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살펴보던 21일 새벽, 기자에게 이게 뭔가 싶은 쿠팡 광고가 노출됐다. ‘고추 / 고추 얇은 물고기 입오픈 발가락 양말 열려있는…’이라는 상품명의 스타킹이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상한 상품명의 쿠팡 상품 광고. 상품사진은 노출이 심해 모자이크 처리했다.

실제 광고를 클릭해봤다. 중국어로 써 있는 상품상세정보 이미지의 향연이다. 여기가 쿠팡인지 알리익스프레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셀러가 올린 구체적인 정보를 살펴봤다. 택배사는 ‘우체국’, 배송비는 ‘2만3000원’으로 명기돼있다. 절대로 한국에서 팔릴 합리적인 가격은 아니다. 이 스타킹을 팔고 있는 셀러(판매자)는 스타킹뿐만 아니라 10만2714종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것은 쿠팡인가, 알리익스프레스인가. 쿠팡 홈페이지 맞다.

비단 이 판매자뿐일까. 짧은 시간 안에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상품명의 제품을 쿠팡에서 판매하는 셀러를 두 명 더 찾았다. ‘세일오피’라는 이름의 셀러는 1700만원짜리 관우상을 포함한 45만여개의 상품을 쿠팡에서 판매하고 있다. ‘채움늘’이라는 이름의 셀러는 3400만원짜리 원피스를 포함한 37만3000여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모든 판매상품의 판매명은 딱 봐도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느낌이다.

쿠팡에선 1700만원짜리 관우상도 판다. 정말 별걸 다판다. 어마무시한 셀렉션이다.

이상한 쿠팡 셀러의 정체 ‘구매대행’

셀러의 정체에 대해선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이 판매자들이 중국인 구매대행 셀러일 가능성이다. ‘구매대행’이란 재고를 가지지 않고 실제 마켓플레이스에서 고객 구매가 발생한 이후에 벤더(제조사, 도매상, 리셀러, 소매상 등)에게 상품을 구매하여 웃돈을 얹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업태를 말한다. 구매대행 셀러들은 ‘재고’ 없이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판매하는 상품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비단 쿠팡에서만 일어나는 행태는 아니다. 이미 미국 아마존을 포함한 전 세계 마켓플레이스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상당수는 중국 구매대행 셀러들에게 잠식됐다는 게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의 공론이다. 옛날 같지는 않다지만, 중국이 괜히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실제 쿠팡은 언젠가부터 외국인 셀러의 마켓플레이스 입점을 받고 있었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은 2017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셀러의 마켓플레이스 입점을 받지 않았는데, 지금은 쿠팡 입점을 희망하는 외국인이 있으면 담당자가 별도로 안내해준다”며 “보다 많은 상품구색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이 판매자들이 중국 상품 데이터를 스크랩핑(Scrapping)해서 판매하는 한국 셀러일 가능성이다.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 셀러들은 무작위로 대량의 상품을 해외 마켓플레이스에 올려놓고, 팔리면 상품을 보내는 식으로 사업을 안한다. 배송비가 얼마 나올지도 모르는데 일단 파는 그런 방식으로 사업하는 셀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초기 단계의 위로 못 올라가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라며 “물론 한국인들은 아직도 그렇게 많이 판다. 타오바오나 알리익스프레스에 있는 수십만개의 상품을 긁어다 파는 것인데, 수십만개의 상품 정보를 일일이 살펴보지 못하니 상품명 번역이나 가격이 이상한 상품도 함께 팔게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상한 쿠팡 셀러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그 정체는 구매대행 사업자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재고도 없는 상품 이미지를 끌어오는 방법

그럼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은 구매대행 셀러들이 마켓플레이스에 올린 상품 이미지는 어디서 가지고 왔을까. 벤더 중에는 이런 상품 이미지를 촬영하여 셀러에게 제공해주는 사업자가 있다. 네이버쇼핑이나 지마켓 등에서 상품 검색을 했는데 서로 다른 셀러가 ‘똑같은 상품 이미지’를 올리고 있다면, 이건 필히 같은 벤더에게 상품을 공급 받은 셀러들이다. 한국에서는 ‘도매꾹’으로 대표되는 B2B도매몰들이 이러한 이미지를 셀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쇼핑에서 필통을 검색해봤다. 왜 서로 다른 셀러들이 같은 상품 이미지를 올려서 상품을 팔고 있을까. 통상 이커머스 셀러에게 사진을 제공해 주는 벤더가 같기 때문이다.

물론 셀러가 판매 상품의 ‘샘플’을 구해서 이미지 촬영을 하는 방법도 있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옷을 받아 판매하는 쇼핑몰에선 흔히 보이는 업태다. 그러다 보니 생긴 문제가 ‘샘플 이미지 불펌’이다. 누군가 샘플 촬영한 옷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블로그마켓, 인스타그램마켓 등에서 많이 보이는 이러한 행태는 쇼핑몰 사이의 잦은 저작권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는 게 동대문 도매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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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대행 사업자 중에서는 벤더가 아닌 오프라인 소매상에서 상품을 구매해서 되파는 이들도 있다. 예컨대 월마트에서 이벤트 할인 판매하고 있는 특정 상품들을 매입해서 아마존에 웃돈을 올려 되파는 셀러 사례가 있다. 심지어 마켓플레이스인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상품에 웃돈을 붙여 경쟁 마켓플레이스인 이베이에 판매하는 사업자도 있다. 더 나아가서 본다면, 미국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상품상세컷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한국 네이버쇼핑에서 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구매대행 사업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바이라인네트워크 영상제작 역사상 사상 최대 조회수(21일 기준 페이스북만 15만 뷰 이상)를 기록한 이 영상에서 못한 말을 오늘 이 기사로 풀어본다.

거짓말 같은가. 아마존에 올라온 상품정보와 이미지를 자동으로 글로벌 쇼핑몰 호스팅 플랫폼 ‘쇼피파이(Shopify)’나 ‘이베이’로 끌어 오는 소프트웨어도 따로 판매되고 있다. 중국의 B2C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 상품을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있다.

확장팩 ‘드랍쉬핑’

벤더가 단순히 셀러(소매상)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서 벤더가 직접 소비자까지 배송을 해주는 업태가 있으니 ‘드랍쉬핑(Drop Shipping)’이다. 구매대행의 확장팩이라고 보면 편한데, 벤더에서 소매상까지, 소매상에서 다시 소비자까지 2중으로 부가되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마켓플레이스 등에서 소비자 주문이 발생하면 소매상이 받은 데이터를 벤더에게 전달하고, 벤더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이 직접 소비자에게 배송하거나, 제조업체에 직접 소비자 배송을 요청한다.

B2B 도매몰 도매꾹의 드랍쉬핑 서비스 도매매의 물류 프로세스. 여기서 전문셀러는 리셀러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자료: 도매꾹)

이런 업태가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그러니까 국가간 전자상거래 거래로 확장된 것이 ‘크로스보더 드랍쉬핑’이다. 기자가 만난 셀러 중에는 중국 벤더에게 받은 상품을 동남아시아 마켓플레이스인 라자다에 팔던 이가 있었다. 이 사람은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 당연히 재고는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한국 사람이 중국 상품을 동남아시아에 판매하고 있다. [참고 콘텐츠: D2C 한다는 아마존, 드랍쉬핑은 불가능한 이유]

쿠팡에서 이상한 상품명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셀러들도 ‘크로스보더 드랍쉬핑’을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해당 판매자들이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의 도착예정 시간은 통상 14일~30일 이후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재고’를 가지고 상품을 팔고 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속도다. 한국 택배는 익일배송이 일반적인 생태계를 만들었고, 설사 재고 없이 한국 벤더에게 상품을 받아 드랍쉬핑 형태로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통상 당일출고율이 50%는 넘는다는 게 B2B 도매몰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쿠팡에서 팔고 있는 4500만원짜리 캔디 목걸이의 예상 배송시간. 한 달이 다 지난 4월 19일에 도착 예정이다. 쿠팡에 따르면 예상 배송시간은 마켓플레이스 셀러들이 기입하는 정보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때라도 상품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일 것 같다.

쿠팡의 사정

쿠팡측은 셀러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마켓플레이스에 올리는 ‘상품명’과 ‘가격’ 정보를 규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중 판매가와 비교해서 봤을 때 셀러가 올린 상품가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다면 자체 시스템과 인력을 활용해 가격 조정을 권유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쿠팡에 따르면 앞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셀러가 올린 것처럼 노출도가 심한 사진이 마켓플레이스에 올라갔고, 19세 미만 열람 금지를 하지 않았다면 별도 권고 없이 리스팅에서 삭제될 수도 있다.

쿠팡 관계자는 “실제 아무리 봐도 29만원짜리 상품인데 2만9000원에 상품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럴 경우 셀러의 실수라 생각하고 가격 조정을 권유한다”며 “셀러가 마켓플레이스에 올리는 상품 정보를 쿠팡이 사전에 규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이미 10여일도 더 전에 쿠팡에 올라온 4억7000만원짜리 염주가 여전히 판매 리스팅이 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쿠팡의 가격관리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물론 4억7000만원짜리 염주를 구매하는 정신 나간 소비자는 한국에 없을 것이라 믿는다.

쿠팡에서 판매되고 있는 4억7000만원짜리 염주. 이건 오늘 오전까지 판매되고 있던 상품인데, 지금 클릭하면 품절됐다고 나온다. 기사 쓰던 사이 쿠팡의 가격관리 시스템이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글.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영상. 박리세윤 PD dissbug@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