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도 쿠팡하듯”…’사줘’가 그리는 에이전틱 커머스
오랜만에 커머스 서비스 영역에서 꽤 큰 초기 투자가 터졌습니다. 지난 7월 말 152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사줘(SAZO)’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팀, 꽤 재미있는 사업을 합니다. 직구를 하며 느끼는 여러 불편을 AI로 해결한다는 비전을 내세웠습니다. 스스로를 ‘에이전틱 커머스’ 기업으로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 경기도 의왕시 사줘 사무실에서 길마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직구, 뭐가 그리 불편한데
직구를 해본 분들, 어떤 게 제일 불편했나요? 길 대표는 어릴 때부터 취미인 음악 기기를 해외 직구로 사들였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길 대표가 주목한 직구의 대표적인 어려움은 배대지(배송대행지) 이용 방식입니다. 배대지란 해외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이용하는 현지 배송지 겸 배송 대행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먼저 해외 사이트에서 상품을 찾는 것부터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워낙 여러 사이트에 물건이 올려져 있으니, 들어갔다 나왔다만 수십번을 해야 하죠. 또 배대지는 대형 사이트 위주로만 상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해두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상품을 찾기 어려웠고요.
그 다음이 더 문제입니다. 상품의 사이즈와 무게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탓에, 최종적으로 얼마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용자는 직구 카페를 뒤지며 가격 정보를 찾아다녀야 합니다.
구매를 결정해도, 예측이 어려운 통관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가죽이나 신발처럼 관세가 붙는 품목을 미리 가려내기 어렵고, 아예 통관이 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메라 필름처럼 특이 케이스의 경우 물건은 그대로 폐기되고요. 여기에 중고품 거래 사기, 해외 사이트 결제 과정의 카드 정보 유출까지 걱정해야 하죠.이런 불편들이 길 대표의 창업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쿠팡’ 쓰듯 직구도 해보자
처음 데모를 만들 당시, 길 대표는 본인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정보 입력 자동화’부터 기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배대지는 이용자가 뭘 샀는지 일일이 적어 넣어야 했거든요. 이걸 자동화해서 상품 URL만 넣으면 되게 하고, 완벽하진 않아도 관세와 배송비를 일부 예측해 보여주는 것. 딱 그 정도가 초기 아이디어였습니다.
지금의 사줘는 어떨까요. 길 대표는 “거의 일반 인터넷 쇼핑처럼” 이용할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사줘는 한국인이 일본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 걸 시작으로, 지금은 일본에서도 한국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과정은 간단합니다. 한국의 경우, 이용자가 사줘 서비스에서 원하는 물건을 검색하거나 URL을 넣으면 일본 다양한 커머스 플랫폼의 상품을 찾을 수 있고요. 이용자가 이중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상품 구매를 누르면 사줘가 계산한 배송비와 관세가 더해진 금액이 나옵니다. 소비자는 결제만 하면 됩니다. 일본의 중고 거래 상품을 쿠팡에서 구매하듯 편리하게 산 것입니다.
사줘는 중소 사이트부터 중고품, C2C까지 일본 주요 이커머스와는 대부분 연동돼 있습니다. C2C 대표 주자인 메루카리와 일본 대표 종합몰 라쿠텐, 라쿠마가 대표적이고요. 메루카리·라쿠텐과는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공동 마케팅도 진행 중입니다. 연동되지 않은 쇼핑몰이라도 URL만 넣으면 상품 정보를 번역해 보여주고 구매대행까지 이어집니다.
소비자가 편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사줘는 뒤에서 여러 일을 처리합니다. 중고 상품을 더 저렴하게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있으면, 사줘가 대신 가격을 흥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매한 상품은 일본과 한국의 물류센터로 들여온 뒤, 양국의 소비자에게 배송합니다.
이미 숫자도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길 대표에 따르면, 한달 이내 사줘를 다시 방문하는 이용자는 한국 35%, 일본 30% 입니다. 또 첫 구매 후 한 달 내로 재구매하는 비율은 50%에 가깝습니다. 월 거래액도 최근 6개월간 약 7배 늘어났고요. 그는 “회원 1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가 배대지를 처음 써본 사람”이라며, “기존에 없던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길 대표는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최소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줘가 만드는 해자
설명은 이해가 되는데,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요즘 에이전틱 커머스를 내건 곳이 꽤 많지만, 성공 사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에이전틱 커머스가 어떻게 하면 잘될 수 있나에 대한 답이 시장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의문에 길 대표는 “에이전트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그 일이 복잡하고 반복되고 실패 확률이 높은 일이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국내 이커머스에서의 구매는 이미 충분히 편리합니다. 예를 들어 쿠팡에서 양말을 산다면요? 실패할 가능성도 낮고, 복잡하지도 않죠. 정기결제 서비스도 있고, 과거 구매 이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UX가 마련돼 있습니다.
국경 너머로 상품이 오가는 건 정반대입니다. 소비자는 익숙하지 않은 해외 사이트에서 상품을 일일이 찾아 관세와 배송비를 얹어 다시 비교해야 합니다. 또 그게 실제로 통관될지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더 따라붙습니다. 이 사업, 꼭 ‘사줘’여야 할까요? 에이전트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걸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걸 사줘가 해낼 수 있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길 대표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갈라서 봅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검색과 정보 탐색을 잘합니다.
하지만 커머스에 맞는 데이터를 쌓는 건 다른 일입니다. 길 대표는 “예를 들어 일본에서 텐트 하나를 찾는다고 하면, 이 텐트의 재질이 뭔지, 실제 규격이 어떻게 되는지 같은 정보는 큰 회사들도 좀처럼 모으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사줘는 데이터를 모아 에이전틱 커머스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웹사이트 구조를 AI가 이해하고 직접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DOM LLM 기술로 화면 구조를 읽은 후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 직접 통관 및 물류로 오프라인 현장 데이터를 쌓는다는 점도 차별점으로 내세웠습니다. 길 대표는 “HS코드와 세율은 시시때때로 바뀌거나 현장의 판단이 달라지는 등 통관의 암묵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외주 업체에 일을 맡기면 개별 케이스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어렵지만요. 회사가 직접 업무를 하면 특정 상품이 특정 세관에서 어떻게 분류되고 과세되었는지, 또 각 세관별로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 물류도 효율성을 높이는 무기로 보고 있습니다. 쿠팡이나 아마존은 하나의 SKU를 대량으로 쌓아 두고 최적화합니다. 반면 C2C 플랫폼 등을 통한 직구는 SKU가 사실상 하나씩입니다. 롱테일이 길게 늘어지니 최적화가 까다롭죠. 사줘는 직접 물류를 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내려 합니다. 또 물류 현장에서 상품 정보 등을 비전 AI로 수집해 배송비 계산을 포함해 구매 과정 전반의 효율을 높이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길 대표 스스로도 “탐색도 계산도 아직 멀었다”고 말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용자가 큰 불편 없이 쓸 수준이지만, 최근 넓히고 있는 미국 쪽은 정확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하고요. 가격 흥정처럼 아직 사람 손을 거치는 과정도 있습니다. 또 길 대표는 사줘의 UI 등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번 투자금은 상당 부분 연구개발(R&D)로 갑니다. 배송비와 관세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그간 쌓인 기술 부채를 해결하는 게 우선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일본으로 나가는 물량은 비용 구조 최적화가 덜 된 상태라, 지금은 매출보다 이쪽 개선과 채용에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확장은 단계를 나눠 나아갈 계획입니다. 올해와 내년 우선순위는 한국과 일본에서 해외로 나가는 수출입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이외 지역은 물류 거점 제휴나 협업을 타진하는 테스트 단계로, 한국과 일본 외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입증하는 걸 중장기적인 목표로 삼았습니다. 길 대표는 “국가가 늘수록 규제 대응 복잡도가 제곱으로 늘어나는 탓에, 어디를 먼저 볼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상품을 탐색·구매·배송하는 사줘의 운영 시스템을 기업에 공급하는 엔터프라이즈 사업도 PoC(개념검증) 단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사 플랫폼과 B2B 백엔드, 두 갈래를 함께 가져가겠다는 구상입니다.
사줘가 하고 싶은 건 흩어진 것을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물건을 찾고, 값을 흥정하고,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통관을 넘기는 과정을 에이전트가 대신 처리하는 그림입니다.
길 대표는 “3년 후에는 에이전트 시대가 본격적으로 올 거라 보고 있다”며 “소비자가 어디서든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사줘의 에이전트가 파편화된 정보와 상품 정보를 하나로 모아서 주는 걸 생각하고 있다”며, 크로스보더 이커머스에서 사줘가 표준이 되는 걸 바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성아인 기자> aing8@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