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카이스트 공학도들, 생리대 속을 파다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을 리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여성의 삶에 과학을 소구하는 물건은 많다. 그러나 과학적인 물건은 많지 않다. 특히 여성의 삶 중 한 달에 일주일, 나아가 일생의 4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이 생리 기간으로 할애되는데 그동안 (생리대에 대한) 불편함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너시아는 여성의 삶 속 ‘불편함’에 집중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여성의 일상은 큰 변화를 맞지 못했다. 생리대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7년 생리대 안전성 파동을 계기로 많은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유기농 생리대’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너시아는 겉면만 유기농 소재를 쓰고 그 속에 들어가는 흡수체는 화학 물질을 쓰는 곳이 많다고 시장을 봤다. 기술과 비용의 한계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너시아 측은 겉부터 속까지 유기농 소재로 이뤄진 생리대를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이너시아가 직접 개발한 흡수체인 ‘라보셀’은 식물소재로, 제조 과정에서 화학 물질을 첨가하지 않는다. 라보셀은 생리대의 가장 아래 쪽에 위치해 생리혈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너시아가 제품의 핵심 소재인 라보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동 창업자인 네 명의 공학도가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이너시아의 공동창업자인 김효이 대표를 비롯해 고은비 테크 리드, 박지혜 오퍼레이션 리드, 이승민 프로덕트 리드는 카이스트 출신이다. 이너시아의 제품이 일명 ‘카이스트 생리대’로 불리는 이유다.
이들은 생리대 외에도 여성청결제, 여성 식품 보조제 등 여성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바이라인 네트워크>는 지난 6일 김효이 이너시아 대표를 만나 회사의 방향성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너시아는 어떤 회사?
이너시아는 자체 개발한 소재 ‘라보셀’로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곳이다. 나아가 여성청결제, 여성 식품 보조제 등 여성의 삶과 관련된 상품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지난 2021년 7월 상장해 설립 4년 차를 맞았다.
창업 결심
김 대표와 동료들이 창업을 결심한 것은 일상의 문제들이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다. 여성의 문제는 더 그렇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나 여성과 관련된 일상은 변화가 더디다고 봤다. 그 중에서도 김 대표와 창업자들은 ‘생리대’에 집중했다.
“창업자들 간에 여성의 불편함을 해결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문제점을 엑셀에 전부 모았다. 수백 가지의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렸고, 그 결과 가장 상단에 있었던 것이 ‘생리대’ 문제였다. 창업자 모두 공학을 전공한 만큼 생리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알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다.”
지난 2018년 생리대 파동 이후 많은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유기농 생리대’를 제조하며 마케팅을 했다. 그러나 시중에 나온 유기농 생리대 대부분은 겉면만 유기농 소재를 쓴 반쪽짜리로,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를 사용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김 대표를 포함한 창업자들은 생리대의 겉면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재료가 유기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직접 생리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알게 된 생리대는 생각보다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 생리대가 여성에게 안전하고 편안하게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겉부터 속까지 유기농 순면에 흡수력이 좋은 생리대를 만들어보자며 사업을 시작했다.”
생리대 속 불편한 진실, 미세 플라스틱
이너시아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 중인 생리대 약 70~80%가 ‘유기농’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리대의 ‘속’이다. 아직까지 생리대 속에 들어가는 흡수체는 화학 물질인 미세 플라스틱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흡수체로, 석유 부산물이다. 피부 자극성이 높아 소량으로도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리 혈이 넘칠 경우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피부에 닿을 수밖에 없다. 시중에 나온 생리대에 화학 부직포나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 휴지를 찢어 만든 펄프 등 저렴한 원료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이너시아의 경쟁력 ‘라보셀’
이너시아의 경쟁력은 특수 제작한 소재인 ‘라보셀’이다. 라보셀은 식물소재로 만든 유기농 소재다. 김 대표에 따르면, 기존 흡수체들은 흡수력을 위해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다. 반면 이너시아는 순수한 물질인 셀룰로오스로 흡수력을 구현한다.
이너시아의 장점이자 경쟁력은 시중 생리대 대비 유기농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화학 물질을 최소화하고 유기농 소재를 더 많이 쓴 만큼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저렴하면서도 경제적인 제품을 만들지가 고민이었고, 해답으로 라보셀을 만들었다. 이너시아의 생리대에 들어가는 라보셀은 소량으로도 생리혈을 잡아줄 수 있는 수술실 지혈 소재에서 착안했다. 라보셀은 생리대의 맨 아래층에 있어 생리혈을 잡아준다.”
이너시아는 생리대에서 나는 냄새 문제를 해결했다. 화학 첨가물은 특유의 냄새를 유발하는데, 이너시아는 화학 첨가물을 쓰지 않아 뜻하지 않게 기존 생리대에서 나는 냄새 문제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사용자 후기를 통해 예상치 못한 장점을 알게 됐다. 기존에 화학 첨가물인 미세 플라스틱은 생리혈과 만나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미세 플라스틱과 생리혈이 만나서 생기는 작용에 의해 생기는 냄새다. 반면 이너시아는 순면 비율이 높고 라보셀이 냄새를 잡아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후기가 많다.”
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
김 대표와 동료들은 창업 전 6개월에서 1년간 생리대 샘플을 개발했다. 약 1~2g의 라보셀로 테스트를 거친 뒤 창업을 했다. 이후 약 1년 정도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을 만들었다. 원료 수급부터 생산 등 제품 양산 전 과정을 네 창업자가 설계했다.
“생산 설비가 없었을 때 전국 각지의 공장을 찾아다녔다. 계속 거절을 당하다가 지금의 공장장님을 만나면서 기계를 맞추고 생산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조 공장을 찾았다고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너시아의 제품이 ‘카이스트 생리대’로 유명세를 타면서 시장 수요가 커졌고, 생산량은 월 톤 단위로 늘었다. 문제는 원료를 섞는 일(교반)이었다. 이너시아가 개발한 소재가 점도가 높아 기존보다 더 큰 힘으로 교반을 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했다.
“기계의 힘이 부족해서 기존의 기계로는 교반을 할 수가 없었다. 발상을 전환해 생리대 제조 기계에 식품 기계 방식과 건설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계의 원리를 적용했다.”
미세 플라스틱 배출 줄이기
이너시아는 생리대로 인한 플라스틱 배출 문제도 주목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생리대 하나당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은 약 1g이다. 한 사람이 생리기간 동안 생리대 10장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이 기간 동안 배출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빨대 43개의 양과 같다.
“미세 플라스틱 흡수체가 들어간 생리대를 쓰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당 플라스틱 빨대 43개를 소비하는 셈이다. 라보셀에 독성 화학 첨가제를 넣지 않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라보셀은 유럽의 친환경 인증기관인 TUV 오스트리아(AUSTRIA)로부터 생분해 인증을 받았다. 제품의 기술성과 친환경성을 인정받아 김 대표는 최근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30세 미만의 파워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편견을 깬 브랜딩
이너시아는 회사를 표현하는 색으로 ‘빨강’을 선택했다. 빨강은 피를 연상케 해 생리대 제조사에서 기피하는 색이다. 생리혈이 붉은 색은 맞지만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면 거부감이 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너시아는 오히려 로고와 제품 포장에 빨간색을 사용하는 등 정면 돌파에 나섰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관성을 깨고 싶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회사는 사용자들에게 보여주는 흡수력 실험 영상에서도 빨간색 액체를 사용했다. 기존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생리대에 파란색 액체를 부어 흡수력을 강조하는데, 이너시아는 빨간색 액체를 이용했다.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숨겨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빨간색이 꼭 피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장 좋은 물건, 탁월한 이너시아’라는 브랜드를 설명하는 컬러일 뿐. 이너시아는 관성이라는 뜻이며 기존의 관성을 이너시아라는 새로움으로 바꿔주고 싶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기존 브랜드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싶다”
“팸테크(Femtech, 여성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기술)라는 것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쓰는 모든 물건에 좋은 기술이 들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 팸테크.”
이너시아는 여성에게 필요한 제품으로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여성청결제를 출시한데 이어 생리불순, 여성당뇨를 위한 식품 보조제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빠르면 이번 달 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여성들이 사용하는 물건에서 가장 신뢰성이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이 이너시아 제품을 보면 믿고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업데이트
앞으로 이너시아와 관련해 새로 나오는 뉴스나 관련 기사는 하단에 계속해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새로 궁금한 소식이 있다면 계속해 찾아주세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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