 택시의 갈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답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굳이 더 편해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택시 하시는 분들은 그럼 어떻게 해?” 나는 그때,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자율주행의 시대가 올 텐데 라거나, 외국에서는 이미 우버 같은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했는데 우리는 경쟁에 뒤처질 수 있어, 같은 이야기가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올 초만 해도 여론과 미디어는 ‘타다’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의 손을 들어주는 듯했다. 택시의 강경한 ‘타다 반대’는, 그 어떤 새로운 시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이 든 세대의 억지처럼 보였다. 소비자들은 타다로 인해 택시 서비스가 얼마든지 품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타다의 인지도도 올라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빠르게 반전됐다. 택시 기사 여럿이 목숨을 버렸다. 타다가 허용되면 100만 택시업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메시지가 무겁게 퍼졌다. 택시 업계의 타다 반대는 더욱 강경해졌다. 타다를 옹호하는 여론도 따라서 주춤해졌다. 그때 타다가 내놓은 메시지는,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였다. 여론은 빠르게 돌아섰다. 친구의 말도, ‘혁신’이라는 가치가 ‘생존권’보다 앞설만한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가치가 충돌할 때 사람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혁신가들이 보기에, 사회의 변화는 느리고 답답하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줬던 문제를 해결할 길이 보이는데, 혹은 글로벌 경쟁을 생각할 때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되어 낙오될 것이 우려되는데,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자는 요구에 더디게 응답하거나 때로는 저항한다. 자칫하면 혁신이 성공하기도 전에 기반부터 꺾인다.

스타트업 업계도 그 분위기를 읽었다. 지난 15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누군가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정부 위원회에서 일하며 기업이 아닌 관과 여론을 상대로 일하다 보니 ‘공감대 얻기’가 매우 중요하단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의장으로 있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나라같이 여론이 중요한 나라에서는 소비자가 곧 국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타다의 사태로 스타트업 업계가 배운 것이 있다면, 갈등을 이성과 논리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타다의 문제는 타다만의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 업계가 성장하고, 우리 사회 경제의 중요한 동력으로 커 갈수록 유사한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스타트업이 계속해 소규모 기업으로만 남아 있다면 경제에 던질 충격 역시 작기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없다. 그러나 이제 스타트업은 경제의 한 축이다.

플랫폼에서 일하는 이들을 노동자로 보아야 하느냐, 자영업자로 보아야 하느냐는 문제부터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대기업이 벤처캐피탈(CVC)을 만들 수 있게 은산분리의 예외를 허용해 달라는 주장까지 앞으로 스타트업 업계가 할 이야기들은 더더욱 사회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일들이다.

주장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의 논거가 모두 일리가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여론을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느냐다. 스타트업을 하는 상당수는 똑똑한 사람들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학을 나왔고, 외국에서 공부했거나 존경받는 직업을 가졌던 이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미래를 더 빨리 읽고 새로운 변화를 빨리 감지하니까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옳기 때문에 남들도 이를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설득은 어려워진다.

스타트업의 논거에 반대하는 이들도,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다만 그 혁신이 단기적으로 나의 밥그릇을 빼앗아갈 수 있을 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은 적다. 그 때문에 사회에 맞는 해결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 많은 이들이 ‘대체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예컨대, 사실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뉴스의 가치 중 하나라면 인공지능이 나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적어도 나보다는 오탈자를 적게 낼 것이다.

혁신을 당위의 문제로 설명하면 안 된다. 당위라는 것은 내 입장에서의 당위다. 지금은 경영도 중요하지만, 공감을 끌어내는 정치의 길도 모색해야 할 때로 보인다. 경쟁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설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앞으로 설득해서 풀어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옳다’는 이성이 아니라,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감성 아닐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4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