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시선] SI, 하청에 재하청 일상인데…대기업이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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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이게 뭐야. 이렇게 흐른다고? ”
지난해 정부24 마비 사태를 비롯한 굵직한 행정 시스템 장애 사태 이후 고개를 든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논의를 보고 느낀 생각이다. 정부24 가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뒤 행정안전부 차관이 나와 고개를 숙이고 원인 규명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여기까지야 이해가 되지만 논의가 생각지 못한 쪽으로 흐르니 당혹감이 앞섰다.
당초 2013년 소프트웨어(SW)산업진흥법 개정 이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들은 국가안보 등 일부 분야 외에는 공공 소프트웨어(SW)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총사업 금액이 1000억원 이상이면 이들 기업도 참여할 수 있는 개선안을 내놓았는데, 이번 사태로 기준을 더 내려 700억원을 하한선으로 삼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보자. 한 3년 전까지만 해도 ‘개발자 모시기 경쟁’이라는 기사 헤드라인이 흔했다. 일명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라 불리는 유명 IT 기업은 물론, 중견 개발사들까지 높은 급여나 조기 퇴근, 현금성 복지 같은 달콤한 당근을 흔들며 개발자 입도선매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 통합(SI) 사업으로 먹고사는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력 유출을 겪어야 했다. 프로젝트성 매출에 의존하는 회사들이니 쉽게 높은 급여를 약속할 수 없었고, 회사 성장에 따른 스톡옵션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다.
한 IT 기업 대표는 소프트웨어(SW) 비즈니스의 본질 중 하나가 SI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SI 사업 특성상 특정 기업이나 기관을 위해서만 맞춤 개발하기 때문에 이후 다른 조직에 적용하는 게 힘들다. 이때 만든 솔루션은 다른 곳에 적용하기 힘들고 장기적으로 부가가치를 낮춘다.
역설적으로 SI 사업 통합 수주자, 즉 가장 윗단에 있는 업체의 입김은 무척 세다. SI라는 게 사실 매출(사업 총금액)은 크지만 이익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게 현실. 이에 협력업체에 흘러가야 할 이익을 통합 수주자의 몫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뤄진다는 게 그의 푸념이다.
정해진 사업 금액 안에서 발주자(기관)는 계속해서 업체를 닦달한다. 부담은 고스란히 아랫단의 협력업체로 이어진다. 이미 SI 사업에 몸을 담은 상황. 영세 기업들은 낮은 부가가치에도 출혈경쟁에 빠진다. 잘하는 개발자들을 빼앗긴 마당이니 결국 제공하는 기술의 질은 낮아지는 건 필연적 결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공 IT 사업 문화와 관계가 있다. 정부사업 공고만 하루종일 찾아보는 헌터와 제안서 작성의 선수들이 모여 ‘박스(Box·한 팀으로 움직인다는 뜻)’로 회사를 옮기는 광경은 이미 익숙하다. 제안서를 잘쓰고, 유려하게 발표하고, 평가에 영향력을 미치는 전문가들을 찾아내고, 프로젝트 관리(PM)만 잘하면 사실상 SI 업체의 할일은 대부분 끝난다. 정작 서비스의 뼈대가 되는 솔루션 개발과 유지보수는 아웃소싱 업체의 몫이니까.
이번 대기업 참여제한 완화 논의를 보고 대기업 SI 업체들은 “공공에서는 큰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며 짐짓 점잖은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이들이 숨어서 웃는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왜일까. 그냥 돈 때문은 아닐 테다.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가 얽히고 섥힌 그룹사 도식도다. 대기업 SI는 대부분 그룹사 시스템 업무를 함께 맡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그룹사 내부거래 규모를 공시토록 하고, 그 비율이 높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상황에서 대기업 SI는 이 비율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외부 SI 사업을 따내면 매출은 확보되기 때문에 기업의 총 매출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유지하면서 규제는 피하는 효과가 있다. 단순히 액수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대기업 SI에는 날고 기는 제안서 작성 전문가들과 발주자들이 보기에 좋은 대기업 간판이라는 무기가 있다. 절차야 밟겠지만 사업 참여 기준이 내려가면 대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뛰어들 건 자명한 일이다.
논의의 목적처럼 품질을 확실히 약속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매출 숫자는 맞추더라도 이익률이 내려가면 주주들의 항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하청의 재하청을 거듭하며 고혈짜기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그 하청업체들이 이미 우수한 개발자를 빼앗겼는데 어떻게 질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지금처럼이면 문제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완화의 밑그림은 지난해 11월 가닥이 잡혔지만 공식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꼭 대기업의 참여를 막자는 게 아니다. 잦은 과업 변경이나 심하면 보상금까지 물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 밖으로는 IT 강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수요보다 부족한 예산 등 업계의 목소리들을 정부가 반드시 들어야 한다.
장고 끝에 묘수가 나올까. 앞서 말한 기업 대표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란 겁니까.우리나라에 세계적인 SW 기업이 있긴 한가요? 언제나 대기업이 답인가요. 어디 제대로 해결되나 봅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진호 기자>jhlee26@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