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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드리고, 이건 마치 세탁계의 애플

싱글에게 세탁소가는 일은 가끔 가혹하다. 아침엔 열지 않고 야근하고 오면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배달 서비스를 사용하기엔 양이 많지 않고 배달 가능 시간에도 집엔 아무도 없다. 주말엔 당연히 세탁소도 쉰다. 그럼 난 대체 언제 드라이클리닝을 맡긴단 말인가.

앱 서비스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세탁특공대나 리화이트 등장 이후 시간대에 대한 불편은 사라진 셈인데, 이 두 서비스에는 장기간 내가 사는 지역이 서비스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도 세탁특공대는 서비스하지 않는다. 리화이트의 경우 주변 세탁소에서 가지러 오는 시스템이므로 가능하다. 그런데 집은 마포구인데 영등포구나 은평구에서 물건을 가지러 온다. 세탁소 사장님이 직접 오기 때문에 역시 시간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상생하는 의미에서 시간만 맞는다면 리화이트를 사용해왔다.

최근 등장한 런드리고는 비대면 서비스다. 요즘 잘 나가는 서비스인데, 사람 대신 옷장이 배달된다. ‘런드렛’으로 부른다. 내부에 옷걸이, 속옷 세탁망, 물빨래 수거함, 안심고리 등이 들어있다. 이걸 통틀어서 웰컴키트로 부르는데, 마침 서비스 가능 지역이라 웰컴키트를 받아봤다. 앱에서 가입 후 배송신청까지 할 수 있다. 현재 서비스 지역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다.

런드렛은 이렇게 생겼다

런드렛의 키는 생각보다 크다. 1m는 넘는 느낌이다. 열어보면 강한 철제 프레임 위에 천이 씌워있는 형태다. 이렇게 단단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 옷을 배송받으면 이유를 알게 된다. 지퍼 끝에는 블루투스 잠금장치(스마트키)가 있으며, 런드렛을 통째로 훔쳐 가는 것을 방지하는 안심고리도 들어있다.

주문은 앱에서 한다. 정기사용과 자유이용이 있는데, 각각 정기결제와 온디맨드 방식이다. 빨래나 드라이클리닝 거리가 자주 발생하지 않으므로 자유이용을 택했다. 와이셔츠 세벌과 정장 두 벌을 맡겼다. 가격은 총 1만8000원으로 동네 세탁소보다 비싸지 않다. 옷을 넣고 앱으로 잠근 후 배송요청을 누르면 런드렛을 통으로 수거해간다.

옷을 보낼 땐 이렇게 대충 던져놓았다

세탁물은 24시간 내 세탁 후 배송이 된다고 한다. 수거는 밤 12시 이후에 하는데 언제 가져가는지 몰래 지켜봤다. 정확하게 12시 23분에 가져갔다. 그런데 알림톡으로 25분에 카톡이 왔다. 알려주는지 모르고 훔쳐보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밤 12시가 넘어서 물건을 수거해갔다

관건은 다음날 몇시에 오느냐다. 일단 12시를 넘겨도 출근 전에만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런드리고를 무시한 처사다. 제품은 저녁 8시 55분에 와버렸다. 밤약속에도 입고 나갈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20시간만에 드라이클리닝이 다 돼서 왔다는 의미다. 런드리고는 세탁을 스마트팩토리(강서구 위치)에서 한다. 빨래에 대한 노하우, 물류에 대한 노하우까지 모두 갖고 있음을 결과물로 확인할 수 있다.

도착한 시간은 자정보다 훨씬 전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런드렛을 열어봤다. 그런데 앱 스마트키로 여는 잠금장치가 열리지 않는다. 여러 번 시도해도 열리지 않아 동봉되는 스페어키로 열어야 했다. 런드리고는 앱 내부에 동영상 가이드를 꾸준히 갖춰놓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영상은 없었다. 기자처럼 손 없고 발만 네개 달린 이족보행하는 사람을 위해 잠금장치가 열리지 않을 때의 영상도 준비해주면 좋겠다. 혹은 AI 챗봇으로 이러한 사안에 대해 질문할 수 있으면 더 좋은 느낌이 들 것이다.

상단에 스마트키 버튼이 있다. 앱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런드렛과 연결된다
블루투스 스마트 키가 작동하지 않을 때는 이렇게 스페어 키로 열어야 한다

결과물은 완벽하다. 세탁소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고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나 말고 런드리고가) 옷에 덜 지워졌다는 태그를 붙여 놓았다. 사실 이 태그가 없으면 몰랐을 것이니 밝히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곱게 갠 세탁물들을 걷어 바로 내 옷장에 걸어놓기만 하면 된다. 물빨래는 맡겨보지 않았지만 물빨래도 개서 온다고 한다. 예쁘게 갠 빨래를 보면 쾌감이 들 것이다.

런드렛에 맞게 완벽하게 개서 온 옷들이 차례대로 걸려 있다. 고급 서비스의 느낌을 준다
얼룩이 남은 부분이 있다면 태그가 붙어 있다. 사실 내 눈으론 잘 모르겠다

약간 불편한 점은 옷걸이다. 내구성 문제가 아니다. 다음 세탁에 옷걸이를 돌려보내야 하는지 여부를 앱 내에서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옷걸이를 돌려보내야 한다면 곱개 잘 개진 와이셔츠를 빼서 다시 다른 옷걸이에 걸어야 한다. 무언가가 묻을까 봐 신경이 쓰인다. 서비스 완결성에는 해가 되는 느낌이다. 고객센터에 이 부분을 문의했더니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도록 소독해서 재사용하니 돌려보내 달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 경우 옷걸이를 모아서 보내는 옵션이 있거나 돌려보내지 않아도 되는 철사로 만든 옷걸이를 주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본다.

세탁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결제 시점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물건을 확인하고 앱에서 확인 버튼을 눌렀을 때 결제가 된다. 놀란 점이 있는데, 쿠폰이 있어서 7000원 할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총 결제된 금액은 1만1000원이었다. 처음 주문 시 쿠폰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더 기뻤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격을 확인할 때 쿠폰을 줬다며 생색내기를 기원한다. 무심한 고객은 처음부터 1만1000원인 줄로 이해하고 다음번에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예상치 못한 할인 내역이 있었다

직접 사용하며 느낀 런드리고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눈감았다 뜨면 도착하는 수준의 배송 속도, 기존 세탁소 대비 낮은 가격, 비대면 서비스, 세탁물의 안전, 카카오톡을 통한 CS 및 알림 기능까지. 유일한 단점이라면 런드렛이 생각보다 커서 크지 않은 집이나 복도형 주택 등을 사용한다면 그 존재감이 신경 쓰인다는 것 정도.

장점들 사이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앱을 통해서 대부분의 처리가 가능하고, 이 처리가 완결성 있다는 것. 이럴 때는 클리셰처럼 이런 말을 붙인다. 세탁계의 애플이 등장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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