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의 추억

때는 아마존이 한국 해외배송(Global Shipping)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한다고 IT, 유통업계가 떠들썩해진 지난여름 어느 날. 굉장히 슬프게도 난 그 소식이 전해지기 몇 주 전 아마존을 통해 닥터마틴 샌들을 구매했다. 비록 해외 배송비 무료 이벤트의 혜택은 누리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국내 구매가 아닌 직구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첫째, 한국에서 16만 8,000원에 팔고 있는 닥터마틴 샌들을 미국 아마존에서는 83.96$에 팔고 있었다. 해외 배송비인 28.95$를 포함하더라도 한화로 13만 2,831원의 가격이다. 20% 이상 저렴하다.

둘째, 이게 결정적인데 내가 사고자 하는 사이즈의 샌들은 한국에선 품절 상태였다. 재입고 신청을 한다 해도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었고, 아예 입고가 안 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직구를 한다면 수령까지 영업일수로 5~10일이 걸린다고는 하지만, 그 기간이 한국에서 품절 상품 재입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보다 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닥터마틴 공식사이트에서 샌들사기(사진 위) vs 아마존에서 같은 샌들사기(사진 아래). 해외배송비 포함해도 20% 이상 해외직구가 저렴하다.

셋째, 이건 직업병인데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 언제부터인가 붙어있었던 ‘해외배송’이란 녀석이 잘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정말로 제시한 시간 안에 배송이 되는지. 상품 트래킹은 잘 되는지. 배송대행지 사업자를 이용하거나 한국 마켓플레이스에서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직구하는 것보다 편리한지. 소비자 관점에서 아마존이 정말 잘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최재홍 강릉원주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통해 아마존의 해외 배송비 무료 이벤트를 실보다 득이 많다고 평했다. 참고하시라.

올 것이 왔다

그래서 내심 사고가 터지길 바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진짜 터졌다. 7월 18일. 주문한지 12일이 지났는데, 샌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니 무슨 문제가 생겨 세관(Customs)에서 배송이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배송업체인 UPS(i-parcel)에 연락해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길래 UPS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회신은 비교적 빠르게 도착했다. 이미 내 상품은 UPS에서 아마존으로 반품이 됐다고 한다. 배송업체에게 PIN넘버(개인 비밀번호)가 넘어가지 않아서다. 한국 세관 정책상 PIN넘버가 주문후 10일 안에 배송업체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자동 반품이라고.

UPS 담당자의 회신 내용. 요약하자면 “우린 이제 잘 모르겠으니 아마존에 연락해서 알아보세요”다.

그렇다. 직구 관련 글을 꽤 많이 써왔던 난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미국 아마존 사이트에 ‘개인통관고유부호(PIN넘버 역할을 한다.)’를 기입하지 않은 것이다. 개인통관고유부호가 무엇인고 하니 개인물품 수입 신고시 주민등록번호 대신 활용할 수 있는 고유번호다. 만약 면세범위를 초과하는 해외상품을 구매한다면 그에 따른 세금을 부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아마존 사이트의 계정정보(Your Account)-> 주소정보(Your Address)를 따라 가면 개인통관고유부호(Customs ID Number)를 입력할 수 있는 창이 나온다. 개인통관고유부호는 관세청 유니패스를 통해 손쉽게 발급 가능하니 해외 직구를 한다면 반드시 입력하자.

재빨리 아마존 사이트에 내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아마존 CS센터에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내 개인통관고유부호와 주문번호가 이러이러하니 재배송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CS 담당직원인 크리스란 양반이 “내일 바로 배송해준다”고 답했다. 언제 한국에서 상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다음 영업일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와의 상담 내용

내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아마존이 원망스러웠다. 한국 소비자에게 ‘무료 해외배송’ 이벤트를 할 정도라면 이미 아마존도 한국인들이 미국 홈페이지에서 굉장히 많은 상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한국주소로 주문하는 고객 중 개인통관고유부호가 미기입된 고객에게는 주문 전 ‘개인통관고유부호’를 기입해달라는 팝업 정도는 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고객이 주문한 이후에 알아차리고 조치하긴 이미 늦는다. 세관 배송지연 메시지가 뜨기까지 배송시간이 10일 정도 걸렸는데, 주문 후 10일이면 이미 ‘반품’이 결정된다. 뒤늦게 알고 조치하더라도 상품은 이미 ‘반품’됐기에, 가뜩이나 느린 해외배송 시간이 두 배 이상 더 걸리게 된다. 고객경험은 철저하게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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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마존이 잘한 것은 있다. 후속조치가 굉장히 빨랐다는 것이다. 아마존 CS센터 직원과 연결은 주말임에 불구하고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술한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존 직구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 사전 등록한 카드로 결제는 즉각 처리되고, 결제 이후 물류 프로세스에 대한 트래킹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 언제어디서 출발했고, 중간 유통거점으로 어디에 도착했는지, 일자별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내가 세관에서 발생한 배송지연을 빠르게 알아채고 조치할 수 있었던 이유도 트래킹 덕분이었다.

사라진 상품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마존 CS담당자인 크리스가 안내해준 상품도착 예정일인 25일이 지나고도 샌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트래킹 정보를 확인하려고 하자, 오래 전 이미 받았던 ‘세관 지연’ 메시지만 뜬다. 샌들이 배송업체를 통해 아마존에 반품된 이후 어디로 가있는지 도무지 확인되지 않는다. 최소한 반품 상품을 아마존이 받고 재배송한 이후에는 다시 트래킹 정보를 띄워줘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라지지 않는 ‘세관 지연’ 메시지. 난 이미 걔들한테 연락했고, 걔들은 니들한테 물어보라고 했다고!

다시 아마존 CS센터에 샌들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내 샌들은 대체 어디에 있냐고 클레임을 넣었다. 이번엔 자그루티(Jagruti)란 사람이 메시지를 받았다. 이 사람은 아예 내 상품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눈치다. 배송업체에게 PIN넘버를 전달할거고, 걔네들이 시스템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는데, 아마 1~2일 정도면 배송이 될 것이라는 답변을 한다. 이미 첫 번째 클레임을 넣은지 7일이 지났는데, 그 때 받았던 답변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내용이다. 화가 나기 시작한다.

실상 1주일 전 클레임을 넣었을 때와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채팅창에서 ‘채팅끝(End Chat)’을 눌러달라는 CS담당자의 답변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또 1주일 이상이 지난 8월 3일. 샌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번에 연결된 CS담당자에게는 좀 화를 냈다. 일전 두 번의 CS에서 1~2일이면 도착한다던 상품이 첫 번째 CS 이후 15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따졌다. 이번에 연결된 상담원은 배송까지 몇 일 더 걸리고, 좀만 기다려달라는 구구절절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답변은 명쾌했다. “우리도 상품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미안한데, 그냥 환불하고 다시 주문하세요”

 

아마존 해외배송과 함께한 나의 여름은 어느덧 중반부를 넘기고 있었다. 사실 이 닥터마틴 샌들은 친구들과 3달 전부터 계획한 일본 여행에 신고 가려고 주문한 것이다. 여행날짜는 이제 7일도 안 남았다. 배송기간이 긴 해외직구인 것을 감안했을 때 이미 이 샌들을 신고 여행가기엔 글렀다.

더 따져봤자 결과는 똑같을 것 같아서 그냥 환불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니까 돌아온 답변이 가관이다. “기프트카드로 환불하시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프트카드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고 하니, 그럼 배송비는 환불받을 수 없단다. 이미 한화로 3만 원 이상의 배송비를 결제한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받은 기프트카드로 똑같은 신발을 검색했다. 웬걸. 한 달 전에 83.96$였던 샌들 가격이 105$가 돼 있다. 국내 배송비 8$를 포함하니 가격은 113$로 늘었다. 어쩌겠는가. 이미 받은 기프트카드니 사용해야 한다. 물론 아마존 해외배송은 선택하지 않았다.

어느새 가격이 오른 닥터마틴 샌들

몰테일 출동

익숙한 해외직구 배송대행 사업자인 ‘몰테일’ 사이트를 열었다. 몰테일 주문은 아마존에서 ‘해외배송’을 바로 신청하는 것에 비해서는 조금 귀찮다. 몰테일에서 물품을 수령할 미국현지 주소를 받고, 아마존에 해당 주소로 현지 배송을 요청한다. 이후 미국에서 한국까지의 해외배송과 한국에서의 택배는 몰테일이 맡아서 배송사업자와 연결하여 처리하는 구조다.

이미 한 차례 고초를 겪은 나였기에 몰테일 주문에서는 별달리 실수를 하지 않았다. 8월 3일에 아마존에서 다시 주문한 상품은 8월 8일 몰테일 미국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이후 몰테일은 상품무게를 달아서 해외 배송비를 책정하는 데, 그렇게 책정된 해외 배송비는 15.98$. 해외배송비를 결제하라는 안내를 받고 8월 9일에 배송비를 결제하니 이틀 뒤인 8월 11일 한국에 도착했다. 몰테일의 해외배송비는 아마존에서 직접 해외배송을 선택할 경우의 해외배송비(28.95$, 영업일 5-10일 이내 배송 기준)보다 훨씬 쌌다. 배송속도도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더 빨랐지.

몰테일 역시 배송 트래킹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아마존 해외배송의 추억은 이렇게 끝났다. 7월 2일 주문한 닥터마틴 샌들은 중간에 사라지고, 반품되고, 환불되고, 재배송 되고, 배송대행 사업자를 거치는 과정을 거쳐 주문한지 한 달도 더 지난 8월 11일에 내 손에 들어왔다.

세계최강도 이런데

세계최강 융합기업이라 불리며 국내에도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기업인 아마존에게도 물류는 쉽지 않았다. 외부 협력 배송업체와 주문 데이터 연동은 돼있지 않았다. 반품 과정에서 사라진, 아마존 직원도 찾지 못한 닥터마틴 샌들이 이것을 증명한다. 아마존 사이트에서 직접 제공되는 해외배송은 간편할지언정 비쌌다. 같은 리드타임을 기준으로 봤을 때 배송대행사업자인 ‘몰테일’의 중간 거점을 이용한 물류가 소비자 입장에선 45% 가까이 저렴한 가격에 배송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됐다. 요약하자면, 해외 직구를 한다면 괜히 있어 보이는 ‘아마존 해외배송’ 쓰지 말고, 몰테일 같은 배송대행 사업자를 쓰자.

사실 그것보다 더 편한 방법도 있다.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G9), 쿠팡, 11번가 등 국내 대부분의 마켓플레이스 사업자들은 굉장히 편하게 해외직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냥 한국 상품 사듯 구매하면 끝이다. 요즘 카카오의 커머스 법인 설립과 맞물려 몰테일 인수설과 직구 서비스 론칭설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는데, 얘네도 당연히 할 것 같은 직구 서비스를 이용하자. 사족이지만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업체 중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딜레오(Deleo)’라는 업체가 있는데 이커머스 직구를 위한 물류 플랫폼을 표방한다. 카카오커머스가 직구 사업을 한다면 이런 게 붙지 않겠는가.

아, 물론 아마존이 무료 해외배송 이벤트를 하고 있다면 확실히 저렴하니 주문해봄 직하다. 근데 이것도 단점은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아마존이 무료 해외배송 이벤트를 할 당시 실제 ‘무료 해외배송’이 적용되는 상품군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한다. 직구 서비스를 제공하는 쿠팡과 이베이코리아 관계자에게 확인해보니 아마존의 무료 해외배송 이벤트 이후에 매출 타격은 거의 없었다고.

어찌됐든 나는 아마존 덕분에 철지난 9월까지 닥터마틴 샌들을 굽이 닳도록 신고 다니고 있다. 슬리퍼처럼 생긴거 신고 다닌다고 몇 군데서 혼나기도 했는데 이건 나의 가슴 속에 묻어두겠다.

아, 나름 물류 전문기자가 쓰는 글인데 이상한 하소연만 담겼다고? 아마존아 기다려라. 이 게임에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다. 다음 턴에는 아마존의 최대 경쟁자인 이베이의 해외직구팀을 소환한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출근 첫날, 추억의 그 샌들을 신고왔다. 다행히 혼내는 사람은 없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drak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