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카오스 열린다? 엎드린 게임업계와 확고한 문체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해설서 작업을 한 연구관과 최종 책임을 지는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을 하신 건 확실히 맞고요. 끝까지 고민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법 시행(오는 3월 22일)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법 시행이 바로 되는데 해설서 내용을 반영해 (아이템 확률 정보를) 공개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일단 가능한가 생각이 사실 들긴 합니다. 이런 부분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모니터링 작업을 시행한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곧바로 집행을 하기보다는 충분히 숙고해가면서 진행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법무법인 태평양 강태욱 변호사)
22일 강태욱 변호사는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OPGG에서 한국게임기자클럽이 마련한 ‘확률형 아이템 확률 정보공개 해설서’ 설명회에 나서 이 같은 의견을 냈다.
<참고기사: 게이머를 위한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해설> <‘메이플스토리 손배소’ 더 커져…중소 게임 피해까지 들여다본다>
문체부가 모니터링보다 법 시행을 강력하게 드라이브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쓰는 ‘혼돈의 카오스’ 판이 벌어질 수 있다. 혼돈의 카오스는 우스갯소리로 카오스(혼돈)를 재차 강조한 말이다. 문체부는 ‘이용자가 유료 구매한 아이템의 확률 정보는 다 공개하라’는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가 제 발등 찍었나?
문제는 게임 유료 수익모델(BM)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십수년간 고도화를 거쳤고, 최근 몇 년간 리니지 라이크 등의 게임의 출현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확률형 아이템 BM 노하우를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용자의 아이템 뽑기에 따라 뒷 단에서 수시로 변하는 확률 등 얽히고 설킨 BM을 이용자가 알기 쉽게 한 번에 공개하려면 그야말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국내 게임 업계는 리니지라이크 등 매출 극대화를 위한 BM을 선보였다. 문체부가 이런 정책을 낸 이유엔 게임업계가 제 발등을 찍은 측면도 있다. 업계가 이렇다 할 입장 없이 납작 엎드린 이유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공식 입장도 “확률 정보 공개에 적극 협조”이다. 개별 기업이 뭐라고 입장을 낼 분위기는 아니다.
역차별 해소 의지 보여야
그렇다 보니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이슈에도 문제 제기가 실종됐다. 정부가 추진했던 인터넷 플랫폼 규제에 산학계의 핵심 반대 논리가 역차별이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문체부의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중국산 게임이 국내 시장에서 활개칠 수 있다. 국내 기업만 부담을 지우는 정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소비자(게이머)의 알 권리와 보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역차별 이슈를 받아들여 정책을 무르는 것도 답은 아니다. 그러는 동안 확률형 아이템 BM에 대해 게이머들의 불만과 비판이 누적돼 온 까닭이다. 현재 게이머들이 기업을 상대로 단체 소송도 진행 중이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는) 모든 게임에 적용입니다. 사실 외국계에 강제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역차별 얘기에 충분히 공감하고요. (국내 대리인 제도, 공정위 과징금 처분 등) 제재하는 방법들이 있긴 합니다. 게임업도 못할 이유는 없는 거죠. 가능은 한 건데, 이걸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할 것이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리인 제도는 외국계와 연결하는 고리의 역할이고요. 대리인을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이걸로 형평성을 맞게 하겠다라는 부분은 부족해 보이고요. 해외 사업자를 직접 집행하겠다는 의사를 정확하게 보여주셔야 하고, 실제 집행을 해야 합니다. 처분 수준도 중요하지만 제재한다는 자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실 갈 길이 멉니다.”
일단 예시대로 표시될 것
강 변호사는 해설서 예시대로 표시가 이뤄질 것으로 봤다. 여전히 불명확한 부분 때문에 법 시행 초반엔 예시를 벗어나긴 어렵다는 것이다. 법 시행 취지에 따르면 BM이 복잡한 게임도 가능한 모든 확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정보가 방대할 경우 링크를 통해 홈페이지에 표시할 수 있다. 게임마다 설계가 다른 BM에 대한 세세한 정보 표시는 서비스를 이어가며 노하우가 확보돼야 안착이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다.
기업이 확률 정보를 대거 공개할 경우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30회 천장(뽑기 실패가 누적되면 30회차에 100% 보상 지급 설정) 뽑기를 진행한다면, 1회차에 0%대 뽑기 확률을 설정했다가 21회차부터 확률을 끌어올려 천장을 앞둔 29회차에 50% 설계를 할 수 있다.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과연 이런 운용 방식이 적절한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기업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대규모 업데이트 어쩌나…”운영의 묘 살려야”
이용자가 유상 재화 구매 시 끼워준 마일리지 혜택으로 아이템을 구매한다면 규제 대상일까. 이 마일리지는 게임 내 플레이로도 얻을 수 있다. 마일리지로 유료 아이템까지 간접 구매할 수 있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강 변호사도 판단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법 시행 이후 모니터링 단계에서 사회적 합의도 이루고 다양한 사례가 누적돼야 결론이 날 부분이 적지 않다.
강 변호사는 ‘운영의 묘’를 여러 번 언급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업데이트만 해도 기업 부담이 커진다. 수백, 수천가지의 정보 변화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엄격하게 볼 경우 법 위반이 발생한다.
“한꺼번에 많은 아이템의 구조가 바뀐 대규모 업데이트 같은 경우에는 (정보 공개) 한 두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경우들은 거의 없을 거고요. 엄청나게 많은 변동들이 발생을 할 겁니다. A라는 아이템을 새로 도입을 했는데 이것 때문에 B와 C가 바뀌는 것까지는 충분히 생각을 했는데 하다 보니까 D도 관련이 되거나 이런 경우들이 충분히 생길 수 있거든요. 이런 경우까지도 이걸 법 위반이라고 봐야 하는가. 운영의 묘를 잘 살리면서 이용자 보호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야 합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