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스타트업의 요람 된 수자원공사
신기술을 개발하는 딥테크 스타트업은 시장이 필요하다. 때문에 정부가 신기술의 고객이 돼달라는 요구가 스타트업 업계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공공부문의 AI 전환(AX)을 추진하려면 스타트업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과 딥테크 스타트업의 협력 사례를 통해 공공 AX가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스타트업에는 어떤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공공기관 AX 기획 ①한국마사회] 지금 ‘말’ 산업에 스타트업이 모인 이유
[공공기관 AX 기획 ②우체국물류지원단] 협업하다 보니 성장한 화물 자율주행
[공공기관 AX 기획③ 한국수자원공사] 협력 스타트업 누적 281곳, 기술 스타트업의 요람이 된 기후테크혁신처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스타트업 업계에 각별한 기관이다.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부터 공동 기술개발, 실증, 해외 진출까지 폭넓게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2018년부터 벤처펀드에 1200억원을 출자했고, 이 중 일부는 이미 수익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협력한 스타트업만 281곳에 달한다. 금융기관이나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이 아닌 공기업이 스타트업의 성장 전주기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공사 내 물산업 육성 전담조직이 신설된 시기는 2017년 7월이다. 당시 ‘물산업플랫폼센터’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스타트업 특화지원에도 착수했다. ‘K-water 협력 스타트업’ 제도를 통해 지원받은 스타트업은 현재 누적 281개사에 달한다. 2022년부터는 자체 클라우드 기반 디지털 플랫폼 ‘워터라운드’를 통해 솔루션 개발부터 글로벌 진출까지 지원하고 있다.
2017년 당시 물산업플랫폼센터는 3개팀, 정원 18명으로 출범했다. 현재 기후테크혁신처는 4부 1팀, 57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웬만한 엑셀러레이터(AC) 규모보다 크다. 기후테크혁신처의 중단기 핵심성과지표(KPI)는 기후환경·물산업 분야에서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의 ‘예비 유니콘’을 육성하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이처럼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인 이유는 기후테크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기후테크 스타트업 중에서도 특히 물 산업은 중소기업이 98%를 차지한다. 이 중 20인 미만의 영세 사업이 79.9%다. 수익성이 크지 않은 산업 구조상 스타트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보니 아직은 예비 유니콘도 탄생하지 않았다는 게 공사 측 설명이다. 공공기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영우 한국수자원공사 기후테크혁신처장은 “기후테크 산업 발전은 한국수자원공사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공성 측면에서 국내 기후테크 산업을 키워야만 했다”며 “한국수자원공사는 기후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벤처기업·VC·AC와 선단형으로 협력해 나가는 방향을 선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역대급으로 바쁜 시기다. 스타트업과 수행할 정부과제만 총 84건을 기획했다. 이 중 3분기까지 40건의 정부과제가 선정될 예정이다.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초격차 스타트업(DIPS),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협업 등 다양한 정부 과제를 수행한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 성과공유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투자금도 선순환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벤처펀드에 총 1200억원을 출자했다. 이 처장은 “2018년부터 투자한 펀드에서 일부 수익이 돌아오고 있다”며 “들어온 수익을 재투자하기 위해 올해 기후테크 산업에 50억원을 추가 출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기술 스타트업 지원이 실제 기업에는 어떤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모빌리오·아이케미스트·디아이랩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모빌리오, 피지컬 AI로 수도사업장 순찰

모빌리오는 자율주행 로봇 솔루션을 활용해 위험한 산업현장의 점검과 순찰 업무를 자동화하는 스타트업이다. 사람이 위험한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로봇이 먼저 현장을 점검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와의 인연은 2020년 K-water 협력 스타트업 9기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CES 2026에서는 한국수자원공사 공동관에 참가해 산업현장 안전관리 솔루션을 선보였고, 피지컬 AI 기반 솔루션으로 혁신상을 받았다. 올해는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전략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협업은 한국수자원공사의 물관리 AI 전환(AX) 방향과 모빌리오의 솔루션이 부합해 추진됐다. 정은정 모빌리오 매니저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올해 선언한 ‘물관리 AI 전환’은 점검 데이터를 정량화해 설비 이상을 사전에 발견하고, 작업자가 위험한 공간에 직접 들어가는 횟수를 줄이려는 방향”이라며 “이는 모빌리오가 추진해 온 피지컬 AI 기반 산업안전 자동화와 잘 맞았다”고 말했다.
해결 과제는 ‘피지컬 AI 기반 수도사업장 밀폐공간 질식사고 예방체계 구축’이다. 모빌리오는 4족 보행 로봇을 활용해 수도사업장 내부를 주기적으로 자율 순찰하면서 복합가스와 온·습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 현장 지도 구축과 자율주행 검증을 완료했으며, 로봇 운행 현황과 측정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맞춤형 대시보드를 개발하고 있다.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스 농도 변화를 추론하고 발생 가능 지점을 역추적하는 알고리즘도 개발 중이다.
이번 협업에는 모빌리오의 산업현장용 피지컬 AI 플랫폼 ‘네비게이트X’ 기술이 적용됐다. 네비게이트X는 로봇 위치 정보와 복합가스·온습도 센서로 수집한 데이터를 함께 저장하고 분석하는 플랫폼이다. 향후에는 가스와 온·습도 측정을 넘어 계기판 판독, 누수·누기 확인, 열화상과 소음·진동 분석 등 다양한 점검 기능을 연계할 예정이다.
정 매니저는 “이번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작업자의 진입 부담이 큰 다른 물관리 시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피지컬 AI 안전관리 모델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이케미스트, 합성데이터로 스마트정수장 고도화
아이케미스트는 3D 시뮬레이션과 디지털트윈을 기반으로 합성·증강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하는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자체 플랫폼 ‘CEN’을 통해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학습용 합성데이터를 생성한다.
한국수자원공사와의 협력은 2023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아이케미스트는 K-water 16기 협력 스타트업에 선정된 이후 한국수자원공사와 PoC 1건, 테스트베드 1건, 지사 납품 2건, 창업진흥원 주최 오픈이노베이션 2건, 워터라운드 관련 사업 4건 등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한 사례는 공동 수상의 성과도 거뒀다.
정민욱 아이케미스트 대표는 “단발성 협업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 한국수자원공사의 현장에서 물산업을 함께 이해하며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이어 “합성데이터의 가치는 ‘진짜 현장’과 만나야 완성될 수 있다”며 “한국수자원공사는 한강유역 광역정수장의 3년치 운영데이터와 실증 테스트베드를 보유해 국내에서 이 문제를 검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올해 진행 중인 협업 과제는 ‘데이터 증강 기반 스마트(AI)정수장 약품공정 정확도 향상 기술개발’이다. 핵심은 집중호우 등으로 정수장에 유입되는 원수의 탁도가 갑자기 높아졌을 때 필요한 응집제 투입량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다. 아이케미스트 측 답변서 기준 협업은 지난 5월 시작돼 2027년 2월까지 약 9개월 일정으로 진행된다. 현재 시흥정수장 테스트베드를 대상으로 현장 실증에 진입하는 단계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24년 기준 전국 43개 광역정수장에 AI정수장을 구축했고, 정수처리 8개 공정에 AI를 적용해 왔다. 다만 100NTU 이상인 ‘고탁도 구간’은 학습 데이터가 부족해 예측이 어려웠다. 최근 3년치 운영데이터의 약 95%가 저·중탁도 구간에 집중돼 있고, 고탁도 데이터는 5%에도 미치지 않았다. 집중호우로 탁도가 급격히 올라가면 예측 오차가 커지면서 약품이 과다 투입될 가능성도 있었다.
아이케미스트는 이 문제를 세 단계로 해결하고 있다. 첫째, 시계열 생성모델을 합성·증강데이터 기술에 결합해 데이터가 희소한 고탁도 구간을 증강한다. 둘째, 운영자가 사용하는 조견표(복잡한 수치와 조건을 알아보기 쉽게 만든 표)의 규칙을 머신러닝 예측과 결합한다. 셋째, 디지털트윈 기반 물리합성을 통해 고탁도 상태를 시뮬레이션하고 실제 측정 데이터와 정합한다.
현재 시흥정수장을 대상으로 사전 현장 검토(Pre-PoC)를 마치고 현장 실증(PoC)에 들어가는 단계다. 실제 현장 데이터로 성능을 검증한 뒤 결과를 다시 모델에 반영해 고도화하는 방식이다.
아이케미스트는 고탁도 대응 성능을 입증한 뒤 국내 공공 실증 레퍼런스를 앞세워 해외 고객사 10곳 이상, 10억원 이상의 수출 성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미지·3D 합성 역량을 수질 다변량 시계열로 확장한 첫 레퍼런스를 확보했다”며 “공공 실증 레퍼런스는 그 자체로 해외 수출의 신뢰를 담보한다”고 말했다.
디아이랩, 녹조 발생 관제시스템 개발 중

디아이랩은 AI와 기상·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산업 현장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후 AI 스타트업이다. 생성형 AI 기반 위성강수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에서 2km 공간해상도, 10분 시간해상도의 강수정보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와의 협력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협력 스타트업 사업에 참여했고, 12월에는 워터라운드 프로그램과 협약했다. 지난해 12월부터 한국수자원공사 창원권지사와 공동 과제를 기획한 뒤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PoC를 진행하고 있다.
명광민 디아이랩 대표는 “지난해 K-water 세미나에서 기술 발표를 진행한 이후 한국수자원공사 측에서 디아이랩의 기술에 관심을 보였다”며 “협력 스타트업과 워터라운드에 선정되면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협력 과제는 ‘AI 기반 기후예측을 통한 녹조발생 관제시스템 개발’이다. 디아이랩은 녹조 대응을 위한 사전 경보체계를 구축해 수질을 적기에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AI 기반 이상감지 및 예측 플랫폼 디아이캐스트(DI CAST)를 통해 센서 오류와 비정상 데이터부터 제거하고, 기상·강수·수문·수질 데이터를 학습시킨 결과로 6시간 이후부터 일어날 고탁도 현상을 예측하고 있다.
과제를 수행하면서 얻은 물 관리 데이터는 현재 디아이랩의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디아이랩은 협업을 통해 취수장이나 가압장 같은 물 관리 시설의 수질 데이터와 운영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현업에서 활용 가능한 의미있는 결과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명 대표는 “가장 큰 성과는 디아이랩의 기후 AI 기술이 물산업에서도 실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검증했다는 것”이라며 “기후 데이터를 산업 현장의 행동 가능한 의사결정 정보로 만들고자 하는 사업 방향을 이번 협업으로 이루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오민선 기자>omsoms94@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