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택시 대타협 난항, ‘백지’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택시업계와 카풀 서비스 간 갈등을 해결하고자 마련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첫 만남부터 무산됐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는 택시업계와 카풀 서비스, 정부(국토교통부), 국회(택시-카풀 TF)가 함께 문제를 풀어보려 만든 일종의 비상대책위원회다. 이들은 깊어진 갈등을 ‘백지 상태’에서 풀어보자고 기구를 마련했지만, 전제조건인 ‘백지 상태’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지 못해, 걸어서 5분 거리에 상대를 두고 별도의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28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사회적 대타협 기구’ 사전 간담회에는 전현희 택시·카풀 TF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정렬 국토교통부 제2차관, 정주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 등이 참석했으나, 대화의 핵심 축인 택시 4단체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택시 4단체장은 같은 시각 국회의사당 근처에 마련된 천막 농성장에서 ‘카풀 서비스 선 중단’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다 결국 불참했다. 이들은 각각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오전 11시 시작으로 예정됐던 이날 간담회는 택시 업계가 불참한 가운데 약 30분가량 기다림이 이어졌다. 전현희 의원은 “이 자리는 사실상 택시 4단체에서 요청해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어떻게 운영하고 현실화 할지, 참여 조건 등을 논의하기로 약속된 자리”라며 “사회적 대타협 기구로 가기위한 전제조건까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는데 공식적인 불참 의사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택시 4단체는 ‘대타협 기구’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일시적 카풀 서비스 중단을 대화의 선조건으로 요구해왔다. 이와 관련해 전 의원은 “현행법상 (문제 없이) 시행하는 서비스를 중단하라 마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대타협 기구 안에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맞대서 논의를 해 해결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라며 “서로 동의가 된 부분인데 어제 (택시 4단체에서) 성명서를 내고 카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면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어 “출퇴근 시간에 예외적으로 카풀을 알선하는 영업이 가능해진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때 만들어진 법이 근거가 됐고, 카카오도 그 법에 근거해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하려는 정책은 기존의 카풀 알선 정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택시 업계의 생존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정부 지원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정렬 차관은 택시 업계가 대화에 나서야 정책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택시 산업 발전 방향을 시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도 덧붙였다.
김 차관은 “논의를 위한 자리를 정부에서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겠지만 대화와 타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동안 정부가 나름대로 준비하고 검토해온 택시 산업 발전 방향이나 쇄신 대책이 시행될수가 없을 것 같다”며 “택시 업계가 열린 자세로 이 자리에 나와서 같이 진지하게 택시업계와 종사자들의 근무 여건 발전을 위한 대화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주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택시업계와 미래를 같이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고 과감하게 투자하고 협력하고자 하는 의사를 이야기해왔다”면서도 잠정적 카풀 서비스 중단과 관련해서는 “이 자리가 상생을 위한 논의 자리이고, 대화를 위해 정식 서비스를 연기하고 있는 과정인데 (서비스 중단 자체는) 저희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에 택시 4단체는 “카풀 서비스의 일시적 중단이라는 전제조건을 지키지 않는다면 백지 상태로 할 수 없고,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들은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통보가 오면 참석을 하려고 오늘 아침까지도 준비하고 있었다”며 “우리의 뜻을 이미 전했는데 미리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택시 4단체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카카오의 편에서 일방적인 대화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신표 전국택시노동조합 위원장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들어가겠다고 제안했으면 우리가 들어갈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카풀 중단 없이 사회적 대타협을 한다는 말은 택시 업계보고 다 죽으라고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 “카풀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대화에 임하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며 “그 자체가 불법인 카풀을 합법화 시키려는 집권여당”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완전월급제와 관련해서도 강신표 위원장은 “4차산업혁명, 공유경제는 시대적으로 가야하지만 택시와 같이 살 수 있는 상생조건은 하나도 없다”며 “법인택시 완전월급제, 사납금 폐지 같은 요식행위를 아직도 하고 있는데, 월급과 상관없이 카풀을 전면 시행하면 택시가 모두 도산할 것이라 방법이 없다”고도 말했다.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도 수위를 높였다. 정부여당이 카풀 금지 입법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카카오와 4개 단체의 싸움을 붙여 결과적으로 ‘누가 죽느냐’하는 싸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또 택시와 달리 카풀 차량이 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시민을 볼모로 잡고서는 책임에 대해서는 모른척 하고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택시 단체들은 카카오가 카풀 서비스를 할 경우 어림잡아 조 단위의 매출을 내게 될텐데 택시 업계에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플랫폼 회사가 이득을 다 가져가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유사한 서비스인 우버가 국내서 택시 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철수했던 점을 언급하며, 카카오는 왜 정부가 비호하느냐고 비판했다.
강신표 본부장은 “우버의 경우 정부가 막아 서비스를 못하게 했는데 왜 본질적으로 똑같은 서비스인 카카오는 허용하려 하는가”라며 “정부가 카카오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제대로 작동이 되어 대화가 진행됐을 때, 카풀 서비스가 어느정도까지 양보하면 같이 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 질문에 강신표 위원장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고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며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는 선에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