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는 아닙니다만] 사자들의 코를 후려치다, 덤머니
사자들의 세상에서 고양이가 포효해봤자, 사자들이 콧방귀나 뀔까? 그런데, 고양이를 무시하던 사자가 큰 코를 다쳤다. 공매도로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주머니로 끌어모으며 승승장구하던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이, 주가 부양을 지지하던 개미들의 공세에 결국 무너져 무릎을 꿇고 2022년 파산했다. 직전 해에 일어난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태의 파장이다.
시계를 2021년으로 돌리자. 여기, 하필 2009년에 대학을 졸업한 불운한 청년 키스 질이 있다. 미국 최대 금융위기 상황에서 취업이 쉬울리가 없다. 청년은 거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백 수천통의 이력서를 쓰는 와중에, 생존을 위해 주식 투자를 공부했고 결국엔 재무분석가 자격증을 따 보험회사라는 직장을 얻었으며 부업으로 유튜브와 커뮤니티 레딧에 주식 방송을 열었다.
‘포효하는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방송하던 키스 질은 ‘게임스탑’이라는 비디오 게임 판매회사의 주가가 저평가 됐고, 공매도 비율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유명 투자자의 투자 소식이 게임스탑의 주가가 올라가리란 그의 판단에 확신을 더했다. “나는 이 주식이 좋다, 이 주식을 사라”고 말하는 그의 방송은 처음엔 조롱 당했으나, 게임스탑의 주가가 서서히 오르면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영화 <덤머니>는 게임스탑 숏 스퀴즈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상한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로 기업 사냥을 나서는 시점에서, 개미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주식을 집중 매수해 결국 승리를 거둔, 금융 시장 사상 초유의 사건을 다뤘다. 주식 시장에서 개미 투자자는 기관을 이길 수 없다, 개미가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상식을 깨트렸다. ‘덤머니’는 개미들의 돈,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바보들의 돈’을 뜻한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힘은 약하다. 공매도 판에서 개인투자자가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주가가 다소 반등하면, 돈을 잃을까 우려한 개인 투자자들은 금방 주식 매도에 나선다. 이 주식이 끝까지 오를 거라는 확신으로 모든 개미가 팔지 않고 버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모든 개미가 버티지 않는 이상, 개인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영화는 사건의 흐름을 쫓아가면서, 어떻게 이런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분석한다.
그런 부분에서 영화는 게임스탑 사태를 혁명에 비유한다. 오르는 주가 차트를 보면서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부자만 돈을 버는 주식 시장”에 대한 개미들의 분노가 깔려 있다. 키스 질을 따라 투자한 이들 중에는 헤지펀드의 공매도로 기업이 파산하면서 직장을 잃게 된 부모를 가진 대학생도 있고, ‘머리와 운이 따르면 돈을 벌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도 있다.
개인이 망하면 도움을 받기 어려운데, 헤지펀드는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봐도 다른 금융 회사나 기관의 지원을 받아 회생 하는 것에 대한 분노, 수수료 무료 정책으로 수천만명의 이용자를 모았으면서, 게임스탑 주가가 오르자 ‘구매’ 버튼을 막아 헤지펀드를 도왔다는 혐의를 받는 플랫폼에 대한 화도 이들이 결집하는 동력이 됐다. 그리고 그 분노의 버팀목으로, 흔들리는 투심을 다잡는 비전 제시 배짱형 리더가 있다.
영화는 개미들의 연대와 짜릿한 한 방이라는 실화를 기록한다. 이겨본 경험은 귀중한 것이라, 부당하다 생각하는 일이 생길 때 저항할 수 있는 배짱과 근육을 키워준다. 영화 말미에 밝히듯, 멜빈 캐피털 파산 이후 헤지펀드들이 공매도에 투자하는 비율이 줄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있다. 꽤 많은 이들이 아는 실화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배우들과 실제 인물의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도 깨알 재미다.
<덤머니>는 1월 17일 개봉한다. 영화 <크루엘라>를 찍은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이 연출했고, <소셜네트워크> 제작진이 참여했다. 게임스탑 숏 스퀴즈 사태를 이끈 키스 길의 역할은 영화 <더 배트맨>에서 미친 악역 연기를 선보인 폴 다노가 맡았다. 개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한 멜빈 캐피털의 게이브 플롯킨 역은 유명 코미디 배우 세스 로건이 연기했다. 이 외에, 미국 SNL의 크루이자 화려한 연애사의 주인공 피트 데이비슨, 환경운동가로도 활동 중인 쉐일린 우들리,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의 세바스찬 스탠 등이 출연했다. 그린나래미디어가 국내 수입했고, 플레이그램, 키노라이츠, KNN미디어플러스가 수입과 개봉에 공동 투자했다.
만약, 게임스탑 사태를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봐도 재미있겠지만 사전 지식을 조금 알고 가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관람을 위한 짤막 개념 소개다. 물론,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아래 개념을 설명하므로 읽기 귀찮다면 패스해도 좋다.
공매도_ 또 다른 말로는 숏. 주식(혹은 재화)을 미리 빌려서 매도해 현재 가격 만큼의 돈을 받고, 나중에 빌린 만큼 같은 수량의 주식을 상환해 중가 차익을 남기는 투자법. 상환 시점의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벌 수 있고, 반대로 상환 시점에 주가가 오르면 손해를 본다.
숏스퀴즈_ 공매도 투자자들이 예상과 달리 주가가 상승할 경우 더 큰 손실을 줄이기 위해 빌린 주식을 다시 매수하는 것.
레딧_ 미국의 커뮤니티. 아주 다양한 주제의 서브 레딧이 열려 있어, 이용자가 관심사 별로 자신의 서브 레딧을 설정하거나 혹은 만들 수 있다. 이 안에서 게시물을 공유하고 토론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