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아라비아] 외산은 되는데, 이게 뭔 일? 사우디 성과의 역설

지난해 10월 네이버가 사우디아라비아 자치행정주택부로부터 향후 5년간 5개 도시의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올렸다. 네이버 창사 이래 첫 대규모 중동 사업이자, 디지털 서비스 인프라를 한국 IT기업의 자체 기술로 구축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네이버는 연내 중동 지역의 거점이 될 법인을 꾸리고 사업 협력의 폭을 확대할 예정이다. <바이라인네트워크>는 네이버 중동 사업 수주 계기부터 기술적 강점, 진척 현황, 후발주자를 위한 현지 노하우 공유 등을 릴레이 인터뷰로 풀어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정원조 네이버랩스 디지털 트윈 책임리더 인터뷰

<이전 기사: [네이버 아라비아] ‘영화 매트릭스 성큼’ 사우디 홀린 디지털 트윈>

네이버(자회사 네이버랩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차세대 미래형 도시 구축 분야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는 배경엔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법규제가 있다.

‘빅테크와 겨뤄 압도적 1위를 한 일’, ‘사우디에 일하러 가보니 한국 식당이 없더라’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터뷰 말미에 추가 질의를 던지는 중에 정원조 리더<사진>가 “단순히 네이버만의 일로 생각하진 않는다”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공간정보보호법 때문에 저희가 (어라이크 등) 클라우드 상품을 만들어 쓰는데, 당시 온라인에 이런 공간 정보를 올리는 것에 저촉되는 규제가 있더라고요. 근데 이어서 마침 사우디 기회가 생겼는데 다행히 그곳에선 문제가 없었습니다.”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만들어서 3차원 공간 데이터를 생산하려고 하면 네트워크가 끊긴 보안시설에서 인가받은 사업자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데이터 공간 정보를 올리는 서버를 얻는 작업은 국내에서 가능했지만 풀어야 할 부분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서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 문제가 불거진다. 국외에 서버를 둔 글로벌 사업자는 국내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국정감사에서 늘 지적하는 역차별 문제가 공간 지능이라는 최신 기술 분야에도 상존하고 있다.

“외산 소프트웨어 사업자는 안 지키는 상황이죠. 저희 입장에선 당황스럽습니다.”

정 리더는 이같이 속내를 밝히고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 마시고 사우디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가 역차별 문제를 구구절절 말하진 않았으나, 기자에게도 아쉬운 마음이 전달됐다. 정책 입안자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에 관련 내용을 기사 처음에 배치했다.

다음부터 후발주자를 위한 노하우 공유와 기술력 현황에 대한 내용이다.

정원조 네이버랩스 책임리더 (사진=네이버)

오일머니 겪어보니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막강한 오일머니의 본산으로도 유명하다.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밝힌 지난 7월 기준 운용 자산 규모는 무려 9250억달러(약 1281조원)다. 정 리더가 사우디와 협업하면서 체감한 부분이 바로 ‘돈에 대한 관용도’다.

“디지털 트윈 분야에서 현지 기업도 있죠. 데이터 품질 측면에서 저희가 (우리 제품을) 어필을 하려고 봤더니 온라인 플랫폼 쪽에선 주로 미국계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제품들을 쓰고 있더라고요. 굉장히 비싸죠. (현지에선) 가격은 잘 모르겠고, 일단 좋은 걸 쓰겠다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게 있는데 심지어 더 싸다 이렇게 접근했습니다(웃음).”

“사업을 수주한 뒤엔 사업에 대한 변경이 있잖아요. 승인을 해줄 때도 금액을 잘 안 봅니다. ‘이거 해야 되는데’하고 체인지 리퀘스트를 보내면 바로 오케이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렇게 계약하기가 힘들었는데, 막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선 굉장히 잘해줍니다.”

공간지능서 압도적 1위

정원조 리더가 인터뷰 중에 웃으면서 회고했지만, 사우디의 차세대 미래형 도시 구축 분야 프로젝트 수주는 네이버랩스의 치열한 기술 고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기술력에 대해 거듭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9월 네이버랩스는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기술로 비전(vision) 분야 세계 최대 학회인 ECCV 2024의 ▲Map-free visual re-localization ▲BOP 챌린지 두 부문에 도전했으며, 모두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Map-free visual re-localization 챌린지는 정밀지도 등이 없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정확하게 측위가 가능한지를 겨룬다. 재난 또는 공사 현장 등 지도를 생성하거나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도 있기에 ‘지도 없이 측위’하는 기술도 점차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ECCV 2024에서 1위를 차지한 네이버랩스의 MASt3R. 3D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CroCo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사진=네이버)

네이버랩스는 해당 챌린지에 이미지를 3D로 재구성하는 AI 기술 도구 ‘마스터(MASt3R)’를 선보였다. MASt3R는 정밀지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정확한 측위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받아 구글, 애플, 메타 등 12개 참가팀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MASt3R는 네이버랩스유럽이 개발한 3D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VFM) ‘크로코(CroCo)’를 기반으로 만든 ‘더스터(DUSt3R)’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로봇이 처음 가는 공간에서 되게 막막해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고자 하는 학계에서 보면 좀 진보적인 챌린지인데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자기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니즈가 많이 있죠. 그 부분에 있어서 네이버랩스유럽에서 개발한 마스터 모델이 참여했고, 이렇게 얘기해도 될지 조심스럽지만 압도적으로 1위를 했습니다.”

“저희가 이분야에서 계속 리딩하는 연구 결과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선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BOP(Benchmark for 6D Object Pose Estimation) 챌린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BOP 챌린지에서는 이미지 내에 있는 물체들의 3차원 회전과 위치를 얼마나 정확히 추정하는지 겨룬다. 네이버랩스가 해당 부문에 제출한 기술 모델은 RGB이미지만으로도 물체의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측위(The Best RGB-Only Method)하고, 또 가장 빠르게 처리(The Best Fast Method)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BOP 챌린지 1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해당 모델 역시 3D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CroCo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BOP는 AR(증강현실)의 핵심적 기술입니다. 카메라의 자세를 빠르게 추정하고 정확하게 수정하는 부분에서 카테고리 6개가 있었는데, 2개 부문에서 1등을 했죠. 정확도와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당시 스코어 경합을 벌였던 기업들을 묻자, 구글과 애플, 메타, 차이나모바일, 나이언틱 등을 거론했다.

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올 것

정 리더에게 기술 고도화 계획과 청사진에 대해 물었다. 그는 특정한 목표는 없다고 밝히면서, “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가져오겠다”는 굵직한 방향을 언급했다.

“저희가 사우디 사업을 보고 개발한 것도 아니고 네이버 부동산 서비스를 위해 개발한 것도 아니잖아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열심히 해서 1등도 하고 그러니까 독특한 네이버랩스만의 연구개발 문화가 (현재 성과의) 원동력이 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우리 이런 서비스를 하겠다 이런 형태는 아니고요. 저희는 ‘온라인 서비스를 오프라인으로 가져오는 데 필요한 공간지능 연구를 하겠다’는 미션 하에 계속 발전할 겁니다. 앞서 스위트홈2에 디지털 트윈이 쓰였고, 내년 개봉할 영화에도 지금 협업을 하는 중입니다. 디지털 트윈이라는 게 무궁무진하게 쓰일 곳이 많을 거 같습니다.”

인재 어디 없나요

잘나가는 네이버랩스도 인재 확보를 고민 중이다. 학회에서 인재를 찾거나, 산학협력 과정에서 채용을 하는 사례가 있다. 외국인 연구자도 다수다. 네이버랩스유럽엔 70개국 이상의 연구진이 모였다.

“1년을 넘겨 100명이 지원했는데도 한 명도 못 뽑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쪽 분야가 AI보다 더 귀한, 어떻게 보면 한국에 제일 없는 개발자가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그보다 더 귀한 영역이라고 하더라고요. 고학력자 이런 잣대는 아닙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능력이 되는 분들을 채용 진행을 하기 때문에 공간지능에 진심인 분들이 (홈페이지 채용란에) 가끔 들르시면 좋은 자리가 떠 있을 겁니다.”

정 리더는 네이버랩스의 독특한 문화를 덧붙였다. 신뢰 기반으로 움직이는 회사라는 점을 짚었다.

“네이버랩스의 독특한 문화는 일단 신뢰 기반으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인데요. 너무 특이한 걸 하게 되면 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웃음). 본인의 창의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저희가 강조하는 게 ‘셀프 모티베이션’인데요. 미션이 주어졌을 때 실패도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명확한 이유가 나오면 성공이죠. 이런 독특한 문화를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컨퍼런스] AI 에이전트와 지능형 인터페이스 시대

◎ 일시 : 2025년 3월 27일 오후 12:30 ~
◎ 장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ST Center (과학기술컨벤션센터) 지하 1층 대회의실 2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