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잃은 화웨이, 기술적 문제인가 정치 싸움인가, 국내에는 호재인가

화웨이 사태가 연일 화제다. 구글, 인텔, 퀄컴에 이어 ARM까지 화웨이 공급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이외에도 각국 통신사들이 화웨이 제품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사실상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웨이가 현재 처한 기술적 문제는 무엇일까.

 

 

안드로이드 부재

지난 기사에서 밝혔듯 화웨이는 오픈 소스인 안드로이드(AOSP)는 사용할 수 있지만 구글의 킬러 서비스들, 지메일, 구글 드라이브, 구글 맵, 플레이 스토어 등을 사용할 수 없고, 구글이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보안 업데이트나 AI 카메라 기능 등도 활용할 수 없다.

 

ARM의 보이콧

ARM 칩셋은 흔히 영국 ARM 홀딩스에서 설계하는 명령어 세트와 ISA(Instruction Set Architecture)를 말한다. ARM은 1980년대 등장한 기업이지만, 고성능 저전력 설계로 스마트폰 등장 이후 대세가 된 기업이다. 스마트폰 크기에 맞춰 작은 구조 하나에 칩셋을 모두 적용해 ‘임베디드의 제왕’으로 불린다. ARM은 팹리스(Fabless) 업체로, 설계와 기술 개발만을 담당할 뿐 생산은 직접 하지 않는다. 엔비디아나 AMD, 미디어텍, 브로드컴 등도 팹리스 업체다. 이 설계를 사서 생산하는 업체는 퀄컴, 삼성전자, 애플, TI(Texas Instruments) 등이 있다.

문제는 ARM 설계의 ISA 점유율이다. ARM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인텔의 여러 제품이 있었으나 이 제품들은 주로 태블릿이나 작은 노트북용으로만 사용됐다. 별도의 ISA라면 오픈 소스 기반 RISC-V(리스크 파이브)가 있다. UC버클리에서 개발된 오픈 소스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6월, ARM이 RISC-V 대응 마케팅 웹사이트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전 세계를 호령하는 ARM에 대비해서는 개발 환경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화웨이가 RISC-V를 인수한 후 ARM과 대비될만한 개발 환경을 갖추는 수가 있는데, 인텔도 포기한 모바일 시장에서 이러한 거대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ARM은 이미 소프트뱅크에 피인수돼 자금 역시 충분하다.

ISA는 명령어를 집합해놓은 지적 자산(IP)이다. 즉,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를 만드는 모든 방법이 설계도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화웨이는 이 설계도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화웨이의 자체 프로세서인 기린(Kirin) 시리즈도 ARM 설계를 사용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호재일까

현재 증권가에서는 호재와 악재라는 말이 동시에 돈다.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다양한 그룹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반도체 면에서는 일부 하향세가 예측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전체의 3%, 메모리 칩에 한정하면 10%의 매출 규모라고 평가돼 있으나 전반적으로 화웨이 매출 비중이 크지 않다. 하이닉스의 경우 매출의 4%가 화웨이향이라고 한다. 큰 매출 감소로 보이진 않지만 시장 자체 경기가 하향할 수 있다. 반대로 마이크론이 화웨이에 공급을 중단할 경우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마이크론은 미국 반도체 업체로,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와 더불어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불린다. 마이크론의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트집을 잡아 아이폰 불매를 단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전체의 메모리 반도체 매출에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이 아이폰 불매를 단행할만한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정치에서는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도 타격이 있다. 화웨이의 경우 (주로 유럽)수출용 폰에 OLED를 탑재하는 비율이 높고, 아이폰의 OLED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이 물량들을 대부분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기나 LG이노텍 등의 카메라 모듈 판매량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무역 전쟁을 계속할 경우 삼성전자가 큰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대다수다. 지난해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판매 점유율은 31%, 화웨이는 27%였다. 두 업체를 합치면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27%의 유럽 안드로이드 사용자가 모두 삼성이나 LG 폰을 쓸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익숙한 아이폰으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 원래 안드로이드 사용자라고 해서 안드로이드, 아이폰 사용자라고 해서 아이폰만 쓴다는 발상을 하기에 두 OS간 이주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점점 닮아가는 경향도 있다.

중국 시장에서 아이폰이 철수한다는 최악의 가정을 해봐도 삼성전자에게 큰 호재일지는 의문이다. 2018년 중국에서 삼성폰 점유율은 1% 미만이고 중국에는 오포, 비보, 샤오미 같은 전 세계 10위 내 업체들이 즐비하다.

통신장비 측면에서는 화웨이(화웨이는 원래 통신장비 기업이다)의 영향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를 삼성전자가 가져올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 제품을 일부 사용한 LG U+ 역시 보안 문제가 없다고 조치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의 5G망 구축에는 화웨이 대신 에릭슨과 삼성전자의 제품을 사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제는 이미 기술과 보안 문제를 넘어섰으므로 중국 정부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예측 자체가 대부분 무의미할 수도 있다.

 

중국과 미국은 합의할 것인가

2018년, 중국 2위 통신장비 업체인 ZTE가 미국의 대 이란·북한 제재를 위반했다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라는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퀄컴과 인텔, 브로드컴 등 미국 업체들과의 통화나 기술 교류가 전면 금지된 상황이었다. ZTE 역시 핵심 기술을 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 또한, 미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4위에 오르기도 했다. 업체 제재 원인은 ZTE가 미국의 권고를 어기고 북한이나 이란과 불법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ZTE는 파산 위기까지 몰렸으나, 중국 정부가 중재에 나서 ZTE가 미국 정부에 10억달러 벌금을 내고 10년간 미국의 감시를 받는다는 조건을 걸어 폐업을 모면했다.

화웨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ZTE처럼 굽히지 않고 정면 돌파한다는 입장이다. 런정페이(任正非) CEO는 “미국 기업들에 감사한다”며 사건의 핵심을 미국 기업이 아닌 정치인들로 선을 그었다. 동시에 “화웨이는 미국 없어도 세계 1위 기업”이라며 OS와 하드웨어 등을 준비해 정면 돌파할 것임을 시사했다. 런정페이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은 미국 정부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 23일,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미 농가 지원계획을 발표하며 “중국과의 합의에 화웨이 문제가 포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 이슈를 카드로 들고 있는 것이다.

즉, 실제 백도어의 여부 혹은 기술력과 무관하게 화웨이 이슈는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정치 싸움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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