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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렉스가 남긴 ‘문화’

취재를 이유로 쿠팡의 일반인 활용 배송서비스 ‘쿠팡플렉스’ 오픈카톡방에 잠복하고 있다. 가만히 카톡방에서 글을 내리다 보면 재밌는 것이 많이 보인다.

100개가 넘는 물량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모습, 물량 배정에서 떨어졌다고 아쉬워하는 모습, 어느 지역은 빠르게 돌 수 있어서 꿀이라는 이야기, 부부가 함께 쿠팡플렉스 배송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건물에 고양이 사료를 옮기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 여러 편의 드라마가 스쳐간다.

박모씨가 올린 사진. 사진 공유는 박모씨에게 직접 물어보고 허락 받았다. 내가 기자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오늘 저녁엔 누군가 사진을 올렸다. 현관문 옆에 “수고하시는 택배아저씨 드리는 간식입니다. 꼭! 챙겨서 가시구요. 제발 부탁인데, 다른 분들은 가져가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있는 메모가 붙어있다. 포도음료와 먹거리가 들어있는 봉지와 함께다. 사진을 올린 박모씨는 “오늘 이거 받았어요.. 감동 ㅋㅋ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니었는데”라는 메시지를 채팅방에 남겼다.

미담이 이어진다. “보람을 느끼셨겠네요. 좋은 고객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마운 고객님입니다. 사랑합니다”, “진짜 멋진분~~ 힘 불끈 나셨겠어요~”, “고마운 고객이시네요~~ 뿌듯하셨을 듯”, “먹을 것 붙이신 분 존경스럽네요. 좋은 분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 놓는다. 쿠팡플렉스 근무 첫날 긴장되고, 마실 물도 따로 준비하지 못해 목이 탔다고 한다. 그렇게 한 고객의 집에서 힘차게 “쿠팡입니다”라고 외쳤더니 고객이 문을 열고 음료를 챙겨줬다고. 그 분에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채팅방에서 오가는 미담들

박모씨는 집에 들어와서 문 앞에 간식을 붙였다고 한다. 자택에 방문하는 택배기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 이야기를 본 오픈채팅방의 다른 누군가는 “나비효과처럼 친절이 친절을 몰고 온다”고 평했다.

택배 정말 힘들까

네이버와 구글에서 ‘택배’로 뉴스검색을 해봤다. 험악한 내용들이 오간다. 갑질 논란, 범죄 활용, 위험한 작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다음에선 ‘택배 알바’를 키워드로 블로그 검색을 해봤다. 예상했던 것처럼 ‘지옥의 알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택배는 확실히 위험하고, 힘들 것 같다. 뭔가 안쓰럽고,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위에서부터 네이버, 구글, 다음에서 ‘택배’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좋은 내용은 썩 잘 보이지 않는다.

택배 상하차와 물류센터 업무를 직접 해본 입장에서 택배는 힘든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택배 때문에 매일매일이 힘들고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하고 있냐면 그것은 아니다.

내가 만난 수많은 택배기사들은 그랬다. 눈치 보지 않는 일자리에 만족했고, 괜찮은 돈벌이에 감사했으며, 누군가는 아들도 택배를 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이야기했다. 일하면서 짬나는 시간에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진상고객 뒷담화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가끔은 고객이 전해주는 음료수나 과일 한 조각에 감동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일매일 ‘지옥’을 살며, ‘삶’에 치여서, ‘돈’ 못 벌어서 택배를 하는 이들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일 끝나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대화와 가끔은 술 한잔을 즐기는 그런 사람들이다. 존중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안쓰러운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언젠가 CJ대한통운의 한 대리점장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소소한 취미로 밴드 생활을 즐기는 이 분은 택배를 참 좋아한다. 1시간 가량 긴 통화를 했는데, 그 때 오고간 내용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언론 보도만 보면 택배기사가 왜인지 힘들어 보이고, 불쌍하고, 보살펴줘야 하는 느낌을 주는데 그게 참 싫다고.

그 느낌을 반대로 풀어보면 ‘택배기사’에 대한 이미지가 나온다. 절대 하기 싫은 대표적인 3D 직종이다. 실제 역대 최악의 취업난이 불어닥친 지금, 택배현장에선 ‘고용난’을 호소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인 외국인이라도 고용하게 해달라고 외치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택배이미지 뒤집기

쿠팡플렉스와 관련된 취재는 마쳤다. 쿠팡 홍보팀에 관련된 질의서를 넘겼으며, 이번 주까지 답변을 받기로 했다. 분명한 건 쿠팡플렉스는 ‘택배’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공헌하고 있다.

쿠팡플렉스의 오픈카톡방에서는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쿠팡플렉스 근무자끼리 잡담하는 카톡방도 따로 만들었는데, 시시각각 재밌는 농담이 오간다. 당연히 고양이 사료를 엘리베이터 없이 6층까지 올리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쿠팡플렉스를 다신 안한다고 치를 떠냐면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물량을 받지 못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다.

채팅방에서 수다떨다가 물량을 놓치기도 하는 그런 분위기다.

물류를 전공한 나는 학창시절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물류 전공하면 졸업하고 택배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때는 웃으면서 넘겼지만, 이제는 택배에 대한 조롱이 담긴 그 말을 함부로 넘기지 않으리라.

쿠팡플렉스는 일반인들이 택배를 경험하고, 택배라는 직종과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만들어줬다. 삶에 찌든 택배기사가 아닌 자랑스러운 한 직업인 택배기사의 모습이다.

그것만으로도 쿠팡은 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엄지용 기자> drak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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