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용의 물류 까대기] ‘오프라인’에서 찾은 온라인 신선식품 판매의 본질 外

한 주간 발생한 여러 이슈를 ‘물류(Logistics)’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물류 이야기만 다루지 않습니다. IT, 유통, 제조, 금융,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흐름(Flow)과 최적화(Optimization)라는 관점에서 연결합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배포한 ‘보도자료(COMPANY)’를 제시합니다. 여기에 기자의 ‘관점(VIEW)’을 더합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가 아닌 관점입니다. 궁극적으로 독자 여러분의 또 다른 관점이 더해져, 완성되는 콘텐츠가 되길 희망합니다.

시작하며

오늘은 회사의 보도자료가 아닌 각각 다른 업계에 속한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송구하게도 많은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직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몇몇 독자분들은 기사를 읽고 느낀 새로운 관점을 이메일이나 편지를 통해 따로 전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 중에서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인사이트를 찾기도 하고, 가끔은 어디에 하소연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도 만납니다. 그들 모두에게 저는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자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될 수 있는 콘텐츠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선식품 이커머스의 본질

OTHER’S VIEW

바이라인네트워크의 ‘물류 까대기’ 기사를 늘 고마운 마음으로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평소 엄지용님 기사를 보면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게 되어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쓰신 이커머스의 미개척지, 신선식품에 신선이 빠졌다고? 기사를 보고 업계의 한 사람으로써 느끼는 바가 있어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신선식품 물류는 말씀처럼 매우 섬세하고 어려운 분야입니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성은커녕 같은 삽질만 계속해오고 있는 시장이기도 하죠. 항공이나 냉장냉동 트럭으로 배달하는 일본도 오이식스(Oisix, おいしっくす)를 비롯한 여러 신선식품 커머스들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온라인 신선식품 판매에서 업체들이 고전하는 이유는 식품의 배송과정이나 어떤 시스템에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음식의 맛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식품은 다른 것을 떠나 무조건 맛있어야 하는데, 식품 커머스들은 이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업체들이 맛 대신 신경 쓰는 것이 식품의 종류와 개수, 회원수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과 음식 사진과 포인트를 줘서 만들어낸 후기 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돈을 내고 맛없는 음식을 일부러 사먹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한 번은 혹해서 사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사먹지 않으니 마케팅을 하고, 마케팅을 하니 비용이 높아지고, 비용이 높아지니 음식 질이 떨어지고, 질이 떨어지니 소비자는 외면하고, 그러니 3년을 못 넘기고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먹거리는 다른 상품과 성격이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맛있다고 하면 강원도 오지 산골도 찾아가서, 새벽 5시부터 줄을 섭니다. 전 세계 유일무이 애플이나 할법한 일들을 장작불을 떼는 어느 산골 할머니가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마케팅이나 트렌드로 따질 수 없는 이유는 저런 감동을 주는 맛집은 택배(온라인 배송)를 안 한다는데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애를 쓰고 돈을 때려 부어도 어느 한계에서 멈추는 이유는 식품 커머스업체들이 ‘식품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 앞에 편의점이 있고, 그 옆에 슈퍼가 있고, 마트가 지천입니다. 동네 치킨집만 한집 건너 한집이고, 여기저기 프랜차이즈, 개인·대형식당들이 차고 넘칩니다. 이런 곳에서 식품 커머스업체들은 변별력 없는 그저 그런 음식과 가격으로 상품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번이라도 해 본 고객들은 자연히 떠나게 됩니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심지어 올해에도 “내년엔 신선식품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잠잠한 이유는 많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이 온라인에서 시켜본 음식들의 질이 형편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소 이 업계에 있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두서없이 써봤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익명의 식품업계 독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관련기사 : [엄지용의 물류 까대기] 이커머스의 미개척지, 신선식품에 신선이 빠졌다고? ]

VIEW

독자분의 의견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신선식품 이커머스가 뜬다는 기사, 저도 참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빛나는 도전으로 예쁘게 포장된 모습 반대편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업자들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실패한 것일까요. 독자분의 의견에 그 힌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해서입니다. 그것이 ‘가격’이 됐든 ‘맛’이 됐든 말이죠.

저는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물류’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몇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저는 공유주방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 관계자분에게 질문 하나를 한 적이 있는데요. 우버의 트래비스 칼라닉 창업자가 한국 공유주방에 관심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공유주방’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뜨거운데, 정말 사업이 잘 되고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의 답변이 나왔습니다. “공유주방에 입주한 업체들의 재임대와 신규임대 비율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의 ‘배민키친’, 요기요가 인수한 푸드플라이의 ‘셰플리’는 유명 레스토랑 셰프를 공유주방에 입점시켜 배달 서비스를 중심으로 판매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왜 ‘신선식품 이커머스’ 이야기를 하는데, 공유주방 이야기를 하냐고요? 공유주방 비즈니스는 오프라인에서 음식이 만드는 가치를 ‘온라인’으로 옮긴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공유주방은 임대료가 비싼 상권을 벗어나 저렴한 위치에 ‘주방’만 입지하여 ‘음식배달’ 중심으로 음식을 판매할 수 있는 방식이 됩니다. 공유주방에 입점한 음식점은 새로운 지역의 고객을 저렴한 비용(임대료)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접객은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고, ‘온라인 배달’ 수입에 모든 것을 거는 형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강북에서 잘나가는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강남의 오프라인 고객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남대로에 분점을 여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임대료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때 역삼동 언덕배기를 거슬러 올라간 건물 지하 1층에 마련된 ‘공유주방’에 셰프만 보내면 어떨까요. 요즘은 ‘배달앱’이 잘 돼있으니, 오프라인으로 고객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온라인으로 강남고객과 소통할 수 있겠죠. 공유주방은 오프라인의 가치를 온라인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물류(음식배달)가 필요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공유주방의 재임대율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장님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는 ‘배달 과정에서의 음식 품질 저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맛집’이라 불리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픽업부터 고객 전달까지, 야외에 노출된 상태로, 수십분의 시간이 지나서 배달이 되니 음식의 맛이 사장님이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닙니다. 맛이 없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맛본 고객들은 배달앱에 악플을 답니다. “이 케밥집, 블로그에선 완전 맛있다고 하더니 거품이네” 하고요. 사장님은 당황스럽겠죠. 저 평점을 보고 잘 오던 오프라인 고객까지 끊길까봐 걱정되겠죠. 그래서 공유주방을 나갑니다.

비슷한 일이 소위 ‘맛집배달앱’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있었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요기요, 배달통) 진영에 속한 푸드플라이, 우아한형제들의 배민라이더스, 허니비즈의 띵동, 우버코리아의 우버이츠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 중 한 기업 입점 담당자의 실제 사례입니다.

서울 어디에 잘 나가는 치킨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입점 담당자는 사정사정해서 이 치킨집을 앱에 입점시켰습니다. 설득 논리는 대개 비슷해요. 이런 식입니다. “사장님은 오프라인 고객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새롭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우리는 온라인 판매분에 대해서만 수수료로 가져가니까, 사장님은 손해가 아니에요. 오히려 가게가 손님으로 가득 차도,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치킨을 팔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손님을 만날 수 있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치킨집은 맛집배달앱에 입점하고 얼마 안 있어, 앱에서 나가기로 결정합니다. 왜냐고요? 이 치킨집은 바삭바삭한 치킨이 강점이었어요. 그런데 배달하는 시간동안 ‘바삭바삭한 맛’이 전부 사라지는 겁니다. 주문 피크타임이면 배달기사가 부족하여 30분 걸리던 배달시간이 60분으로 늘어나는 문제도 있었는데요. 그 시간 동안 음식의 품질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러자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칩니다. 왜 바삭바삭한 치킨을 판다고 거짓말을 하냐고요. 배달앱에선 고객들이 가게의 점수를 매길 수 있는데 무슨 점수가 3점도 안돼요. 사장님은 “배달대행업체를 쓰는데, 배달이 늦어서 치킨이 눅눅해졌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댓글에 남기지만, 고객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배달이고 뭐고 알게 뭐에요. 치킨이 맛 없는데.

그래서 사장님은 맛집배달앱에 배달속도를 개선해달라고 했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장님은 더 많은 고객을 만나고자 맛집배달앱에 입점했는데, 오히려 안 좋은 평점을 본 신규 오프라인 고객들이 가게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서 이 사장님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판매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사실 이건 현재 맛집배달앱이라고 불리는 앱에 진짜 오프라인 맛집은 잘 안 보이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전 그래서 맛집배달앱과 배달앱의 경계가 혼탁해졌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죠.

한 신선식품 이커머스 물류센터에서 출고 상품이 분류된 모습

공유주방과 맛집배달앱, 그리고 독자분이 남겨준 ‘신선식품 이커머스’. 이 세 개는 모두 다른 비즈니스지만, 같은 문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굳이 오프라인 맛집을 찾아가서 1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음식을 먹을까요? 오프라인이 그만한 가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격’이 됐든, ‘맛’이 됐든, 두 개가 섞인 ‘가성비’가 됐든, 조금 생뚱 맞은 오프라인의 가치인 ‘분위기’가 됐든 말입니다.

그런데 온라인은 과연 오프라인 이상의 가치를 주고 있나요? ‘집에서 편하게 시켜먹는다’는 온라인만의 가치는 떼어 놓고 생각해봅시다. 신선식품 이커머스는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았을까요? 오프라인 맛집보다 훨씬 괜찮은 맛의 음식을 팔았을까요? 두 개가 섞인 ‘가성비’를 제공하고 있나요?

오히려 온라인은 때때로 오프라인이 제공하는 핵심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합니다. 그것은 대개 음식이 만들어지고 소비자까지 전달되는 과정, 즉 ‘물류’에서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신선식품 이커머스’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배민찬 지입기사의 하소연

OTHER’S VIEW

배민찬에서 배송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사(우아한형제들의 새벽배송 배민찬이 무너진 진짜 이유)에 나온 것처럼 배민찬의 서비스 종료 소식을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알았습니다. 회사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는 기사 하나 띄우고, 통보하고 나 몰라라 합니다. 당장 내년 2월이 되면 배송, 포장, 사무실 사람들 전부 실업자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없습니다.

배민찬은 강남, 서초, 동작, 송파, 강동을 제외한 지역은 전부 대리점을 통해 물류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리점 사람들은 배송건당 돈을 받고 있는데, 서비스종료 기사가 보도된 이후 급격히 고객물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회의 때 말하니 “계약위약금을 물지는 않을테니, 나갈테면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정직원분들한테도 “퇴직금이 없을 수도 있으니 퇴직금 받고 싶으면 지금 나가라”고 합니다.

생각 조금만하면 수가 보입니다. 배민찬이 굳이 내년 2월에 서비스 종료를 하는 이유는 대리점 계약종료 시점이 2월이라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갈 곳이 없는 대리점 사람들은 계약 위약금을 주기 싫어, 물량이 줄고 있는데도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배송 중 보낸 이메일이라 정리가 되지 않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알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메일 보냅니다. 배송을 하는 사람들은 적게는 40대, 많게는 60대입니다. 대부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배민찬, 우아한형제들 때문에 실업자가 됩니다. 하지만 정직원이 아니라 4대보험에 가입된 노동자가 아니라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있습니다.

– 배민찬 대리점의 한 지입기사로부터 받은 이메일

[관련기사 : 우아한형제들의 새벽배송 배민찬이 무너진 진짜 이유]

COMPANY’S VIEW [12월 14일 추가]

콘텐츠 원문이 보도되고 하루 뒤인 14일, 우아한형제들 측에서 콘텐츠에 대한 소명을 요청했습니다. 제보자가 주장한 내용중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민찬에 계셨던 직원들과 대리점을 포함한 파트너가 어떤 방식으로든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결과적으로 제보자의 주장과 회사측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저 또한 조심스럽게 이번 사건을 계속해서 지켜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우아한형제들 측이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부분이라 설명한 메일 전문입니다.

“회사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는 기사 하나 띄우고,통보하고 나 몰라라 합니다”

11월 20일 오후 2시 경 서비스 종료 관련 언론보도 이후 배민찬 물류센터장이 대리점주님 네 분을 찾아 뵙고 회사로서 그런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된 데 대해 죄송스런 마음을 담아 설명 드렸으며, 저녁에는 최준영 대표이사까지 함께해서 대리점 현황을 청해 듣고, 앞으로 어떤 대책으로 지원해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자 한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11월 28일 저녁 배민찬 물류센터장이 대리점주 네 분을 대상으로 지원 방안 관련 협의를 했으며 이에 대해 상호 동의를 한 바 있습니다.

12월 12일에는 새벽배송 3PL 업체와 대리점주 간 미팅을 주선하고, 저희 대리점이 계속 배송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가시적인 성과까지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마켓컬리, 헬로네이처 등과 컨택해 저희 대리점이 새벽배송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리고자 협의를 한 바 있습니다.

“계약 위약금을 물지는 않을테니,나갈테면 나가라”

배민찬과 대리점 간 계약 구조에는 계약 위약금 자체가 없습니다.

“대리점 계약 종료 시점이 2월이라 그렇습니다”

대리점과의 계약 종료는 1월 31일입니다. 저희는 애초 배민찬 서비스 종료를 고민할 때 더 이상 서비스를 지속할수록 회사 부담이 가중되는 터라 연내(12월 31일) 서비스 종료 쪽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2월 말로 종료 시점을 미룬 것은 배민찬을 통해 모바일 반찬 배송 생태계에 참여해 온 여러 파트너사들이 납품처 등 다른 채널을 찾거나 내부 조정 등 대책을 마련하는 데 조금이나마 시간을 더 드리기 위해 결정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대리점과의 계약 종료는 1월 31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 전에 계약 종료하더라도 위약금은 없는 구조입니다. 1월 31일 이후에는 대리점들이 저희 물류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배민찬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더 배송단가가 높은 3PL 업체를 활용해 한 달 동안 배송을 하기로 이미 되어 있습니다.

“대리점 사람들은 계약 위약금을 주기 싫어”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계약 위약금은 계약 구조상 없으며, 11월 21일 미팅 시, 오히려 대리점주 분들이 먼저 1월 31일까지 계약기간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계약기간을 다 채워달라고 한 것은 픽업 이슈 등으로 배민찬에서 요구한 것입니다.

“배민찬,우아한형제들 때문에 실업자가 됩니다”

냉정하게 계약 관계로 말하자면, 계약 구조상 1월 31일 이후에는 배민찬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당사가 보유한 영업용 번호판도 대리점 대상으로 염가 판매를 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새벽배송 3PL 전문 업체와 주선해 이 분들이 계속 배송업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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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라 불리는 노동자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메일을 받으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일개 기자 혼자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국내 물류업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지입구조’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 이것을 혁파하지 않으면 그들은 다시 한 번 똑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퀵서비스 기사, 음식배달 기사, 택배기사, 화물운송기사는 대부분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 특수고용직 노동자입니다. 물론 지입제에 장단점이 있고, 지입제가 탄생한 이유도 있다고 하지만 오늘은 단점을 중심으로 쓰겠습니다.

2016년 어느 날. 전 한 퀵서비스업체의 서비스 종료를 취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업체가 망하게 된 배경이 됐다고 알려진 다른 업체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 화주사의 제보로 시작된 취재는 100여명의 퀵서비스 기사들과 만나게 된 계기가 됩니다. 퀵서비스 기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의 방향은 바뀌었습니다. 업체에서 수백명 상당으로 추정되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일을 하기 위해 선입금해둔 ‘충전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퀵서비스 기사들이 당연히 받아야 될 돈을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과정까지 취재하게 됐습니다. [참고 콘텐츠: 퀵라이더날도 소송전 돌입, 현실과 맞서는 자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퀵서비스 기사들이 돈을 받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먼저, 하루하루 건당 수익으로 돈을 벌고 있던 퀵서비스 기사들이 그들의 권익을 위해 ‘뭉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누가 피해를 입은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명확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그램만 깔아두고 개별적으로 일을 하는 퀵서비스 기사들 입장에선, 같은 회사에서 일감을 받는 동료가 정확히 몇 명인지, 누구인지 회사가 공개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분개했습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피해기사라 주장하는 100여명의 사람을 찾았고, 수십명의 피해기사가 경찰서로 가서 고소를 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그들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당장의 수익이 떨어지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퀵서비스 업체가 망하고, 기사들이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던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계속 있었거든요.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수 없다는 게 당시 모인 퀵서비스 기사들의 공분이었습니다. 이때는 조금 규모가 있는 업체가 망해서 여러 퀵서비스 기사들이 서로 뭉칠 수 있는 규모가 나오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못해 그들의 가슴속에 묻어둬야 했습니다. 결국 각자의 생업 전선으로 돌아가야 됐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통화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사들이 (한 사람의 피해액이 많아봐야 100만원 수준인) 자그마한 일을 집중적으로 처리하기엔 한가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노무사는 “특수고용직노동자인 퀵라이더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 고작 수십만원 가치의 일에 뛰어들 노무사를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 통화한 서울강남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근로자성 판단여부’를 입증하여 피해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상 업체에서 일하던 퀵서비스 라이더 대부분은 그 흔한 ‘계약서’ 조차 작성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근로자성 판단여부라는 게 빨라도 한 달 이상을 ‘입증’을 하는데 시간을 쏟아야 되는데, 대부분이 수십만원 상당의 소액 피해를 본 퀵서비스 라이더들은 그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게 오히려 이익인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피해액을 ‘매몰비용’처럼 보고 생업전선에 복귀한 이유입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최근 CJ대한통운 대전허브터미널 가동중단과 택배노조의 파업 등으로 전국 지역 물류에 차질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주부터 집하금지 지역의 송장출력이 가능해짐으로 택배대란은 일단락 되는 모습입니다.

택배노조 파업이 한창이었을 때 노조소속 택배기사들이 작업장에서 족구를 하고 있는 모습. 이 모습을 보고 기가 찬다고 평가한 비노조 택배기사도 있었다.

재밌는 것은 택배대란이 길어질 수록 빚어진 갈등의 양상입니다. 택배노조와 본사 혹은, 택배노조와 대리점간의 대결이 아니라 택배노조 조합원 택배기사와 비노조 조합원 택배기사의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당연히 비노조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택배노조’가 싫을 수 있습니다. 택배노조 조합원의 파업으로 인해 당장의 수익이 떨어졌으니까요. 열심히 영업한 고객사들이 떨어져나가고 있으니까요. 항간에서는 “일한만큼 돈을 받고, 남는 시간을 누리면서 사는 삶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택배기사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택배노조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으로써 갖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택배노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에 따라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신고필증을 받은 첫 번째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입니다. 그렇기에 택배노조는 퀵서비스, 대리운전, 화물운송 등 여타 물류, 모빌리티 영역의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권리장전에 적용될 수 있는 선례가 됩니다. 분명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조가 됐든 본사가 됐든, 일방적인 입장 전달과 억지는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 택배 생태계는 본사와 대리점, 택배기사들이 함께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 개의 주체가 산업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합리적으로 협의해 나가는 모습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 모습이 다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생태계에도 건강한 선례로 적용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와 같은 ‘노노갈등’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최후에 웃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 우리는 이미 과거부터 <송곳> 같은 일을 겪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무리

처음으로 회사가 아닌 독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사실 ‘물류 까대기’를 처음 기획했을 때 제가 바랐던 것이 이런 그림이었습니다. 회사가 낸 보도자료와 함께 제 의견을 공유하고, 누군가는 제 의견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내고, 그렇게 서로 다른 의견들이 오고가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만드는 모습을요. 앞으로도 이런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과 더 많은 정보를 나누고 싶습니다. 물류기업이든, 비물류기업이든 아래 이메일로 보도자료를 보내주신다면 함께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제 의견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이 있다면 누구든 이메일로 전해주신다면 함께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편하게 댓글로 남겨주셔도 괜찮습니다. 이 콘텐츠엔 바이라인네트워크의 유료 <주간 리포트>에 포함된 내용은 수록되지 않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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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저는 배민찬 직원이었던 사람입니다.
    몇년간 많은 애정을 갖고 배민찬과 함께 했기에 서비스 종료 발표 이후 저 조차도 큰 실의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제보를 하신 지입기사님의 마음은 한때 제가 느꼈던 기분과 다를 바 없기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회사 내부만이 아닌 여러 협력관계에 계신 분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되신 것 같아 더욱 마음이 무겁고 슬퍼집니다.
    더불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대신 입을 열어주시는 기자님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지난 기사에서도, 이번 기사에서도 기자님의 편향된 시선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회사의 처리 방식이 잘못 되었다면, 한쪽의 이야기만이 아닌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은 뒤 독자가 알아보기 쉽도록 논점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기자님이 하셨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류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기에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다소 충격을 받은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명자료를 보니 조직 구성원을 위한 노력만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협력사를 위해 신경을 쓰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 기사도 그랬던 것처럼,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몇몇 분들의 주관적인 입장만 보도하신다면 저처럼 배민찬의 마지막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일하는 동료들은 가슴에서 또 한번 피눈물을 흘립니다.

    서비스 종료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회사이지만, 그 후에 벌어지는 많은 갈등과 문제점을 해결하고 정리하는 것은 결국 저와 같은 직원들입니다.
    저희 역시 해결 과정에 어느정도의 갈등은 있었지만 회사도 나름 모두에게 상처를 덜 주는 방향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끝까지 잘 갈무리하자고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거구요.

    기자님, 좋은 보도를 내어 주시고 큰 기업의 마케팅 뉴스에 가려진 소중한 사실들을 공개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꼭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님이 까대고자 하는 것이 정말 순수하게 물류의 본질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기사로 상처받는.. 곧 직장과 열정을 잃게 될 청춘들인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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