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빅테크 규제(DMA), 한국이 도입해도 괜찮을까?
21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미국 CCIA가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 플랫폼 규제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세미나’에서 나온 말들이다. 참석자들은 유럽의 빅테크 플랫폼 규제법 ‘DMA(Digital Market Act)’이 글로벌 경제와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유럽과 경쟁 상황이 다른 한국에서 DMA 방식의 규제를 도입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물론 DMA를 반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대표 협회가 이번 토론회를 주최했다는 점에서 DMA 반대자의 목소리만 있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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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DMA는 대규모 플랫폼 기업을 선정해서 사전적으로 규제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규제법이다. 테크 산업은 변화가 너무 빨라서 전통적인 경쟁법으로는 대처가 어려워 DMA와 같은 특별한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 EU의 입장이다. DMA는 올해부터 본격 시행됐는데 빅테크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는 세계 각국의 정부가 이 법을 따라 규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경쟁촉진법이라는 이름으로 유사 DMA 제정을 추진해왔다. 현재는 업계의 반대와 정부 내부의 이견으로 잠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야당도 DMA 국내 도입에 적극적이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현재까지 8개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 제정안을 냈는데, 대체로 DMA와 같은 방식으로 규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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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발제자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렇다.
- DMA는 유럽 경제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 취지와 달리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 상대적으로 중국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어 공정하지 않다.
- 중국은 이미 DMA와 같은 사전규제를 시행한 결과 혁신 동력이 떨어졌다.
- 유럽이 DMA를 도입한 것은 유럽 기업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DMA는 유럽 경제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카티 수오미넨 국제전략연구소(CSIS) 객원연구원은 “DMA 규제 준수를 위해 플랫폼 기업은 유럽 매출의 8%에 육박하는 비용 들것”이라며 “이는 유럽의 고용 면에서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것이고 상실될 네트워크 효과는 금전적 손해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트레버 웨그너 미 컴퓨터통신협회(CCIA) 연구센터 소장은 DMA와 같은 규제로 인해 유럽이 게이트키퍼(대규모 플랫폼)의 AI 도입과 활용에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곧 생산성 저하와 비용증가로 이어지고, 유럽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돼서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지와 달리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유럽이 DMA를 도입한 것은 유럽내 중소기업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빅테크 플랫폼의 독점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오히려 이런 규제가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구글이 호텔 정보를 모아서 보여주는 서비스를 자사우대 금지로 못하게 되면 호텔은 피해를 입고 호텔스닷컴이나 아고다, 부킹닷컴과 같은 중개업체가 이득을 본다고 수오미넨 연구원은 주장했다. 검색결과에 호텔이 직접 노출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바르셀로나 호텔’이라고 검색하면 각각의 호텔 웹사이트보다는 호텔스닷컴이나 아고다와같은 콘텐츠가 먼저 노출될 것이다. 결국 호텔 입장에서는 중개업체를 통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증가하게 된다는 논리다.
웨그너 소장은 “많은 SME(중소기업 및 소상공인)가 사업을 시작할 때 플랫폼이 제공하는 툴을 민첩하게 이용한다”면서 “대규모 플랫폼의 사업에 제약을 받으면 시장에 처음 진입하려는 SME의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말했다.
수오미넨 연구원은 “유럽에서 게이트키퍼(대형 플랫폼)의 비용이 올라가면 유럽 기업들은 다른 유형의 기술을 구입하거나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니엘 소콜 미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 교수는 “플랫폼 없이 SEM가 고객을 만나거나 수출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한국 SME 역시 플랫폼 없이는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중국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어 공정하지 않다
수오미넨 연구원은 “미국 플랫폼을 규제하면 유럽 기업이 중국 기업의 기술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면서 “DMA가 미국 기술 기업 타깃함으로써 오히려 차별적 영향을 주고 중국 기업을 우선시할 수 있어 공정한 경쟁이 아닌 불공정한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미 DMA와 같은 사전규제를 시행한 결과 혁신 동력이 떨어졌다
다니엘 소콜 교수는 중국의 규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DMA에 앞서 오랫동안 플랫폼 규제해 왔는데, 결과적으로 벤처캐피탈 투자가 줄었고, 혁신이 줄었다
중국에서는 2021년 2월 ‘플랫폼 경제를 위한 반독점 지침’이 도입됐다. 이에 따라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디디추싱, 메이투안, 징동 등이 초대형 플랫폼 사업자로 분류돼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유럽이 DMA를 도입한 것은 유럽 기업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토론자로 나선 조나단 맥헤일 CCIA 부회장은 “EU는 로컬 인터넷 기업이 없다는 좌절감이 있다”면서 DMA 도입을 정치적 영역으로 해석했다. 인터넷 플랫폼 시장에서 유럽 기업이 맥을 못쓰니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속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맥헤일 부회장은 유럽과 한국의 상황이 매우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국내 기업이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는 분야가 존재한다. 검색이나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 쇼핑 시장 등을 국내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외국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DMA를 도입한 유럽과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EU의 DMA는 자국의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경쟁시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규제였으나 한국은 이미 디지털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유사한 규제 적용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조성대 실장(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국제질서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DMA의 시행은 국제적 통상 마찰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상황을 보면,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이 플랫폼 법을 반대하고 있는데,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집단도 법이 초래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반응”이라고 강조했다.
백용욱 교수(KAIST 경영대학)는 “플랫폼 법으로 인한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플랫폼에 연결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소상공인들의 경쟁력도 약화시킴을 의미한다”고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미국이나 중국 기업들과 무한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사전적 규제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인 이승주 교수(중앙대 정치국제학과)는 “자국 플랫폼을 규제하는 듯 보이는 중국은,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은 상태에서 규제하지만 한국은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교하고 신중한 규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좌장인 유병준 교수(서울대 경영대학)은 “그간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했던 경우 부정적 영향이 컸다”고 언급하며 “그동안 나온 수많은 실증자료에 기반해서 플랫폼 법이 야기할 문제가 명확한 상황임에도 규제 일변도의 정부 태도는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