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가는 디자인 기업이다
텐가는 자위용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일본 최고의, 어쩌면 세계 최고의 성인용품 기업이다. 남성용 자위 제품을 만드는 곳은 많지만 브랜드가 알려진 곳은 텐가밖에 없다.
텐가TENGA는 디자인 기업이다. 텐가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로 디자이너들에게 텐가의 로고만을 보여줘도 디자인 기업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텐가 로고의 타이포그래피는 다른 기업의 BI처럼 직사각형의 형태를 갖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요 제품의 원기둥 형태에 맞춰 곡선으로 휘어있다. ‘외관을 만드는 것’에서 멈췄다면 디자인 기업이 아니라 제품 기업이라고 불렀어야 한다. 그러나 텐가가 가진 디자인의 함의를 고려해보면 애플이나 현대카드처럼 텐가는 수준급의 디자인 기업이다.
보통 텐가 하면 떠올리는 흐뭇한 내용은 이 기사에는 없으니 그런 것들을 기대했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도 좋다.
디자인은 예술과 다르다. 인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 외관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점에서 예술과 디자인의 공통점이 있다면, 디자인은 인간의 삶을 개선한다는 특징이 있다. 훌륭한 디자이너들, 필립 스탁이나 카림 라시드 등의 디자이너들은 외관을 최고로 아름답게 만들면서도 피부나 척추의 움직임 등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알레시(Alessi) 브랜드의 주시 살리프(Juicy Salif)가 대표적인 예다.
이 외계인처럼 생긴 제품은 아름다운 외관이 곧 기능이다. 레몬이나 오렌지 등을 외계인의 머리에 얹어 비비면 울퉁불퉁한 곡면을 따라 꼬리 부분으로 모이고, 기계적 장치 없이 주스를 만들 수 있다. 미끈한 소재로 만들어 세척 역시 한번 닦으면 끝날 정도로 간편하다.
텐가의 기자간담회에서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창업 시절 어떤 제품을 디자인할지 고민하던 대표는 우연히 들른 성인용품 가게에서 용품들의 괴상한 외관이나 유통기한 혹은 바코드 등 기본정보 부재 등을 발견했다.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 수준이 뛰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텐가 창업을 결심했다. 3년간의 개발 끝에 출시한 제품은 흔히 알고 있는 빨간색+그레이 스트라이프의 원통형 스탠다드 제품 5종이며, 출시 첫해 6만 개가 팔렸고 현재 다른 라인업을 포함해 7000만개 이상이 출하됐다.
스탠다드 제품들은 그립 부분, 소재, 윤활제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텐가의 제품임을 암시하는 단순한 스트라이프 역시 텐가 제품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유한 디자인 언어다. 따라서 스탠다드 제품들은 더 이상 형태를 변화시킬 필요 없이 꾸준히 출시되는 중이다. 대표가 유일하게 바라는 점은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이 말 한마디로 그가 훌륭한 디자이너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출시된 재사용-전동 제품은 스탠다드 제품의 불편함(일회용)을 해소하고 팔이 불편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됐다.
이외에도 상용 제품으로 흔히 쓰지는 않지만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3D 제품들도 있다. 이 제품은 쓰이는 것과 동시에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스피너 제품은 텐가의 외형을 일부 버린 과감한 제품이다. 이유는 역시 기능 때문이다. 사용 시 진공 상태로 만들어 수동으로 사용하면 나사가 자동으로 조여지듯 회전하도록 설계돼 있고, 이미 출시국 전체에서 연속 품절을 기록 중이라고.
이로하iroha 브랜드는 여성용품으로 패키지부터 외관까지 고급품으로 디자인돼 있다. 텐가와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지 않지만 소재를 완벽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텐가의 아이덴티티도 일부 느껴진다. 이번 달인 2018년 11월 한국 론칭했다.
텐가를 최고의 디자인 기업으로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위의 제품들 때문이 아니다. 텐가 헬스케어 제품군의 존재 때문이다. 헬스케어 제품은 성 기능에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만든 성인용품이다. 텐가 자체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관련 분야의 의사들과 함께 제작했다. 이를 통해 단순 해소를 위한 사용이 아닌 점진적 성 기능 개선을 목표로 한다. 장애인이나 접근성까지 고려할 때 그것이 참다운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헬스케어 제품군은 2019년 상반기 한국에 론칭한다.
이외에도 텐가는 남성 성기나 여성 성기를 모방한 제품을 만들지 않는 등 성적 대상화를 방지하는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디자인을 지속하고 있다. 텐가는 인터넷 혹은 성인용품 판매점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시기를 지나, 2019년 하반기 텐가 숍을 열며 한국 시장에도 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