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인원 규제에 스타트업 투자 ‘비상’
설립 3년 차 스타트업 A는 지난해 사모펀드로부터 투자받기로 결정 했다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있다는 말에 투자 유치를 철회해야 했다.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펀드의 조합원 수가 50명이 넘어 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해석을 들어서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규제에 걸려 투자 유치를 포기해야 하는 사례가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연말 ‘자본시장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쟁점은 투자한 인원 수에 사모펀드를 한 명의 주체로 볼 지, 아니면 참여 구성원 수를 모두 반영해야 할 지다. 투자 인원 수가 늘어나면 스타트업도 그에 맞춰 반영해야 할 규제가 많아진다. 정부의 유권해석에 스타트업 업계는 투자 위축, 서류 업무 증가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아직 작은 규모의 회사임에도 공개된 회사와 같은 의무를 져야해서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살펴보자.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일반투자자가 참여하는 사모펀드는 투자자 수가 49인 이하로 제한된다. 사모펀드 투자자 수가 50명이 넘을 시 공모펀드로 전환되어, 비상장회사라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어길 시 과징금 등을 물어야 한다.
사모펀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비공개로 모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 투자자 수는 100인 이하이나, 일반투자자의 경우 49인 이하로 제한.
공모펀드: 50인 이상의 일반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판매하는 만큼 규제가 비교적 엄격해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있음.
당국 가이드라인에 따라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업계가 사모펀드 투자 시 투자조합원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스타트업과 벤처투자사들이 조합원이 아닌 투자조합의 수를 기준으로 삼던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다.
계기는 지난해 연말 금융감독원이 사모펀드와 관련해 내놓은 유권해석 때문이다. 비상장회사라도 50인 이상의 투자자에게 증권을 발행하는 경우 자본시장법상 공모펀드에 해당돼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투자조합은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조합원을 기준으로 투자자 수를 세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투자조합원이 158명이 속한 8개 투자조합의 경우 기존에는 8명의 투자자가 투자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투자조합은 8개더라도, 그 안에 속한 투자자가 158명이기 때문에 공모펀드(50인 이상)에 해당된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이 경우 자본시장법에 따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난 2021년 3월 이후, 지금까지 사모펀드 시 투자자 기준에 대한 업계의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약 3년간 금융당국이 별다른 입장과 조치를 취하지 않아, 업계는 투자조합을 1인으로 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사모펀드를 모집해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당국의 유권해석으로, 스타트업과 벤처투자 업계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 이후로 많은 사모펀드가 투자조합을 기준으로 해왔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기존에 진행한 사모펀드(일반투자자)의 투자가 당국의 유권해석과 어긋났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벤처투자사 대표는 “당국의 발표 이후 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려다가 투자자 수가 49명이 넘어 접은 곳도 있다”며 “주변에도 (당국의 이번 지침에 어긋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당국의 유권해석이 이중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희철 디라이트 변호사는 “이미 현행법에 따라 사모펀드의 일반투자자 수를 49인 이하로 제한했는데 여기에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펀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이중규제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투자조합 수를 따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편이다. 안희철 변호사는 “개인투자조합, 벤처투자조합은 투자조합만의 계좌도 있고, 고유번호를 발급받아 세금을 내는 등 투자조합을 하나로 본다”며 “스타트업 주주 명부에도 투자조합이 적혀있지 투자조합원의 이름을 일일이 적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당국의 유권해석으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유치가 힘들어진다. 일반투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투자금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즉, 투자자 수가 줄어든 만큼 투자금액도 줄어들어, 안 그래도 어려운 스타트업 투자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벤처투자사 대표는 “개인투자조합의 경우 49명이 넘어버리기 때문에 10억원 이상의 펀드에는 들어가지 못해 단독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스타트업 입장에선) 투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의 서류 업무가 늘어난다. 비상장회사라도 50인 이상 투자자에게 증권을 발행할 경우, 모든 청약권유 합계액이 10억원 이상인 경우, 발행일로부터 1년 이내 50인 이상에게 주식이 양도될 수 있는 경우 전매제한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당국의 주장이다.
A 벤처투자사 관계자는 “스타트업 입장에선 과한 행정처리가 많아진다”며 “투자유치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만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아) 번거로운 작업이 많아지고 실무에 집중할 시간도 줄어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또 다른 벤처투자사 관계자 B씨는 “상장사와 비슷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 것으로, 비상장기업에게도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회사 수준의 서류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라며 “작은 회사들이 10억원을 투자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기업공개(IPO) 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투자자 수가 49명이 넘는 사모펀드를 받은 기업의 경우 당국의 상장 심사 시 이 점이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벤처투자사 관계자 B씨는 “한 스타트업은 상장 시 이 점이 문제가 되어 과징금 등의 조치를 받고 해결한 뒤 상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스타트업 업계를 겨냥해서 내린 유권해석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벤처 업계를 특정해서 규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자본시장법에 따라 투자자 수가 50인 이상일 경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예전부터 지켜지지 않아서 주의를 준 것일 뿐”이라고 규제를 강화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해당 법을 위반 시에는 상황에 따라 과징금이나 주의 경고를 받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치수준은 위반동기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과징금이나 주의경고를 받을 수 있다”며 “과징금은 (투자금) 모집 가액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을 곱하는 등 상황을 조사해서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이미 유권해석을 내린 만큼 법조계와 업계에선 이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안 변호사는 “당국이 이렇게 해석한 이상 기업들이 이를 어기면 위법일 여지가 크다”며 “법원도 감독기관의 의견에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스타트업계에 후폭풍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국의 유권해석이 스타트업에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안 변호사는 “조합원 수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한 상황에서 당국은 스타트업에 좋지 않은 해석을 했다”며 “이는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당국의 이해가 부족하고, 관리감독 측면에서만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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