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 인기를 끈 건, 만화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만들어서다. 포털에서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에는 매일 수십편의 만화가 업데이트 된다. 독자들은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 있는 이 새로운 만화 형식에 빠르게 반응했다. 트래픽과 돈이 몰렸고, 그에 비례해 작품 수도 넘쳐난다. 작가들은 이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주 숨가쁜 스토리의 소재를 짧은 호흡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모든 작가들이 웹툰의 싸이클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호흡의 만화를 그리고픈 작가들에게 웹툰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버거운 무대다. 잘 팔리는 형태의 웹툰은 대체로 정해져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종이 만화 그것도 독립만화만 취급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생겼다. 사이드B. 카세트 테이프 뒷면을 일컫는 말인데, 주류가 아닌 만화를 다룬다는 뜻을 담았다. 운영자가 직접 읽어보고 추천할만한 만화들만 골라 판매하는 곳이다.

이 플랫폼을 기획하고 끌어가는 이는, 만화가 성인수다. 그 자신 역시 독립출판 만화를 그린다. 웹툰작가로 만화를 시작했는데, 일주일마다 작품을 업데이트 해야 하는 빠른 싸이클을 도대체 제정신으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독립출판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의 만화 ‘바로크 바로크’를 텀블벅 펀딩을 받아 출판했고, 막상 책을 내놨는데 팔 곳이 없어서 직접 플랫폼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세상에, 독립만화 출판이라니. 먹고는 살 수 있을까? 성 작가는 무엇을 하고파서 무모해보이는 이런 일을 벌였을까. 18일, 서울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성 작가를 만났다. 그가 말했다. “웹툰판에서는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작품성은 논할 가치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쉬웠다”고.

 

성인수 작가. 검은 중절모에 넥타이, 흰 셔츠가 오피셜 룩이다.

 

우연히 마주친 걸 포함해서, 성 작가를 오늘로 세 번째 본다. 볼 때마다 중절모에 흰 셔츠, 검정 넥타이 차림이라 한 번에 알아보겠더라

평소 오피셜 룩이라고 부른다. 만화와 관련한 비즈니스를 하러 나올 때는 항상 이렇게 입는다. 어디서나 나를 쉽게 알아보니까 좋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인터뷰를 보니까 옷 고르는 게 너무 귀찮아서 매일 같은 스타일을 입는다고 하더라. 나도 좀 그렇다. 왜 옷을 고르는 데 신경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처럼 천재라는 건 아니다(웃음). 밥도 매일 먹던 걸 먹는다.

주로 무얼 먹나?

한솥 도시락(웃음).

회사 얘길 했는데, 만화가 말고 또 다른 일을 하나?

격일 출근을 한다. IPTV 회사에 다니는데, 영상을 업로드 하고 관리하는 팀에서 일한다.

하는 일이 많다. 만화가에, IPTV 직원까지. 또 하고 있는 일이 있나?

독립만화사인 인수니즘 코믹스의 대표이고, 독립만화를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이드B를 운영한다. ‘만화클래식’이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웹툰인사이트에서 만화 리뷰를 쓰는 칼럼니스트다. 아! 고양이 집사기도 하다(웃음). 네 마리를 키운다.

스스로를 웹툰 작가가 아니라 만화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면?

일단, 웹툰은 만화 안에 속해 있는 카테고리다. 그런데 요즘은 상위 개념처럼 쓰이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웹툰이 싫다는 게 아니라, (잘못 쓰이는 개념을) 바로 잡으려는 거다. 책이나 모바일, VR 등 무얼로 보든 만화는 만화다. 또, 내가 지금 웹툰을 하지 않는데 웹툰작가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만화가가 아니라 웹툰작가야”라는 부심 강한 분들도 있고.

세상이 많이 바뀐거 같다. 예전에는 출판만화를 그렸던 분들 부심이 더 강했던 것 같은데

시장 크기에 따라 다른 거 같다. 돈을 어디서 더 많이 버냐 하는 것.

만화를 일본에서 시작했다

내 작품이 유니크해서 한국에서 안 받아줬다. 그럼 혼자 만들어볼까 하던 차에, 지금 웹툰인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세인 대표가 일본의 아는 사람과 연결해줬다. 일본 현지 웹툰 플랫폼에서 “한국 웹툰 작가 중 유명하진 않지만 괜찮은 작품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몇 작품이 추천됐고 그 중에 내 작품이 있었다. ‘세번째 삶’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일본 플랫폼에서 연재해보고 싶다고 해서 연결됐다.

일본에서 연재해 본 경험, 그리고 웹툰을 연재해 본 경험은 어땠나?

일본 플랫폼과 직접 일하진 않았다.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팀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과 뭐가 다르다, 이런 걸 확 느낄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웹툰 사이클이 정말 안 맞다는 걸 느꼈다. 여유가 있어야 작업이 되는 편인데, 일주일에 한 편은 정말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만화를 택했나?

웹툰 사이클은 안 맞는데, 만화는 계속 하고 싶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스토리를 만들어 낼 범주가 굉장히 좁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스토리나 개성을 가진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웹툰판에서는 수익을 내지 못하면 작품성은 논할 가치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쉬웠다.

게다가 제작 속도가 소비 속도를 절대 못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스튜디오 작업을 많이 하지만, 개인이 웹툰 시장에서 제정신으로 이 속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인간한테 어울리지 않는 속도다. 그런 식으로 소비해서, 10년 뒤에도 작가들이 새로운 걸 만들 힘이 생길까? 나는 좀비 같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괜찮은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독립출판 만화를 생각했다. 출판은 만화판에서도 사양 산업이라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빨리 만들라는 사람도 없었다.

출판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독립만화 판매 플랫폼인 사이드B를 만드는 데까지 발전한 건가?

내 만화 ‘바로크바로크’로 텀블벅 펀딩에 성공해서 책을 냈는데 팔 데가 없었다. 일반 독립서점도 만화보다는 에세이나 포토북이 대세였다. 독립서점에서 만화가 메인 테이블에 올려 있는 경우도 거의 못 봤다. 이 세계에서도 만화는 옆으로 치워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내 책도 팔 겸, 그런 분들도 규합할 겸 해서 사이드B를 만들었다.

사이드B가 지난 3월 문을 열었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나?

많이 팔리진 않는다. 처음 만들 때부터, 책을 파는 걸 주력으로 수익을 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실력이 있는데 독립 출판하는 사람들을 다 찾아내서 규합해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다. 만화로 전시를 연다거나, 팟캐스트를 한다거나, 워크샵을 연다거나 등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한다. 궁극적으로는 작품 자체가 많이 팔려야겠지만, 그단계까지 가기에는 10년 정도는 봐야 할 것 같다.

사이드B에는 지금 몇 개 작품이 올라가 있나?

작품은 스물다섯개에서 스물여섯개 정도가 올라가 있다. 참여한 작가님들은 스무분이 조금 안 된다.

판매하는 책을 직접 리뷰하고 나서야 입고한다고 들었다

일단 다 본다. 텀블벅 펀딩에 올라온 작품을 보고 이 작가가 뭘 하고 싶은 지를 살핀 후 입고하는 경우도 있고, 서점을 돌아보면서 찾기도 한다. 사이드B는 나 말고도 이재민 평론가, ‘안티피터팬’을 그린 이안(IAN) 작가까지 세 명이 상의해 작품을 입고한다. 최종 결정은 내가 하지만, 그분들과 철학적 가치를 공유하고, 어떻게 운영하고 나아갈지 이야기 한다.

좋은 만화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좋은 만화라기보다는 웹툰과는 다른, 출판만화의 매력을 가진 작품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웹툰은 드라마 문법이다. 다음 편이 궁금하게 끝나야 한다. 크고작은 사건이 이어져야 한다. 반대로 출판은 영화 문법이다. 대부분 한두권 내로 나온다. 큰 사건 하나에 주인공의 감정기복으로 작품을 이어나가는 구조다. 지금 당장은 그런 (영화적) 서사를 강하게 가진 작품을 입고한다. 그 기반이 쌓이고 나면 다른 특색을 가진 만화도 입고 하려 한다. 만화책만 다룬다기 보다는, 만화같은 그림을 볼 수 있는 동화책도 고민하고 있다.

독자 반응은 체감할 수 있나?

소비 자층에서 반응은 거의 없다. 지금 당장 논할 단계는 아니다. 최소 3년은 걸릴 거라고 본다. 그런데 공급자 측면에선 반응이 있다. 각종 만화 페어를 가거나, 혹은 플랫폼 운영자나 만화 출판 관계자를 만나면 사이드B를 다 알더라.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칭찬도 해주신다. 수익이 안 되기 때문에 자기들은 안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씀들을 하신다.

독립만화로 생존할 수 있다고 보나?

앞으로도 쭉 어렵지 않을까.

사이드B 화면 갈무리

 

 그런데도 독립출판 만화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웹툰의 타깃층은 소비를 굉장히 빨리한다. 싼 값에 빨리 빨리 소비하는 사람을 많이 모아서 수익을 낸다. 그런 소비는 출판만화에선 어렵다. (만화가) 빨리 소비가 안 됐으면 좋겠다. 소비 속도가 사람의 속도와 맞았으면 좋겠다.

빨리 그리고 다음, 빨리 그리고 다음. 이게 지금 콘텐츠의 소비 속도인데 끝나고 나면 기억을 못한다. 문화적 측면에서 허탈감을 느낀 것 중 하나가 인기 드라며였던 ‘스카이캐슬’이 끝난지 3~4개월 밖에 안됐는데 사람들이 다 까먹었다. 그 엄청난 드라마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고 있고, SNS에 김서영 씨 얼굴 한 번 안 올라온다. 염정아 씨가 연기를 그렇게 잘했는데, 필모그래피를 따라가서 작품 구경을 해도 최소 6~7개월은 걸릴 거다. 그런거는 하나도 없고 “아, 재미있다”가 끝이다. 그런 분들을 타깃으로 하고 싶진 않다.

독자들에 사이드B를 알리는 것도 급한 일 같은데, 방법을 세운 게 있나?사이드B를 알릴 방법을 세운 게 있나?

세달, 여섯달, 열두달로 잡았다. 첫 석달은 SNS를 통해서 사이드B를 알리는 거였다. 그리고 이제, 7월 19일부터 한 달간 전시를 한다. ‘전시공간’이라는 곳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작가님들께 단편 만화를 부탁해서, 이 공간에서만 볼 수 있게 하는 거다. 그리고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다 모아서 텀블벅 펀딩을 할 예정이다. 펀딩 이후에는 판매를 하지 않는다. 웹툰이나 다른 만화는 계속 찍어내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만화들이다. 반대로, 희소성 있는 방식으로 가는 것도 필요하다. 작가들을 규합해서 하고픈 일 중 하나가 전시고, 다른 전시들을 계속 할 거다. 내년부터는 독립페어를 할 생각인데, 그런 걸 통해서 알려지게 될 것 같다. 팟캐스트도 하고 있고. 한 번에 유명해지자, 이런 건 없다. 천천히 계속해서 꾸준히 가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딱 그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만화라니, 멋지다. 정확히 웹툰의 반대 지점 아닌가

그렇다. 그리고 전시만 하지도 않는다. 그 기간에는 주말마다 작가를 모셔다 토크쇼를 할 생각이다. 퀴어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의 토크쇼나, 독립만화 잡지 ‘쾅’을 만든 최재훈 작가가 ‘독립출판 만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 할 예정이다. 족발집 망치사건을 만화로 그린 작가를 모셔서 사회적 사건과 만화를 어떻게 연결해 고민할 것인지도 논의해 보고,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여성 정치인의 일대를 만화로 그린 바지 작가가 당시 독일의 정치 철학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기도 할 거다.

사이드B가 독립출판을 하는 만화가의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는데, 구심점이 생기면 어떤 점이 좋을까?

일단, 독립출판 만화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투잡, 쓰리잡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만화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 분들에게 어느정도 수익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알바를 세 번 뛰어야 하는 걸 두 번만 뛰게 한다 거나. 두번째는, 작가는 여유가 있어야 무언갈 할 수 있다. 그 여유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비즈니스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규합하고 설명하는 걸 어려워하지만 만화는 좋아하는 작가들을 대신해 사이드B가 좋은 만화를 소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플랫폼 이름이 왜 사이드B인가? 마치 테이프 뒷면을 일컫는 말처럼도 들린다

맞다. 그 의미다. 여러 의미가 있다. 사이드A는 대부분 메인 스테이지를 의미한다. 저희는 사이드B라고 이야기 할 수 있고. 나중에 사이드A란 이름으로 뭔갈 할 여지도 있다.

사이드A로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아마도 디지털이 될 거다. 책 판형인데 웹에서 볼 수 있다거나. 지금까지는 그런 것이 대부분 스캔본이었다. 별로 소구력이 없다. 디지털로만 되어 있는 만화를 만들어 볼까 고민을 해보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직업이 많다. 그중 어느 일이 가장 즐거운가?

어느 직업을 가져서 행복한 게 아니고, 성인수가 성인수를 잘 활용해서 무언갈 하는 게 즐거운 거 같다. 30대가 많이 하는 말이 “내가 잘 하는 거,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아닌가?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를 놓쳐본 적이 없다. 하고픈 걸 하면서 살았다. 크면서 “이게 참 큰 로또구나”라는 걸 알았다. 성인수가 성인수를 잘 알고, 성인수가 하고픈 걸 하는게 가장 기분이 좋다.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사이드B가 지금은 제일 좋다. 다른 일들은 개인적으로 하는 거지만, 사이드B는 다른 작가들에 도움이 된다. 성인수가 만화를 그리거나 안 그리거나 만화판에 큰 차이는 없지만, 사이드B는 그렇지 않다. 분명 영향력이 있다.

회사를 다닌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만화를 계속 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직장을 구한 건가?

원래 부산 사람인데, 아는 선배가 인디 영화를 찍을 감독이 없다고 해서 서울에 올라왔다. 원래 애니메이션 영상을 전공했다. 서울에 올라와 선배 집에 한 달 정도 눌러 앉았더니, 취직을 시켜주더라. 그래서 서울에 살게 됐다. 그때는 웹툰이 막 붐업되고 이럴 때라 2년 안에 웹툰으로 정규 작가가 되서 밥벌이가 되면 서울에 남고, 안 되면 부산에 내려가 조용히 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년 만에 (회사) 정규직이 됐다. 그러고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 그러면 품위유지비를 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다니고, 쉬는 날에는 뭔갈 해볼 수 있지 않을까로. 그런데 그게 어렵더라. 한 2년 간은 하루 일하면 하루 쉬고 싶더라(웃음).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고, 고양이를 기르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지금 같은 셋팅을 하게 됐다. 그리고 회사 일도 나름 즐겁다. 오래된 영화나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직장 아닌가.

엇, 만화를 그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다니다 보면 즐거운 이유 생기지 않나? 밤에 일하다보면 짬이 나는 시간이 있다. 그때 헤드셋 끼고 영화 한 편을 본다. 나같은 사람은 나름 포지셔닝을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의 회사다.

그런데, 만화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만화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나?

본인이 본인을 잘 알 거다. 대중적으로 소구력 가진 작가인지 아닌지 한두번 해보면 안다. 작품은 시대의 선택을 받는 거라, 인기가 있는 작품이 있으면 인기가 없는 것도 있다. 최상위로 올라갈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겜블(도박)에 굳이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저는 개성이 강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개성을 찾을 방법을 찾자고 생각했다.

만화만 그려서 먹고 사는게 자신에 맞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해도 되고, 아니면 나처럼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자기가 그리고픈 만화에 대한 배반이나 배신은 하면 안 된다. 그게 첫 째다. 그걸 위해 어떤 형태를 택할지는 부차적 문제다. 나이가 오십, 육십,칠십이 되어도 만화를 하고 싶다면, 그런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돈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건, 독자한테는 물론 작가한테도 이롭지 않다. 자기에 맞는 포지셔닝을 해야 한다. 행복할 방법을 찾자.

나이가 오십 육십 칠십이 되어서도 만화를 그릴 생각인가?

평소에 얘기할 때는 만화가라고 하기 보다는 예술가라고 한다. 파인아트(순수미술, 성 작가는 그중 유화를 그렸다)나 애니메이션, 영화 작업도 했었다. 그러다가 만화가 좋아서 온 케이스라, 예술가라고 얘기를 한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흘러나오는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음악에 어울린다고 하면, 기타치면서 작곡을 하는 거고 유화에 어울리면 그려서 전시를 하는 거다. 글이 어울린다 싶으면 글을 쓰고, 만화가 어울리면 만화를 그린다. 요 몇년은 만화가 제일 좋았다.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하겠다.

성인수의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내가 하는 독립만화 출판사 ‘인수니즘 코믹스’의 모든 작품 기조는 ‘생각을 선물하고 싶다’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생각을 안 해도 되는 작품이 인기가 많다. 나는 그건 안 맞는 것 같다. 어벤저스보다는 쓰리빌보드 같은 영화가 더 좋다. 어벤저스도 즐겁게 보긴 하지만, 쓰리빌보드처럼 생각할 거리가 있는 영화가 좋다. 앞으로 인공지능이나 기술 진보가 일어나면 돈만 내면 다 해주는 시대로 변해갈텐데, 사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소비자로만 남지 않을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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