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커머스 결제 표준 전쟁, 한국에 남은 시간은 12개월
요즘 한국에서 AI 이야기가 나오면, 결론은 대체로 ‘우리도 우리 모델(LLM)이 있어야 한다’로 귀결된다. 소버린 AI를 필두로 정책, 자금도 이 곳에 몰린다.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략경제 포럼'(주최·주관 재정경제부, 산업연구원)에 모인 이들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AI 에이전트가 탐색부터 결제까지 하는 에이전틱 커머스가 사실상 임계점을 넘은 지금, 단순히 기초 모델 개발 경쟁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표준·신뢰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다만 한국은 아직까지 AI 에이전트 결제가 가능한 법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활발하게 논의 중인 글로벌 AI 에이전트 결제 표준에 참여할 만한 사례를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표준이 자리잡은 후 실제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까지 남은 기간은 12개월, 길어봤자 18개월이다. 설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늦은 이들에게는 규격을 지켜야 할 의무만 남고, 의제를 피력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이날 포럼에서는 규제 샌드박스로 표준 실증에 나서자는 제안이 나왔다. 현장에서는 공급도 공급이지만 수요가 중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금융당국에서는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고 답했다.
4대 프로토콜 굳어가는데…”한국은 지분 없다”
재정경제부 전략경제자문단 AI 에이전트 커머스 분과장인 김용진 서강대 경영대 교수는 이날 포럼에서 “사실상 표준화가 마무리되는 지금, 후발 참여자는 규격 준수 비용만 부담하고 우리 아젠다를 포함할 수 없다”며 “신뢰와 보안 규격이 같이 가는 상황에서 거래 표준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우리가 검증하거나 표준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여기서 핵심은 표준이다. 김 교수는 에이전트가 거래를 대신하려면 네 겹의 규약이 필요하며, 에이전트가 데이터와 도구에 접근하는 MCP, 에이전트끼리 대화하는 A2A, 그 사이에서 돈이 오가는 ACP, 그리고 이 모두를 기업들이 공유하기 위한 UCP 4가지를 들었다.
김 교수가 표준과 함께 강조한 다른 한 축은 신뢰다. 사람이 아닌 에이전트가 거래 당사자가 되면 거래 상대를 확인하는 체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고객 확인(KYC)이 아니라 KYA(Know Your Agent)가 핵심 자산”이라며 에이전트의 신원과 권한을 확인하는 인프라를 프로토콜 호환성과 함께 꼽았다.
그러나 한국은 이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김 교수는 “아시아태평양 최초 포괄적 AI 기본법 입법부터 결제 인증 인프라,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한 데이터 축적 등 자산이 있지만, 현재 4개 프로토콜에 지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제 표준화 회의체 참여 실적이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정책 차원에서 파운데이션 모델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 시간 동안 다른 국가들은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다. 글로벌 게이트웨이 자리를 노리는 미국은 민간이 표준을 주도하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뒤를 받치는 구조며, EU는 AI법(AI Act)을 앞세워 규제로 시장 진입 조건을 설정하고 있다.
표준화가 자리잡는 데까지 남은 시간은 12~18개월으로, 한국이 빠르게 치고 들어가야 표준 협샹력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올해 4월 UCP에 아마존과 메타가 합류하면서 사실상 규격이 굳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모델은 투입 요소일 뿐, 활용 인프라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지점”이라며 공공 데이터 API 개방과 표준화, 산업별 에이전트 생태계 조성, 공공 부문 AI 수요 창출, 중소상공인 활용 지원 등 활용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푸는 게 빠르다”…규제 샌드박스형 다중컨소시엄 제안 VS “근데 수요는요?”
AI 에이전트 커머스 분과장인 김 교수가 대안으로 제시한 건 규제 샌드박스형 다중 컨소시엄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플랫폼, 금융사, 물류사가 자율적으로 팀을 짜 실증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정부가 이를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하고 상호운용성 시험을 지원하는 식이다.
김 교수가 제안한 규제 샌드박스형 다중 컨소시엄의 심사 기준은 표준 프로토콜 준수와 상호운용성, 데이터·개인정보·소비자 보호, 결제와 신원 인증을 포함한 신뢰 확보로, 그는 정부가 실증 특례와 임시 허가 또한 빠르게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간은 3년으로 1년차 실증 개시, 2년차 확장, 3년차 검증과 제도화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제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은 가능한 한 공동자산으로 하자고도 제안했다. 이 같은 다중 컨소시엄을 통해 한국이 에이전트 생태계 조성, 디지털 주권 확보, 4대 프로토콜 지분 확보, 글로벌 수출 기반 마련 등 4가지 기대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이날 토론회에서 기업들은 공급 위주의 설계보다는 수요와 시장도 균형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공급이 아니라 수요와 시장이 혁신을 완성한다”며 “실제 사용해야 하는 기업과 소비자들이 여러 지불 수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출발점에서 참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초고속 인터넷이나 전자정부, 스마트폰 보급률에서 봤듯 정부가 시장에 직접 관여한 게 아니라 소비자와 참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 왔다”며 수수료 장벽 인하, 공공조달 연계, 바우처 등을 예로 들었다. 또 규제 샌드박스 심사에 대해 “시장과 고객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는 이승현 인핸스 대표는 AI 에이전트 커머스의 병목이 기술이 아닌 플랫폼의 봇 차단에 있다고 짚었다. 그는 “‘북어국을 끓이고 싶으니 북어를 사달라’고 하면 에이전트가 북어를 못 찾는다”며 “AI가 화면을 인식해 결제하는 데 기술적 문제는 없지만, 플랫폼들이 로봇 접속을 막아놔 우회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고 말했다.
수요를 만들면 공급자인 플랫폼도 문을 열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플랫폼이 AI 에이전트 사업에 참여해야 할 구체적인 실증안도 제시했다. 소비자 1만명을 테스트베드로 모집해 에이전트 구매 시 10% 할인을 제공하면 연간 예산은 약 50억원 수준이고, 플랫폼이 해줄 일은 robots.txt에 실증 참여 에이전트 기업을 허용하는 것 하나라는 계산이다. 또 검증 지표도 응답 속도나 보안이 아니라 거래 건수를 봐야 한다고 했다.
금융당국 “제도 정비 착수”…망분리 해제·동의 제도 개편 검토
정책 당국도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밝혔다.
토론에 참여한 유영준 금융위원회 디지털자산정책관은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낸 보고서를 인용해 “인간이 직접 거래를 개시하는 ‘클릭 투 페이’에서 AI 에이전트가 미리 설정된 조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제를 실행하는 ‘디사이드 투 페이’로 바뀌고 있다”며 “표준·신뢰 인프라를 누가 설계하느냐가 글로벌 주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구체적인 제도 개선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신용정보법은 정보 제공 시 사전적·개별적 동의를 전제하고 있어, 에이전트가 위임자를 대신해 새로운 구매 상대방에게 정보를 줄 때마다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하는 구조다.
그는 “사전적·포괄적 동의가 가능한지 신용정보법 동의 제도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014년 도입된 금융회사 망분리 규제에 대해서는 “지난 6월부터 보안 목적의 AI 활용을 위한 긴급 완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올해 말까지 AI 활용 능력과 보안 역량을 갖춘 금융회사에 대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전면적인 망분리 해제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소비자를 대신해 결제하는 상황에서 검토해야 할 리스크도 함께 열거했다. 소비자가 설정한 지시와 다른 구매가 이뤄지는 오류, 에이전트들이 유리한 거래 조건에 초고속으로 쏠리는 현상, 판매자의 다크패턴 악용, 자금세탁 방지 제도 정비 등이다.
또 에이전트 커머스가 반드시 스테이블코인만을 전제로 논의되기보다는 기술 중립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 국장은 “초소액 고빈도 거래도 건별 즉시 결제가 아니라 주·월 단위 정산이라면 비용이 달라질 수 있고, 비자 등도 스테이블코인과 카드 사후 정산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로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 규율을 담을 가상자산 기본법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조속히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장이 얘기한 많은 내용들이 규제 샌드박스에서 검증돼야 하는 내용들이고, 그걸 하기 위해 샌드박스를 하는 것”이라며 “이것들이 다 돼야 샌드박스에 들어올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샌드박스를 열어놓고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