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대하는 중기부의 애매한 자세
최근 스타트업이 냉온탕을 오갔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팁스(TIPS)의 지원금을 삭감하겠다고 나섰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한 바 있다. 이와는 별개로, 얼마 뒤 중기부는 올해 1차 모태펀드 출자 규모를 9100억원으로 설정, 총 1조7000억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자규모는 전년대비 37% 늘었다.
중기부의 팁스 지원금 삭감 철회와 모태펀드 출자 발표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과 벤처투자(VC) 업계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조가 헷갈린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중기부의 팁스 예산 삭감 결정에 대해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팁스는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선발해 팁스 운영사인 민간 투자기관과 매칭해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한다. 스타트업이 R&D를 하기 위해 인건비 등 비용이 필요하다.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운 스타트업을 위해 정부가 기술 발전과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취지에서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중기부는 R&D 예산 삭감을 이유로 2022년, 2023년 팁스에 선정되어 올해까지 R&D를 진행하는 기업에게 지원금의 20%를 삭감하겠다고 통보한 바 있다. 지난해 미지급했던 지원금도 감액 대상에 올랐다. 이미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사업계획을 세운 기업들에게 자금 부족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논란이 일자 중기부는 이를 철회했다. 스타트업과 VC 업계에선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시에 우려를 표했다. R&D 예산 삭감 시도에 대해 중기부의 스타트업 육성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R&D는 곧 스타트업의 본질이자 경쟁력이며 꾸준한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정부 지원은 필수적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팁스 운영 성과는 긍정적이었다. 실제로 팁스를 통해 지난 2013년부터 2021년 10월 말까지 총 1442개의 창업기업이 선정됐다. 팁스 창업기업은 일자리 창출, 기업공개 상장(IPO), 인수합병(M&A), 국내외 후속투자 등의 성과를 보였다. 업계 안팎에선 팁스가 중기부의 손에 꼽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팁스는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어쩌면 중기부가 당장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R&D 투자는 티가 안 나는 곳이라고 여길 수 있다”며 “R&D 성과는 장기적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중기부에서 이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안희철 디라이트 변호사도 “팁스는 여러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결과가 좋은 프로그램으로, 예산 삭감 대상에서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중기부가 발표한 모태펀드 1차 조성 계획에 대해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기부가 구성한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신규예산 4540억원에 회수재원 4560억원을 합친 총 9100억원이다. 정부는 지원 규모가 늘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스타트업 업계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신규예산 규모와 비중이 적은 점을 꼬집었다. 지난해 중기부의 본예산은 전체 예산의 약 50%다. 업계는 이번 모태펀드의 총 출자규모 중 절반을 회수재원으로 활용하는 만큼, 사실상 신규출자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본예산(4540억원)이 전년비 45%, 회수재원(4560억원)이 30% 늘었다는 입장이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지난해 모태펀드 출자액이 워낙 적었던 만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중기부가 출자한 모태펀드 규모(3135억원)는 전년대비 약 40%(2065억원) 줄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이번 모태펀드가 전년대비 증액된 것은 사실이나, 작년에 출자액을 크게 줄인 점을 고려하면 큰 규모로 출자를 했던 시기와 비교했을 때 반토막이 난 상황”이라며 “민간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모태펀드를 투자 혹한기에 많이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실익보다 가능성을 보고 이뤄지는 만큼, 중기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스타트업 육성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중기부가 스타트업 업계의 기술 육성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한 축의 R&D 예산 감축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실망감이 크다”면서도 “최근 이어진 중기부의 행보를 봤을 때 장기적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