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 진짜 글로벌로…게이머가 각성했다
2024년 게임 시장 분위기와 산업 지형에 변화가 잇따랐다. 지난해부터 ‘P의 거짓’, ‘데이브 더 다이버’의 성공 등으로 글로벌 시장을 보는 분위기가 달라졌고, 아시아에 머무르지 않고 서구권 콘솔 시장까지 겨냥한 기업들의 행보가 눈길을 끌었다.
사실 자의반 타의반 행보다. 내수 시장에서 더 이상 덩치를 키우기 어려워서다. 게이머들의 눈도 높아졌다. 수익모델(BM) 다변화 요구도 빗발쳤다. 지난 수년간 고강도 확룔형 뽑기 BM을 채택한 리니지 시리즈와 리니지의 아류 게임이 득세하면서 게이머들의 피로감이 상당 수준에 다다랐고, 트럭 전광판 시위가 심심치 않게 진행되는 등 여론이 냉랭해졌다. 실제 불만을 품은 게이머들이 지갑을 닫기도 했다.
엔씨 지고 크래프톤 뜨고
국내 게임기업의 상징과도 같던 엔씨소프트가 12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엔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업계는 구글플레이 톱10 전체 매출이 쪼그라들었다고 보고 있다. 주된 비중을 차지하던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이용자가 줄어든 까닭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성기 시절 300만명에서 100만명 정도로 줄어드는 등 여파 떄문이다.
2024년 3분기 연결 기준 엔씨(NC) 실적은 매출 4019억원에 영업손실 142억원이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5% 줄었고 적자전환했다. MMORPG 등 특정 장르와 내수 시장에서 강했던 엔씨 입장에선 직격타다. 회심의 승부수였던 글로벌 신작 ‘쓰론앤리버티(TL)’은 기대치에 못 미쳤다. 이후 엔씨는 계열사 분리에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혹한기를 보내는 중이다.
크래프톤은 약진했다. 자회사 펍지의 배틀로얄(생존경쟁) 게임인 ‘배틀그라운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계속 성장하는 중이다. 유명 브랜드와 꾸준한 협업(콜라보)에 게임 자체로도 재미 요소를 보강하면서 구작이 신작을 훌쩍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 3분기 연결 기준 실적은 매출 7193억원, 영업이익 324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59.7%, 71.4% 크게 늘어났다. 분기 성장세로는 업계 내 압도적 1위다.
넥슨은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흥행과 기존 프랜차이즈와 ‘퍼스트디센던트’ 콘솔 신작 성과 등으로 지난 3분기 매출 1조2293억원, 영업이익 467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 대비 각각 13%, 11% 늘어난 수치로, 업계 1강을 유지했다.
게임 확률 정보 공개
지난 3월 22일 시행된 ‘게임 확률 정보 공개’도 주요 이슈다. 법으로 의무화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산업법 제2조11호에 근거해 우연적 요소에 따라 구제적 종류와 효과, 성능 등이 결정되는 아이템을 말한다. 무작위 일반 뽑기가 있고, 확률 테이블 기반으로 아이템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 아이템 간 결합 시 상위 아이템이 등장할 확률 등 게임 내 확률은 기업의 설계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동작한다. 유료 상품에 확률이 들어간다면 다 공개 대상이다. 시행 초기에 정보 공개가 방대하다는 업계 불만이 제기됐으나, 현재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게임 확률 공개는 메이플스토리 큐브 사건으로 더욱 주목받았다.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넥슨코리아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고도 이를 누락해 알리지 않거나 거짓으로 알린 행위를 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6억원을 내린 바 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메이플스토리 이용자 집단분쟁조정신청 사건에 대해, 넥슨코리아가 각 신청인들에게 유료 아이템에 들인 일정 사용액을 현급 환급이 가능한 넥슨캐시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넥슨이 그대로 받아들여 확정판결과 같은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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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보다 주목받은 GOTY…오공의 이변
국내 업계도 서구 게임시장의 전유물이었던 올해의게임(Game Of The Year, GOTY·고티) 시상을 주목하게 됐다. 지난해 게임계 오스카로 불리는 ‘더게임어워즈(The Game Awards, TGA)’에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의 ‘P의 거짓’과 넥슨 민트로켓의 ‘데이브 더 다이버’가 후보에 오른 바 있다. 텐센트가 글로벌 서비스 중인 크래프톤의 ‘펍지 모바일’도 후보에 들었다.
올해 TGA에선 2024 대한민국 게임대상 7관왕에 오른 시프트업의 ‘스텔라블레이드’가 액션·음악 부문 후보로 선정되며 기대를 모았으나 무관에 그쳤다.
세계 시장에선 중국 게임에 주목했다. 2024년 글로벌 게임 시장의 최고 이변이라 불린 ‘검은신화:오공’은 TGA 2024에서 액션게임과 플레이어의목소리 상을 수상했다. 중국 개발사(Game Science)가 내놓은 첫 블록버스터(AAA) 콘솔·PC 게임이다. 첫 도전에 세계가 깜짝 놀랄 성과를 냈다. 전통의 ‘골든 조이스틱 어워즈’에서 얼티밋 고티(GOTY)를 쟁취했다. 최고 수준의 그래픽 품질에 시나리오, 레벨 디자인 등 어느 하나 빠진 곳이 없는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나, 게임계 오스카라 불리는 TGA 고티의 벽은 높았다.
e스포츠에선 대한민국이 종주국 입지를 재차 다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페이커’ 이상혁이 최고의 e스포츠 선수로, SK T1이 최고의 e스포츠 팀으로 선정됐다. 페이커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TGA 최고 e스포츠 선수의 자리를 유지했다.
서브컬처, 이젠 메인컬처
서브컬처(Subculture) 게임 전성시대다. 서브컬처를 직역하면 하위문화로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파생한 놀이문화로 본다. 게임쇼에 캐릭터 코스프레(분장)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장은 ‘원신’과 ‘붕괴’, ‘젠레스 존 제로’, ‘명조: 위더링’, ‘명일방주’, ‘소녀전선’ 등 중국산 게임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항하는 한국 게임으로는 넥슨게임즈 ‘블루 아카이브’,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 등이 유명하다. 이들 게임처럼 유려한 일러스트를 대거 갖춘 미소녀(또는 미소년) 캐릭터 수집 게임이 유행하면서 게임 캐릭터에도 팬덤이 생겼다. 업데이트때마다 인기가 요동치고, 캐릭터 굿즈(상품)가 불티나게 팔리는 상황이다.
지스타 전시에서도 서브컬처 게임의 비중이 올라가고, 애니메이션 축제로 알려진 AGF(Anime X Game Festival)가 서브컬처 게임쇼로 착각할 만큼 행사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요 게임사가 올해 AGF에 총출동했다. ‘원신’ 등으로 유명한 호요버스는 자사의 5종 서브컬처 게임을 모아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어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