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토론회라는 것은 원래 대체로 지루하지만, 잘 듣다보면 현장 목소리와 정책 결정자의 인식 차를 알게 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음. 가끔씩은 토론회를 씨앗으로 새로운 논의를 이끌어내기도 함. 세금 내는 입장에서,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기도 함. 23일 국회에서 열린 ‘국내 스타트업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토론회에 다녀온 관계로, 기업에 남는 이야기를 전달하겠음. 사실, 토론회 자체는 아주 진지하고 정중하게 이뤄졌는데, 발언 내용을 왜곡하지 않는 한에서, 쓰는 사람 마음대로 얘기해보겠음.

토론회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줄여서 코스포)하고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 강병원 의원이 함께 열었음. ‘혁신성장,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지난 8일 열린 토론회의 후속 버전임. 지난 번에는 O2O, 모빌리티, 핀테크 분야 스타트업의 현실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주로 투자나 규제, 글로벌 경쟁력 같은 전반적인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얘기를 함.

 [이전 토론회 관련기사: ‘플랫폼 일자리’와 ‘긱 일자리’ 사이, 정부의 답변,  주민번호 딜레마에 빠진 핀테크 업계]

(왼쪽부터) 김영덕 롯데엑셀러레이터 상무, 유병준 서울대 교수,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훈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권대수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국장. 사진 보면 알겠지만, 이분들은 매우 점잖은 분들임.

 

일단, 이 토론회를 왜 열었는지부터 알아야 함. “스타트업이나 혁신 산업이 국내 경제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치고 성장을 이끄는데, 평가는 박하다”는 의식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관통하고 있어 보임. 솔직히 스타트업으로 인한 경제 유발 효과가 얼만데, 왜 만날 갈등이 일어나기만 하면 스타트업부터 때리냐, 이런 거지. 만날, 해외 스타트업 성공 사례는 엄청나게 보도하고 칭찬하면서, 국내서 잘 하고 있거나 혹은 잘 하려 하는 스타트업은 띄우거나 키워주기는 커녕 정부는 발목 잡고 미디어는 때린다, 이거 아니겠음?

스타트업이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유병준 서울대 교수가 발표했음.

국내 디지털 경제 산업 규모가 얼마인지, 독자 여러분은 아심? 놀라지마셈. 유 교수에 따르면 약 129조원에 달함. 고용효과는 234만명 정도라고 함. 다시 말하면, 디지털 경제는 이미 주류 산업이고,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는 중. 그런데 정책적 접근은? 미진함.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과거의 비즈니스보다는 미래의 비즈니스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는 게 골자였음.

그런데 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만 하는 것은 아님. 전반적인 글로벌 경제 성장 견인에 스타트업이 있음. 미국만 봐도, 지난해 벤처투자 규모가 우리나라 돈으로 147조원에 달함. 역대 사상 최고액인데,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올 1월 309개였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4월 중순에 342개로 늘었다고 말함. 어마어마한 성장속도 아님?

임 센터장의 이야기 중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 있음. 유니콘이 많이 늘었다는 건, 혁신의 대상이 ‘테크’ 하나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는 얘기임. 농업이나 헬스케어 같이 온 인류가 고민하는 문제부터 모빌리티나 프롭테크처럼 기존에는 테크와 잘 엮이지 않았던 부분까지 전방위적으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즉, 돈을 쓸 곳이 많아지니까, 가능성 있는 회사에 이 자금이 몰리는 것임.


그런데 큰 돈을 쏟았지만, 이런저런 규제로 인해 성장에 제한을 받는다면 글로벌 자금이 국내에 들어오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음.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있었던 아주 큰 규모의 투자계약은 국내에선 이뤄지지 않았음. 프랑스에 마크롱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실제로 사업 환경이 바뀌진 않았으나 “혁신적인 국가 이미지”로 인해서 글로벌 투자가 늘어났다는 임 센터장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음. 스타트업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 하나는,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이야기임. 투자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쏟아부은 돈을 회수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투자가 또 다른 기업에 이뤄지지 않겠음? 그래서 엑시트가 필요하다는 거고, 그래서 글로벌로 지금 스타트업의 기업공개(IPO)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거임. 리프트를 시작으로 우버, 핀터레스트, 슬랙, 줌, 에어비앤비까지 상장을 했거나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인데,

이 부분은 김영덕 롯데엑셀러레이터 상무의 이야기가 재미있음.

한국에 유니콘이 몇개 있는지 아심?

쿠팡, 크래프톤(구 블루홀. ‘배틀그라운드’ 만든 회사),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엘앤피코스메틱(메디힐 마스크팩으로 대박친 곳), 토스, 빅히트엔터테인먼트(BTS 소속사) 등 6개가 넘음.  이 중에 엑시트 한 곳은?

하나도 없음.

김영덕 상무는 우리나라가 유니콘 배출 숫자로는 세계 5위라고 함. 그런데 엑시트 유니콘은 하나도 없음. 국내외 투자자들이 활발히 기업에 투자하고, 엑시트하는 문화가 생겨야 하는데 국내서는 이게 미진.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게 아님. 이런 저런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정부가 과도하게 ‘대책을 만들자’고 나서니까, 진짜 실력 있는 곳이 자생해서 글로벌 투자 받고 엑시트하는 게 어려워지는 거라고 일갈함. 그러니까, 정부가 나서서 “유니콘 100개 만들겠다” 이런거 하지 말라는 것. 앞서 언급한 유니콘들의 공통점은 “알아서 큰 곳들”이라는 것도 의미 있음.

예를 들어 ‘정부 주도 초기 지원 프로그램’ 같은 거임. 실리콘밸리에 가면 투자 받기 진짜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함. 100번 피칭하면 1번 투자 받을까 말까라는 것. 그런데 우리는 정부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어서, 조금만 아이템을 잘 잡으면 쉽게 투자받을 수 있다고 함. 게다가 그 돈들은 ‘농업’ ‘청년 창업’ 등의 꼬리표가 달려 있어서, 해당 영역에만 투자해야 함. 만약에 농업에 괜찮은 스타트업이 없다고 하더라도, 해당 돈을 모두 써야 하므로 일정 수준에 올라오지 않은 기업에도 투자가 들어간다고 함.

왜 이런 정책이 나오냐 하면, 이 정책을 만들고 끌어가는 사람들이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진단. 일을 열심히 해봤자, 잘못되면 공무원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고, 또 몇년 있으면 순환보직 되는데 뭣땜에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느냐는 공무원들의 마음도 이해는 감. 그러니까, 헛돈이나 헛정책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공공시스템 개선부터 필요하다는 것이 김 상무의 조언.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니 만큼, 규제와 제도 개선 문제를 강조.  특히 최근 시작한 규제 샌드박스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 그 평가위원회의 일원이라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함. 최근 금융위 관련해서 샌드박스를 신청한 곳 110개 중 9개가 통과. 이 9개는 매우 소중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현안이 금융위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 현행 샌드박스 조차, 이런저런 가이드라인이 많아서 그 문턱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통과하더라도 차 떼이고 포 떼여서 손발이 묶인 곳이 많다는 것. 물론, 이번 정부가 지난 정부에 비해서는 발전이 있다고 함. 다만 그 속도를 현장에서는 미진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발표가 끝나고 강병원 의원이 좌장이 되어 토론회도 열림. 한훈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 권대수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정책국장이 정부 대표로 나와서 대답. 정부 입장에선 억울하다, 항변의 자리이기도.

한훈 국장은 규제 샌드박스 성과에 대해 먼저 이야기. 샌드박스 도입된 지 이제 100일. 성과를 보면, 산업융합과 ICT 융합, 금융혁신 관련해서 현재 26건, 5월 초면 40여건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 연내 100건까지 창출될거라고 보는데, 글로벌로 우리가 빨리 가는 거라고 강조. 뒤집어 말해, 우리가 그만큼 규제가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도 언급.

아울러 공무원의 면책 조항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 법적,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해서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함.

권대수 국장은 김영덕 상무의 말과 관련 “토스는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생”이라고 반박. 그 말은, 정부도 나름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국내 벤처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를 위한, 벤처 투자 촉진법 전면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라, 이게 통과되면 관련 제약이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 샌드박스 외에 지난 17일 통과된 ‘규제자유 특구제도’도 시행이 되면 지역별 전략 사업별 규제는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함.

이 외에 글로벌 스타트업 페스티벌을 서울과 부산에서같이 개최 예정. 11월 말에 글로벌 스타트업 페스티발 준비 중임. 핀란드나 프랑스의 국제 행사처럼 외국의 주요한 미디어와 벤처 투자자를 한국에 초청해서 우리 스타트업을 국제 무대로 올려주자. 데뷔시키자는 취지임. 참고로, 앞으로 글로벌 행사에도 부처별로 쪼개지 말고, 한꺼번에 한국관으로 나가서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얘기도.

사회를 본 강병원 의원이 토론 중 이런 말을 함. “(방청객) 여러분이 중요함. 국회의원은 여러분이 뽑는 거 아님? 디지털 경제 이해력 높은 사람 뽑아야 함.” 반 농담이지만, 사실 이거 맞는 말 아님?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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