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금융 IPO’ 할 곳, 미룬 곳, 하고 싶은 곳
지난해 디지털금융 업계에서 기업공개(IPO)를 하겠다는 소식이 연달아 이어졌다. 케이뱅크는 IPO 재수에 도전했고, 이어 토스와 인슈어테크 기업 아이지넷이 IPO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경기침체와 투자심리 위축은 증시불황으로 이어졌고, 결국 몇몇 기업들은 IPO 계획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올해는 어떨까. IPO 재수생 케이뱅크는 다시 한 번 IPO를 미루기로 했고, 토스는 국내 증시가 아닌 미국 증시 입성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두 기업의 IPO 계획이 바뀐 근본적인 이유는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받기 위해서’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국내 시장에선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아이지넷은 예정대로 IPO를 진행한다. 이르면 다음달 코스닥에 입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뱅크, 토스, 아이지넷의 IPO 계획 변경 원인과 향후 계획을 정리해봤다.
IPO 미룬 곳, 케이뱅크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두 번의 IPO에 도전했으나, 모두 좌초됐다. 케이뱅크는 지난 8일 증시 부진을 이유로 IPO를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케이뱅크는 보도자료를 내고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증시 부진으로 올바른 기업가치를 평가받기 어렵게 됨에 따라 상장 연기를 결정했다”며 “시장 상황이 개선되면 조속히 IPO 재추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케이뱅크는 공모주식수 8200만주, 총 공모금액 7790억원~9840억원, 시가총액 5조3000억을 설정했다. 그러나 기관투자 수요예측에 실패하면서 IPO를 철회했다. 일각에선 수요예측 실패 원인으로 케이뱅크의 구주매출 비율이 높고, 업비트 의존도가 높은 점을 지목하고 있다. 다트 전자공시에 따르면, 케이뱅크의 공모주식수 가운데 절반(4100만주)이 구주매출이다.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으로, 기존 주주들이 구주를 많이 팔려고 할수록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현재 케이뱅크의 전체 예수금 가운데 15% 이상이 업비트 예치금으로, 올해 업비트와의 계약이 종료되면 뱅크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이뱅크의 IPO 연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케이뱅크는 지난 2022년 9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이듬해까지 상장을 위한 준비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주식시장이 얼어붙고 기업가치가 떨어지자 IPO를 미뤘다. 당시 케이뱅크는 기업가치를 약 7조~8조원 정도로 기대했으나 시장에서는 약 4조원대로 평가했었다.
이후 케이뱅크는 IPO 재수에 도전했다. 케이뱅크는 지난해 8월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를 승인받고,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뒤 상장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수요예측 실패로 인해 IPO를 올 초로 연기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증시 부진 등을 이유로 다시 한 번 IPO를 미루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선 케이뱅크가 내년에 다시 IPO 재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케이뱅크는 지난 2021년 1조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이 중 MBK파트너스, 베인캐피탈, MG새마을금고 등으로부터 받은 약 7250억원의 투자에는 상장 시 동반매각청구권, 조기상환청구권의 조건이 붙었다. 케이뱅크가 2026년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동반매각청구권(주주가 다른 주주의 주식까지 한 번에 팔 수 있는 권리)이 부여되어, 모회사인 BC카드가 투자자들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제3자에게 팔아야 한다.
당초 케이뱅크는 IPO 이후 차별화 전략으로 리테일 상품 강화, IT신기술을 더한 플랫폼 전략을 내세울 계획이었다. 비대면 중소(SME) 대출을 내놓고, 대체불가능토큰(NFT), 조각투자(STO) 등 대체투자 영역을 확대하기로 전략을 짜뒀다. 또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 등 신기술을 활용해 신용평가모형을 고도화할 계획이었으나, IPO 연기로 미뤄지게 됐다.
IPO할 곳, 아이지넷
어려운 시장상황에도 불구하고 IPO에 나선 곳이 있다. 보험에 기술을 더한 산업인 인슈어테크 기업 아이지넷은 코스닥 상장(사업모델 특례 상장) 절차를 밟고 있다. 아이지넷은 오는 15일까지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확정한 뒤, 다음달 중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아이지넷은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IPO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2014년 출범한 아이지넷은 보험 진단 서비스 ‘보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기업용 보험솔루션으로 사업을 기업간소비자(B2C)에서 기업간기업(B2B)으로 확대했다. 아이지넷의 연결기준 2021년 매출액은 37억원에서 2023년 130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107억원을 기록,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아이지넷의 총 공모 주식 수는 200만주, 희망 공모가 밴드는 6000원~7000원으로 총 공모금액은 약 120억~140억원 규모다. 대표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아이지넷은 이번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연구개발(R&D) 투자와, 파트너십 확대 및 해외 진출에 사용할 계획이다. 다양한 보험대리점(GA)과 전략적 협업을 통해 국내 침투율을 확대하고, 베트남 현지 기업인 메디치(MEDICI)사와의 합작을 통해 동남아 보험 시장 진출을 할 예정이다.
증시 불황에도 불구하고 아이지넷이 상장에 도전하는 것은 여러 의도로 해석된다. 아이지넷은 파두 사태 이후 깐깐해진 상장 절차를 통과했다. 재무적인 측면보다 독창적인 사업모델 등 시장 경쟁력을 인정받아 상장하는 ‘사업모델 특례상장’에 선정된 만큼 한 번에 상장에 골인하는 것을 목표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인슈어테크 1호 상장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사업적 차별화를 가져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IPO 하고 싶은 곳, 토스
핀테크 앱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이하 토스)가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토스 측은 미국 상장 준비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시기 등 계획과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업계는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받기 위해 토스가 미국으로 눈길을 돌렸다고 보고 있다. 토스가 기대한 기업가치는 10조원 이상이지만, 시장 안팎에선 토스의 기업가치를 10조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2월 주관사를 선정해 국내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토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증시에 상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토스의 미국 상장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비슷한 사례로 쿠팡이 언급되지만, 산업 성격과 시장 지배력, 경제 상황 등을 비교하면 지금의 토스와 다르다는 이유다. 토스가 규제 산업인 금융업을 영위한다는 점, 또 국내 금융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독보적인 사업자가 아니라는 점, 연간흑자 가능성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수익모델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토스가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 상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