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강연 끝나고 한계속도로 차를 몰아 집에 가실 분은 안 계시지 않습니까?”

김재우 쓰리세컨즈 대표의 농담에 좌중이 폭소를 터트렸다. 자동차의 한계속도란 최고 가속과 감속, 선회 등 차체가 낼 수 있는 한계치의 운동 성능으로 운전할 때 나오는 속도를 말한다. 주로 F1 같은 레이싱 경기에서나 볼 수 있다. 일반 도로에서 한계속도로 운전했다가는, 십중팔구 9시 뉴스에 나올 거다. 어쩌면 유튜브에 ‘이 도로 위의 미친자’ 로 공유될 수 있겠다.

김 대표는 이 이야기를 지난 28일 패스트트랙아시아 주최로 열린 ‘2018 퓨처 컨퍼런스’에서 꺼냈다. 그는 이날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부문 연사로 참여했다. 그간 자율주행 AI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단어들은 ‘정확도’나 ‘안전성’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한계속도’ 같은 말은 처음엔 다소 엉뚱하게 들렸다.

김재우 쓰리세컨즈 공동창업자 겸 대표

“도로에선 일반 주행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죠. 그런데 사고 상황은 모두 한계 주행 구간에서 나와요. 사고를 회피할 때는 그 차 나름의 최고 운동성을 써야 하니까요. 한계상황에서 제대로 그 차를 움직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일반 주행에서 사고 데이터를 모으려면, 각 차량마다 센서를 붙인 후 사고가 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고를 기다려야 한다니, 윤리적 문제가 크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한계 주행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 누구? 레이싱 선수들이다.


동호회를 포함, 국내 아마추어 레이싱 선수들의 수를 추산해보면 약 4000명 정도가 된다. 일반 운전자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은 수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 중 절대 다수의 시간을 한계 주행한다. 이 데이터셋을 모아 잘 활용한다면 사고시 자율주행 차량이 어떻게 대처해야 가장 좋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레이싱 선수들은 자기 주행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한 번 주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 이상 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효율적인 연습이 필요하고, 실수를 줄이기 위한 데이터 기록과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레이싱 선수들에게 무턱대고 데이터를 달라고 하면 난색한다. 경기 기록 자체가 다른 레이서에 컨닝 페이퍼가 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를 달라고 하려면, 3초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를 기술적으로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빠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김재우 대표가 누구고, 쓰리세컨즈가 뭐하는 스타트업인지 알 필요가 있다.

김 대표는 조금 많이 배운 사람이다. 카이스트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를 모두 마쳤다. 석사는 기계공학을, 박사는 데이터과학을 전공했다. 여기까지는, 딱 공부만한 모범생 이미진데 직업은 또 다르다. 그는 지난해 국내 아마추어 레이싱 종합 챔피언이다. 한국 타이어 같은 회사에서는 외부 테스트 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올해는 아우디와 벤틀리에서 인스트럭터를 겸한다.

그런 그가 학교 동기들과 주변인을 꼬셔 만든 회사가 쓰리세컨즈(3SECONDZ)다. 레이싱 챔피언과 하위권 선수의 경기 기록이 3초 가량 차이난다는 3초의 법칙에서 따왔다. 자율주행이 보급되지 않은 데는, 아직 불안전한 연구도 한 몫하지만 소비자의 불신도 영향을 미친다. 상용화의 가장 큰 장벽은 사고에서 자율주행차가 안전하게 대처하리라는 믿음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도 있다. 쓰리세컨즈는 레이싱 선수들의 경기 데이터를 자율주행 AI 개선을 위해 활용하려고 한다.


김 대표는 레이싱 선수들의 데이터를 갖고 그동안 자율주행 AI 연구가 놓쳐온 가려운 부분을 긁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의 자율 주행 연구를 보면 자동차가 사람처럼 주변을 어떻게 잘 인식하느냐에 집중되어 있어요. 인지, 차량움직임, 판단이라는 주행의 3요소 중 ‘인지’에만 집중되어 있는 거죠. 다른 두 가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학계에서 이걸 연구할 수 있을만큼의 포괄적 운전자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일어난 일이예요.”

이는 자율주행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콘트롤 측면에서 바퀴의 미끄러짐을 제어하는 등의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느정도 사람을 추월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지 외에도 차량의 움직임과 판단까지 모두 포함한 종합적 측면에서 자율주행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일종의 ‘직관’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포함한 판단은 사람이 인공지능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이야기다.

여기서 김 대표가 인용한, 전 F1 세계 챔피언 아일톤 세나의 발언을 들어보자.

“내가 더 이상 의식의 영역에서 운전을 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마치 본능과 같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유명 자동차 회사들은 레이싱 선수들이 경기 후 집에 돌아갈 때 일반 도로에서 어떻게 운전하는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운전 부문에서 최고의 전문가인 이들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그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쓰리세컨즈는 데이터로부터 부가가치를 도출해 자동차 기술 제조사와 협업하고 있다.

당장 수익을 내는 것은 선수들에 제공하는 주행 코치 분석이지만, 이 ‘당근’으로 모은 데이터를 갖고 자율주행 AI의 고도화를 연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특히 ‘자율주행 모드의 개인화’에 관심이 크다. AI라고 하더라도 모두 똑같은 운전을 하는 것보다는, 운전자의 습관 등을 재연하는 것이 훨씬 더 만족감을 줄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 대표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꽤 멋지게 들려서다.

“인간의 직관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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