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양자컴퓨팅의 미래는 지금, 올해 양자우위 입증”
“양자컴퓨팅의 미래는 지금이다.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는 비용과 지금 투자하는 비용을 비교해야 한다.”
페트라 플로리주네(Petra Florizoone) IBM 퀀텀 글로벌 세일즈 총괄 디렉터는 19일 서울 콘래드에서 열린 ‘IBM 퀀텀 커넥트 APAC’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완성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기술 역량과 활용 생태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양자컴퓨팅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그는 “마라톤을 뛰려면 미리 훈련해야 한다”며 “양자컴퓨팅도 지금부터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팅은 아직 연구와 검증이 이어지는 초기 기술이지만, 기업과 연구기관이 적용 분야를 찾고 알고리즘을 익히는 준비를 시작해야 실제 활용 단계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IBM은 이날 행사에서 양자컴퓨팅의 기술 로드맵과 산업 적용 방향을 공개했다. IBM은 신약 후보 물질 탐색, 배터리 소재 설계, 금융 위험 계산처럼 기존 컴퓨터로 계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를 양자컴퓨팅이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분자 구조와 시장 변수처럼 경우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문제에서 양자컴퓨팅이 기존 컴퓨팅의 한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26년 양자 우위·2029년 내결함성 시스템 목표
IBM이 제시한 로드맵은 두 축으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올해 고객·협력사와 함께 ‘양자 우위(Quantum Advantage)’를 입증하는 것이다. 양자 우위는 특정 문제에서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더 빠르거나, 더 정확하거나, 더 낮은 비용으로 계산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두 번째는 2029년까지 대규모 내결함성 양자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내결함성(Fault Tolerance)은 계산 중 오류가 발생해도 이를 보정하면서 연산을 이어갈 수 있는 성질이다. 양자컴퓨터는 양자비트가 외부 환경에 민감해 오류가 쉽게 생긴다. 실제 산업 문제를 안정적으로 풀려면 오류 정정 기술이 필요하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양자 우위를 입증하려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100개 이상 양자비트(큐비트)를 갖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봤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에서 정보를 표현하는 기본 단위다. 기존 컴퓨터가 0과 1의 비트를 쓰는 것과 달리, 큐비트는 양자역학적 성질을 이용해 특정 계산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키스킷(Qiskit)’을 제시했다. 키스킷은 양자 알고리즘을 만들고 IBM 양자 시스템에서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오픈소스 개발도구다. IBM은 키스킷을 통해 연구자와 개발자가 양자컴퓨팅을 실험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계도 핵심 조건으로 꼽혔다. IBM은 ‘IBM 퀀텀 네트워크’를 통해 300개 이상 협력사와 양자컴퓨팅 적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양자컴퓨팅은 아직 모두가 배우는 단계”라며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을 함께 공유하면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기존 컴퓨터를 대체하는 것 아니다
이번 기조연설에서 IBM이 가장 강조한 단어는 ‘통합’이었다. IBM이 보는 양자컴퓨팅의 미래는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를 밀어내는 구조가 아니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양자처리장치(QPU)를 함께 쓰는 구조다.
CPU는 범용 계산을 맡는 기본 연산 장치다. GPU는 그래픽 처리용으로 출발했지만, 병렬 연산에 강해 인공지능(AI) 학습과 고성능컴퓨팅(HPC)에 널리 쓰인다. QPU는 양자비트를 기반으로 특정 유형의 계산을 수행하는 양자처리장치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팅을 대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공지능(AI)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AI로 풀고, GPU가 잘하는 병렬 연산은 GPU가 처리하며, 기존 컴퓨터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부 계산 구간에 양자컴퓨팅을 투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신약 개발 과정에서 AI는 후보 물질과 관련 데이터를 찾는 데 강점을 가질 수 있다. 기존 컴퓨터는 전체 업무 흐름을 관리하고 결과를 후처리한다. 이 가운데 분자 구조 시뮬레이션처럼 계산 난도가 높은 구간을 양자컴퓨터가 맡을 수 있다. IBM은 이런 방향을 ‘양자 중심 슈퍼컴퓨팅(Quantum-Centric Supercomputing)’아라고 설명했다. 양자컴퓨터를 독립된 장비로 두는 것이 아니라, AI·고성능컴퓨팅·기존 서버 인프라와 연결된 하나의 계산 환경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다.
신약·소재·금융으로 넓어지는 양자컴퓨팅
IBM은 양자컴퓨팅이 주로 활용될 분야로 생명과학, 소재, 자동차, 금융, 물류를 언급했다. 핵심은 특정 산업 전체가 한 번에 양자컴퓨팅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기존 컴퓨터로 계산 시간이 너무 길거나 비용이 커지는 구간에 양자컴퓨팅이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명과학에서는 신약 개발을 위한 분자 구조 시뮬레이션이 대표 사례로 제시됐다. 분자는 원자와 전자의 상호작용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이를 정밀하게 계산하려면 경우의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IBM은 양자컴퓨팅이 이런 분자 시뮬레이션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봤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클리블랜드 클리닉과 진행한 생명과학 분야 연구도 언급했다. IBM에 따르면, 2024년에는 원자 8개 수준의 분자 시뮬레이션을 수행했지만, 최근에는 1만2000개 이상 원자를 포함한 분자 시뮬레이션으로 확장했다. 양자컴퓨팅과 기존 컴퓨팅이 결합될 때 연구 범위가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재 분야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와 항공기 부식 방지 소재 탐색이 언급됐다. 금융 분야에서는 거래 최적화, 위험 분석, 채권 발행 성공 가능성 예측 같은 문제가 제시됐다. 물류 분야에서는 선박이나 차량이 많고 변수가 복잡한 상황에서 경로를 최적화하는 문제가 예시로 나왔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HSBC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HSBC가 기존 방식과 같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양자컴퓨팅 기반 벤치마크를 수행했고, 일부 결과에서 기존 컴퓨팅 대비 34% 나은 결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양자컴퓨팅이 모든 금융 업무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다. 계산 난도가 높은 일부 문제에서 기존 방식을 보완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오류 정정과 모듈형 확장이 관건
양자컴퓨팅이 실제 산업 활용 단계로 가려면 오류 정정이 필요하다. 백한희 IBM 퀀텀 디렉터 박사는 미디어 브리핑에서 오류 정정 디코더와 이를 뒷받침하는 하드웨어 개발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디코더는 양자컴퓨터 계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 정보를 해석해 어떤 보정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장치와 소프트웨어 체계를 말한다.
백한희 박사는 “IBM이 디코더에 필요한 제어 전자장비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며 “고객이 자체 인프라를 이용해 오류 정정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장 방식도 과제 중 하나다. 양자컴퓨터를 하나의 거대한 장비로만 키우기는 어렵다. IBM은 여러 양자 시스템을 연결하는 모듈형 구조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칩과 칩, QPU와 QPU 사이를 연결하는 양자 통신 링크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양자 시스템이 하나의 계산 환경처럼 작동해야 대규모 문제를 풀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기존 컴퓨팅과의 통합도 중요하다. QPU를 CPU·GPU와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데이터가 어느 장치로 이동해야 하는지, 어떤 계산을 어느 장치가 맡아야 하는지, 결과를 어떻게 다시 합칠지를 정하는 소프트웨어 체계가 필요하다.
백 박사는 과거 GPU가 CPU와 결합해 하나의 계산 환경으로 자리 잡은 과정을 예로 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GPU와 CPU를 함께 쓰는 방식도 연구 주제였지만, 지금은 많은 시스템에서 자연스럽게 쓰인다”며 “QPU도 앞으로 이런 통합 구조 안에서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생태계도 확장 가능성
IBM은 한국에서도 양자컴퓨팅 생태계 확대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연세대학교를 대표적인 협력 사례로 언급했다. IBM은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양자 시스템을 활용해 논문과 실험을 축적하고, 국내외 협력사와 함께 적용 사례를 찾아가는 흐름을 중요하게 봤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생태계가 커질수록 양자 시스템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요가 있다면 당연히 지원할 것”이라며 “시스템 확장과 생태계 구축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IBM은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CPU·GPU·QPU를 결합한 연구 환경이 일부 연구자와 기업에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대중적인 상용 서비스 단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양자컴퓨팅이 기존 컴퓨팅 인프라와 연결되는 흐름은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IBM은 양자컴퓨팅이 곧바로 일반 기업의 일상 업무에 널리 쓰이는 단계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현재는 연구, 개념검증, 벤치마크가 중심이다. 프로덕션 적용은 앞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다. 그럼에도 IBM은 2026년 양자 우위와 2029년 내결함성 시스템을 기술 전환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플로리주네 디렉터는 “양자컴퓨팅은 쉽지 않다”며 “키스킷을 배우고, 적용 사례를 이해하고, 기업 업무 흐름 안에서 어느 부분에 양자컴퓨팅이 가치를 낼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마라톤을 준비하려면 지금부터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곽중희 기자>god8889@byline.netwo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