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어설프게 따라한(?) 플랫폼 규제의 위험성

공정거래위원회가 디지털 플랫폼을 규제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이다. 일부 대형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로 규정, 특별히 규제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 내용이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국내 업체와 구글 등 미국 회사가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이 법은 공정위의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건 아니다.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이하 DMA, Digtal Market Act)을 굉장히 많이 참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DMA 역시 구글 애플 등 대형 플랫폼을 ‘게이트웨이’로 규정, 특별히 감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한국형 DMA라고 부르는 이유다.

글로벌 시대에 해외의 좋은 규제를 따라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온라인 세상에서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니 필요한 규제라면 우리도 받아들이고, 유사한 규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글로벌 시대라고 해도 모든 국가와 시장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이해득실이 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유럽의 규제 방식이 우리의 실정에 맞는지 먼저 면밀히 살피고 따라해야 하는 이유다.

유럽이 DMA라는 독특한 법을 만든 배경에는 미국의 빅테크를 견제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다. 유럽에는 역내에 변변한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DMA에서 규제하는 게이트웨이 플랫폼은 알파벳(구글)·아마존·애플·메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바이트댄스(틱톡) 등 6개 회사다. 미국 기업 5개, 중국 기업 1개다.

유럽 입장에서는 역외 기업인 이 6개 플랫폼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DMA와 같은 규제로 인해 이 회사들의 경쟁력이 약해진다면 ‘오히려 땡큐’다. 유럽 기업에도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DMA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규제 역할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대형 플랫폼이 있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한국형 DMA는 국내 기업을 주로 규제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미국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해 등장한 DMA를 우리 시장에 적용했을 때 원치 않았던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DMA와 유사한 플랫폼 규제법안을 고민했었다. 빅테크의 독점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바이든 정부 출범부터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하지만 미 정부는 고민 끝에 빅테크 규제를 위한 법 제정을 대부분 포기했다. 그 규제가 자국 기업을 위축시키고, 중국 등 해외 기업에 기회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유럽이 아니라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플랫폼을 규제할 경우 오히려 해외 플랫폼이 득세할 우려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을 규제하면 중국의 알리바바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의 이커머스 플랫폼은 한국 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물론 한국형 DMA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플랫폼의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제한, 최혜대우요구 등을 허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행위들은 이미 기존의 경쟁법 체계에서도 금지되어 있다. 공정위가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든 사례도 이미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규제를 받은 경우(카카오T 알고리즘 변경, 구글의 앱스토어 정책)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기존 법 체계에서 플랫폼의 불법적 행위를 빠르게 포착하고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위의 실행력이다. 해외 빅테크를 약화시키기 위해 소수의 플랫폼만 콕 집어서 특별히 규제하는 유럽의 법을 가져다 국내에 적용하는 것은 국내 기업만 옥죄는 결과만 낳을 우려가 있다.

공정위는 한국형 DMA를 통해 “소규모 플랫폼 기업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고 공정하게 경쟁하여 그 혜택이 소상공인과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막연한 기대에 기반해 도입한 규제가 역효과를 발휘해 경쟁을 약화시키고 소비자 효용을 떨어뜨린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타다를 금지하고 소위 ‘플랫폼 택시’라는 것을 도입할 때도 정부는 다양한 플랫폼이 경쟁해 소비자 효용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것은 카카오택시의 강력한 독점과 높은 가격으로 인한 소비자의 불만, 택시 기사의 아우성뿐이다. 어설픈 규제는 시장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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