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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의 시선] 봇물 터진 AI 협력의 의미

IT 업계에서 최근 부쩍 들려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기업 대표들이 넥타이 바꾸기에 바쁘다는 것. 연이어 업무협약식에 참석하다 보니 같은 차림새를 하기 민망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들이 계속 협약에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 개발과 확산을 위한 국내 기업들의 합종연횡은 무척 활발합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업무협약 소식은 오히려 안 들리면 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업계 풍경이 됐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하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AI를 성장동력으로 삼은 기업들은 업무협약으로 시너지를 내는 게 1차 목표입니다. 힘을 모아 더 촘촘한 기능을 제공하는 게 목표죠. 단 기업 성격에 따라 서로 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 같은 협약은 아냐

앞서 폴라리스오피스는 최근 잇달아 협약 소식을 알렸습니다. 지난달과 이달에 걸쳐 업스테이지, 솔트룩스와의 업무협약을 체결했죠. 업스테이지와 솔트룩스는 모두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회사로 경쟁사 입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폴라리스오피스는 이 같은 역학관계를 떠나 각각의 장점을 자사 오피스 솔루션에 녹인다는 계획입니다. 같은 조금씩 다른 내용의 협업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겁니다.

업스테이지와의 협력은 ‘온디바이스AI’ 개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온디바이스 AI는 인터넷 연결 없이도 단말 자체에서 처리되는 AI입니다. 폴라리스오피스는 업스테이지의 LLM ‘솔라(Solar)’를 자사 오피스 소프트웨어(SW)에 탑재하고 클라우드를 쓸 수 없는 폐쇄망에서도 생성AI를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솔트룩스의 ‘루시아(LUXIA)’ 모델은 문서 솔루션 전반에 적용할 계획을 세웠고, 현재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폴라리스오피스는 이 밖에도 올거나이즈와 협약을 맺었습니다. 또 조금 다른 협업 형태입니다. 폴라리스오피스 AI 제품에 올거나이즈의 ‘알리 LLM 앱 마켓’을 연동한 ‘AI 앱스’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알리 LLM 앱 마켓은 오픈AI의 GPTs처럼 다양한 생성AI 앱을 골라 쓸 수 있는 장터 플랫폼입니다. 폴라리스오피스 AI 내에서 바로 AI 앱스를 켜면 법률 문장 해석, 상품 카피라이팅 작성, 인사 지원자 분석 등 특정 분야에 특화한 생성AI 모델을 골라 적용할 수 있습니다. LLM을 오피스SW에 녹이는 것 외에도 아예 생성AI 앱들을 골라 쓰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폴라리스오피스는 기본적으로 문서 SW 기업입니다. 텍스트 분석과 이에 대한 요약 등 글을 기반으로 한 정확한 결과 제공이 LLM의 덕목이죠. LLM 전문 기업들의 활용처가 되기 충분합니다. 회사 관계자는 “시너지를 내 윈윈하는 차원”이라며 “업무 협약을 통해 서로 적극적인 액션 아이템을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LLM 업체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레퍼런스 확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플랫폼과 솔루션에 자사 모델을 물려 기술력을 알리고 수익 창출 기회를 노립니다. 실제 LLM 기업이 낸 다수의 업무협약 보도자료를 보면 ‘활용 사례 확장’ ‘비즈니스 성과 도출’ 등의 문구가 띄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데이터 학습이 성능 향상의 열쇠인 LLM 특성상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타사와 협력해 특정 분야 데이터를 얻을 수 있죠. 향후 다른 특화 LLM을 개발하는 경험치를 쌓는데 도움이 됩니다.

업스테이지는 폴라리스오피스의 온디바이스 AI 개발 협력 소식을 알린 이후 스타트업 로앤컴퍼니와 법률 특화 LLM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또 알려왔습니다. 로앤컴퍼니의 판례 데이터와 유권 해석 사례 등을 학습한 ‘솔라 리걸(legal)’을 개발하는 게 골자입니다.

솔라 리걸은 법률 조사와 서면 요약 등을 제공하는 로앤컴퍼니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슈퍼로이어’에 우선적으로 활용할 예정입니다.

업스테이지는 새로운 특화 LLM을 만들 수 있고 로앤컴퍼니는 자사의 플랫폼에 물려 사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습니다.

플랫폼에 LLM을 접목하는 것을 넘어 AI 기술과 AI 기술 간의 협력도 있습니다. 가진 기술의 부족한 점을 메꾸는 협력입니다. 이미 관련 기술을 보유했더라도 조금 더 고도화한 기술을 또 붙여 솔루션 성능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이스트소프트는 네이버클라우드와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회사는 현재 AI 휴먼을 회사 성장 동력으로 삼은 상황입니다. AI 휴먼 서비스에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연동을 추진합니다. 이스트소프트는 AI 전문기업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지만 핫한(?) LLM 원천기술은 다소 약합니다. 앨런(Alan)이라는 GPT 엔진 기반 챗봇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베타 성격입니다.

AI 휴먼은 사람과 같은 실사 모델을 제작하고 사용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번 네이버클라우드와의 협업은 교육 특화 AI 휴먼 적용이 목적입니다. 정부 사업인 디지털인재양성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바, 서로의 기술이 맞물렸을 때 가장 높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판단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업무협약의 홍수 속 단순히 마케팅에만 집중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구체적인 협업 방식 논의 없이 일단 알리고 보자는 움직임이라는 거죠.

앞서 말한 기업들의 사례는 그래도 디테일이 있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업무협약 기사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를 여러개 넣어 놓고 ‘솔루션 상호협력’ ‘연구 및 기술 지원’ ‘인력 공동 활용’ 등 구체적인 논의 없이도 담을 수 있는 문구를 나열한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업무협약이라는 게 구속력이 없지 않냐. 협약서 내용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면서 “마케팅 수단으로 쓰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봐도 분명히 그런 의도가 느껴집니다. 협약 다음 날쯤 양쪽이 보도자료를 낸 뒤 서로 자신들을 주어로, 그러니까 자신들의 기업명을 상대방 앞에 넣어 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구체적인 방향을 추가로 물으면 보도자료 내용대로만 봐달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AI 업계는 생성AI의 폭발적인 수요에 힘입어 본격적인 개화 단계라는 의견입니다. 일단 합종연횡에 팔을 걷어붙이고 시장을 키울 기술개발의 마중물을 뜨는 게 바로 업무협약이라는 의견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 (타사와의 기술 협력) 수요는 분명히 있다”며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건 기본이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구체화하고 성과를 알리는 데 시간이 필요할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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