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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부동산 말고 스타트업 아일랜드로

청년이 제주에 살기 힘든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일자리’다. 기자가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만난 이주민은 대부분 자기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문화 창작자였다. 일상적으로 출퇴근하면서 월급 받아 사는 직장을 구하기에, 제주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3년간 제주의 일자리를 늘리려 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했어요.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청년이 제주에서 정착하는 일이 덜 어렵게 될 거예요.”

전정환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지난 3년간 고용 창출에 대해 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해왔다고 말했다. 예컨대 스타트업 ‘모노리스’는 올해 100명을 새로 채용한다. 이런 기업이 100개가 된다면, 굳이 대기업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제주에 1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전정환 센터장을 지난달 제주시에 위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났다. 제주 센터는 지난 2015년 6월 문을 열었다. 3년간 총 101개의 보육기업을 육성하고, 553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센터가 운영하는 창업교육프로그램에 5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전국 혁신센터 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제주 센터가 방점을 두는 부분은 도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이다. 인재가 제주를 찾고, 제주를 베이스로 하는 기업을 만들어 혁신의 중심지가 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전 센터장은 원래 다음(현 카카오) 개발본부장 출신으로, 제주 사옥 건축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이후 혁신센터를 맡게 되면서 아예 제주에 눌러앉았다.그에게 제주 혁신센터의 운영 비결과, 앞으로 제주에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전정환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장

Q. 카카오 출신이다. 기업에서 공공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다음에서 지도서비스와 모바일을 총괄하는 개발본부장을 했다. 2012년에 제주사옥인 스페이스닷투를 건축하는 프로젝트를 맡았고, 이후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하고 여러 조직이 합쳐지는 과정에서 사내시스템을 정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조직장이 나에게 창조경제혁신센터장에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기업에 있을 때 직장동료인 민윤정 님(현 매시업엔젤스 파트너, 코노랩스 대표)과 함께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조직했고, 이후 경영지원유닛을 맡아 체인지 태스크포스팀(CHANGE TF)을 만들어 공간과 조직 문화 혁신을 시도했다.

Q.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다양한 창조 주체들이 일과 삶의 영역에서 교류하면서 우연한 창발성(Serendipity)을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원래 카카오 스페이스닷투도 프로젝트 룸을 많이 만들고 닷하우스에 창작자들을 체류시키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교류하는 공간을 창출하려 했다. 현재 제주혁신센터의 한달체류 프로그램인 제주다움이 그것과 같은 맥락의 프로그램이다.

Q. 민간과 관에서 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어떻게 다른가

기업은 기업과 외부와의 오픈이노베이션이라면, 혁신센터는 제주가 섬과 외부의 오픈이노베이션, 행정과 민간 사이의 오픈이노베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제주로 이전한 기업은 지역의 건강한 생태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데, 다음이 이전할 때는 기업과 공공이 함께기업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매개할 기관이 없었다. 지금은 제주혁신센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Q.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타 지역 센터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른 지역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 안 한다. 지역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울산 같은 경우는 평균 소득은 가장 높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자체가 위기라는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지역 생태계 관점이 아닌, 대기업과 하청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하청기업은 파산위기를 맞는 사태가 발생했다. 위기가 오니까 지역 생태계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울산 경남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이 ‘선보엔젤파트너스’ 같은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서 울산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업하고 있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 내 필요에 의해 해결해가고 있는데, 산업 분야에 따라 속도와 방법이 달라 어느 지역이 조금 더 혁신이 빨라 보이는 시각차가 있을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있는가다.

Q. 센터장이 본 제주의 지역적 문제는 무엇이었나

제주는 인재들이 많이 떠났던 섬이다. 딱히 제주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 모두의 문제기도 하다. 나는 이걸 ‘한강의 기적의 저주’라고 표현한다. 단기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핵심 자원이 모두 서울로 모이게 되고, 지방 몇몇 도시는 생산기지가 됐다. 제주는 생산기지도 아니었다. 서울에 가야만 기회가 생기고 섬은 척박해서 기회가 없다고 한다. 제주에 사는 청년한테 기회가 안 생기는 부분이 해소가 돼야 한다고 봤다. 큰 기업이 제주로 이전해왔지만, 도의 성장과 연결고리가 없으므로 시너지가 안 난다. 제주도에 인재가 부족하고, 청년은 인재로 성장할 기회와 자극이 부족하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민간에 지원 사업을 많이 하는데 제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공공지원 사업을 받는 기업은 많아도, 외부에서 투자유치를 한 기업이 3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 부동산 투자나 중국 투자 유치 등에 힘을 쏟았다. 인재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제주도는 괸당(친척) 문화도 강하다. 인구가 10만 명 정도일 때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굉장히 좋은 문화지만, 70만 명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는 원주민과 이주민이 만날 기회가 없게 해버린다. 그래서 ‘약한 연결고리’를 많이 만들자고 생각했다. 거기서 혁신이 나오니까.

Q. 약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방안은 무엇인가

센터의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입주자와 입주자, 입주자와 외부인이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멘토링도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형태다. 현재 입주기업의 투자유치도 500억 원 규모인데, 이런 일들이 3년 전에는 없던 것이다. 센터 내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일을 하는데, 나를 포함한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이들을 서로 연결해준다. 이게 센터의 본연의 기능이다. 제주는 이런 공간이 독특하다. 스타벅스에서도 일을 할 순 있지만 서로 연결이 되진 않는다. 제주에 예전엔 없던 공간이 생긴 것이다.

Q. 센터장이 말했듯, 제주에는 ‘괸당(친척)’ 문화가 강해서 외부인과 잘 섞이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있다

제주 사람들은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시너지를 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인재 중심으로 본다면 제주를 떠났던 인재가 경험을 많이 쌓고 돌아와 여기서 시너지를 내야 한다. 서명숙 이사장이 제주로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지 않았나. 새로 들어오는 인재들이 제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혁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동산 투자 말고 말이다. 제주의 청년이 인재가 될 기회를 현장에서 배우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인재 중심 전략과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를 한 세트로 보고 일을 하고 있다.

Q.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를 더 설명해달라

영국 토니 블레어가 말한 ‘제3의 길’이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를 기반으로 한다. 광산업이 무너진 리버풀이 크리에이티브 시티가 됐다. 미국의 리처드 플로리다도 저서 ‘창조계급’에서 어떤 도시가 창조도시로 성장하고 어떤 도시가 몰락하는지를 연구했다. 샌프란시스코와 텍사스 오스틴에 인재가 몰려드는 이유는,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 이 세가지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 중에서도 관용, 다양성의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크리에이티브 중심의 문화가 지역에 결합되어야 하고 새로운 인재가 몰려들어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Q. 스타트업을 하기에 제주의 강점은 무엇인가

TV를 틀면 서울 아니면 제주만 나온다. 새로운 예능이 나와서 어느 지역에서 촬영했나 보면 대체로 제주다. 제주의 강점은 서울의 반대되는 매력이다. 그리고 서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도 하다. 배 타고 다닐 때야 멀었지만, 이제는 저가항공도 많아져서 서울에서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지역이 됐다. 서울과 궁합이 잘 맞는다.

Q. 올해 제주센터가 중점을 두는 일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째, 지역 투자 생태계를 만들겠다. 센터가 직접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도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 서울에서 들어온 돈이다. 올해부터 제주도 예산으로 우리 센터가 시드머니 투자를 시작한다. 그리고, 엑셀레레이터 크립톤이 센터와 협업하여 제주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도민들도 펀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둘째는 도시재생과 협업이다. 죽어가는 원도심의 공간을 스타트업이 들어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동시에 원도심은 스타트업의 일하기/살기, 관계맺기, 투자받기를 할 수 있는 창조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는 파트너를 다양화하면서 시너지를 확대하겠다. 기존에 카카오나 아모레퍼시픽 등과 협업했는데, 앞으로는 다자간 협력을 하는 것이 중소기업벤처부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Q. 정부 센터에서 직접 투자 유치를 하는 경우는 없지 않았나

센터가 당장 재무이익을 얻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센터가 투자했다는 것만으로도 스타트업이 초기에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고, 센터도 지역 혁신창업생태계에서 조성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디캠프도 3년 차가 지나면서 투자 기능을 갖췄다. 물론, 전국 혁신센터들 중에서 직접 투자는 처음이다. 도비를 갖고 활동하기 때문에 규정상 도에서 승인해야 하는 문제인데 도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다. 지원 사업은 많지만 투자는 사례가 없어서, 정관을 만들고 타 센터에 공유했다. 강원 센터도 여기에 준해 규정 만들었고 직접 투자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존 사례를 보면, 기관들끼리 경쟁의식을 느끼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픈소스의 공유문화가 인터넷기업을 발전시켰듯이 기관에도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 서로 주고받으면서 더 잘하면 된다.

Q. 센터에는 주로 어떤 기업들이 입주해 있나

제주에 특성에 맞는 관광과 IT를 연결하는 기업과 6차산업이 많다. 그 외에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기업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제주가 좋아서 제주에 근거를 두는 ‘리모트 워크’ 글로벌 기업이다. 워드프레스를 만든 ‘오토매틱’ 같은 기업은, 500명 직원이 세계 50개국에 흩어져 일한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본사 사무실도 없앴다. 다 리모트로 일한다. 그래도 시장 점유율이 60%가 넘는다. 제주에서도 그런 기업이 나올 수 있다. 제주 본사, 서울 지사 같은 구조는 대면 문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제주 같은 섬이라는 한계가 글로벌 진출엔 강점이 될 수 있다. 제주의 매력을 활용하여 처음부터 동남아를 포함해 원격 근무로 스타트업을 셋업하면, 초반에는 힘들어도 기업의 글로벌 진출은 그냥 되는 거다. 그런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앞으로 어떤 일에 관심이 있나

앙트레프레너는 스타트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공무원 앙트레프레너도 있을 수 있다. 기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실험하고 리뷰하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내 창업기관은 아직 우리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창업을 다 담담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역의 창업 생태계의 조성자 역할로 생태계 이슈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가는데 집중할 거다. 이 과정에서 지역 민간 엑셀러레이터 등 다양한 파트너들이 함께 성장하게 될 것이다. 10년 뒤, 제주 생태계가 아주 잘 되면 지금 센터에 입주한 기업들이 1세대 커뮤니티가 되지 않겠나. 이들이 선배 기업이 될 때가 몇 년 안에 올 거다. 이런 창업 생태계가 커지는데 최소한 10년이 걸린다. 생태계가 커지면? 그때는 또 내 나름대로 할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웃음).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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