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구글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핀테크 스타트업
바이라인네트워크에서 스타트업을 리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1
나는 쇼핑을 하기 전 신용카드 혜택을 꼼꼼하게 살피는 편이다. 신용카드 회사 카드 종류 별로 각각 혜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신용카드를 골라서 소비할 때 혜택을 모아보면 매우 쏠쏠하다.
그러나 딱 맞는 신용카드가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가 있다. 신용카드마다 제공하는 혜택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가장 효율적인지 단번에 알 수는 없을까? 핀테크 스타트업 페어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이다. 사용자가 모바일에서 구매를 할 대 보유한 카드 중에서 가장 적합한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추천해준다.
#2
가짜 URL로 이용자를 속이는 스미싱은 모바일 환경의 큰 위협요소다. 금융사나 대기업 등을 위장해 사용자에게 문자, 카카오톡, 밴드 등으로 악성 URL을 첨부해 보낸다. URL을 누르면 스마트폰은 악성코드에 감염된다. 페어리는 이런 악성 URL을 탐지해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위의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기술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기술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페어리가 개발한 이 원천기술은 데이터를 활용해 구분하고 감지한다는 점에서 원리가 같다고 한다. 이밖에도 회사는 이 기술을 활용해 캐시백 연동 서비스, 할인쿠폰 알림 서비스 등을 하고 있다.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곳에 활용하는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즈(OSMU)인 셈이다. 페어리는 이 기술의 특허도 출원했다고 한다.
페어리의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인력구성에 있다. 전체 직원 9명 중 5명이 구글 출신이라는 점이다. 페어리 장인선 대표를 비롯해 개발자, 사업 이사 등이 구글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다. 평소 쇼핑 혜택 알림에 목말라있던 장 대표가 먼저 서비스 개발에 나서면서, 가능성을 본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에 합류했다. 장 대표를 만나 창업 계기와 사업 전망, 계획 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페어리, 어떤 회사인가?
페어리는 기업간기업(B2B)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회사다. 모바일 앱 고객사를 대상으로 앱의 리텐션을 올리고, 사용자 데이터를 모을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납품한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어떤 사이트, 앱에 들어갔는지 알 수 있어 기업은 사용자에게 푸시 마케팅을 할 수 있다.
공급하는 SDK가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하는 것인가?
그렇다. 사용자의 행동을 추적하고 수집하는 것은 맞지만, 기존 방식과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기존 방식은 사용자로부터 권한을 취득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쿠키 같은 기술을 통해 수집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 반면 페어리는 사용자에게 데이터 수집 동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두 번째는 페어리는 보안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어느 웹사이트에 들어갔다는 정도의 데이터만 수집한다.
-그렇게 얻은 데이터를 통해서 무엇을 얻나?
사용자들의 관심도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A백화점 사이트나 앱에 들어갔을 때 푸시를 통해 B카드를 쓰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추천해줄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선 평소에 B카드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많은데 이걸 사용자가 필요할 때 맞춰서 알려준다.
-그러면 주요 고객군이 카드사일 것 같다.
혜택에 맞는 추천을 해주는 SDK의 경우 카드사가 주요 고객군이다. 은행은 보안 서비스의 주요 고객군이다. 페어리는 안전한 사이트와 그렇지 않은 사이트를 걸러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비슷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를 가지고 있지만, 네이버가 아닌 URL을 걸러낸다.
커머스와 리워드 회사도 주요 고객군 중 하나다. 모바일 쇼핑 시 결제까지 다 하고나서야 쿠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커머스 앱에서 장을 보기 전 사용자에게 어떤 쿠폰을 보유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캐시백 회사의 경우 사용자가 해당 앱에 들어와야 캐시백을 이용할 수 있는데, 페어리의 솔루션은 커머스 앱이나 사이트에서 버튼 하나로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한다. 즉, 커머스, 리워드 앱에서 타 기업의 캐시백 연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까지 소개한 서비스 모두 근본적으로 같은 기술이라는 점이다. 사용자가 어느 사이트, 앱에 들어갔는지 인식을 하되, 어떨 때는 악성 사이트를 걸러내고 다른 때는 결제 혜택을 도와준다.
-악성 사이트를 분류하려면 악성코드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이런 것도 하고 있는 것인지?
자사 서비스의 기반 기술이 가상사설망(VPN)이다. 사용자로부터 권한을 취득해 네트워크를 볼 수 있는 기술인데,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악성사이트임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사용자가 어느 사이트에 들어갔는지 구별하는 것이 핵심일 것 같다.
그렇다. 안드로이드와 iOS 둘 다 가능하다.
-원천 기술은 직접 개발을 한 것인지?
직접 개발을 했고 특허출원도 했다. 현재 회사의 전체 직원은 9명 정도고 그 중 절반이 개발자다.
-이런 서비스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사용자 입장을 이해하면서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쇼핑할 때 결제 혜택을 알고 싶은데, 어떤 혜택이 있는지 외우는 것이 귀찮았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혜택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집에서 코딩을 하고 프로토타이핑을 했고, 개발을 하면서도 “진짜 되네”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됐다.
-창업 전에는 구글 본사에서 일을 했다고?
구글에서 약 8년 정도 백엔드 개발자로 일을 했다. 안드로이드, 서치, 구글 클라우드, 기계학습모델 텐저플로우 등을 담당했다. 개발자, 개발 매니저, 제품총괄 등을 거치고 퇴사하게 됐다.
당시 일하면서 느낀 점은 구글이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이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안드로이드, 크롬, 서치 등 각종 플랫폼을 잘 만들어놓고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도록 한 다음, 검색으로 사용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를 하는데, 구글의 광고 규모가 미국 전체 광고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특히 구글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달리 유럽연합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시행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여기서 페어리의 기술은 구글, 애플이 아니라 다른 비즈니스들이 데이터를 모을 수 있고, 그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발하면서 참고한 서비스가 있는지?
페이팔이 지난 2019년 인수한 가격확인 및 비교 서비스 업체 ‘허니’다. 당시 허니는 4조7500억원에 팔렸는데, 매출 규모가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기업가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1700만명이 쓰는 서비스라는 점 때문이다. 미국 2030 대부분이 허니를 안다.
허니는 사용자가 PC 크롬 브라우저로 쇼핑을 할 때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는지 데이터를 모은다. 그리고 사용자가 들어간 사이트에 맞춰 프로모션 코드를 제공한다. 미국은 프로모션 코드 입력으로 할인을 받는 문화다. 우리나라로 치면 할인 코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나이키에서 운동화를 사기에 앞서, 나이키 프로모션 코드를 구글에서 검색하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허니는 알아서 이런 프로모션 코드를 찾아주는 서비스로, 높은 기업가치에 매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라고 본다.
그러니까 페이팔은 검색, 쇼핑, 콘텐츠, 메신저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가 자사 서비스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결국 이런 기능을 해줄 수 있는 페이팔을 인수하게 됐다.
다만, 허니는 모바일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페어리는 여기에 착안해 기술 개발을 하고 서비스를 하게 됐다. 국내의 경우 PC보다 모바일 커머스 시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고 허니같은 기술이 없고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어서 만들게 됐다.
-그럼 현재 네 가지 서비스 중에서 가장 시장잠재력이 크거나 주력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첫 번째는 앱 푸시를 통해 어떤 카드의 혜택이 있는지 알려주는 SDK 서비스가 주력 사업이다. 다음으로는 은행권에 공급하는 피싱 사이트 알림 서비스다. 금융그룹사 차원에서 두 서비스 모두 쓰고 싶다고 하는 곳도 있다.
-카드사의 경우 페어리의 어떤 기술에 주목을 하는지?
평균적으로 카드사의 경우 카드 혜택 등 잘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점이 없다. 온라인도, 오프라인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배너광고 정도였다. 배너광고를 하더라도 카드사 입장에선 광고를 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사 카드를 많이 쓰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카드사 프로모션의 경우 상시로 바뀌는데 배너를 커머스 앱에 노출하까지 약 한 달이 소요된다고 한다. 반면, 페어리 서비스의 경우 카드사에서 변동되는 혜택에 맞춰 사용자에게 정보를 줄 수 있다.
-지금 카드사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현재 얘기 중이다.
-보안 서비스의 경우,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많을 것 같은데 페어리의 강점은 무엇인지?
개발을 하면서 국내 보안업체들이 어떤 모바일 보안 서비스를 하는지 시장조사를 했었다. 결과적으로 문자 스미싱, 카카오톡 피싱에 대응하는 솔루션은 없었다. 페어리 솔루션은 문자,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네이버 밴드, 텔레그램, 이메일 등에서도 악성 사이트를 걸러낸다. 추가적으로 악성 사이트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접근 차단을 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페어리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은행과 일을 하고 있다.
-해외 진출은 어느 국가를 보고 있는지?
재밌는 점이 외국도 한국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로 결제사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또 미국이나 싱가포르의 경우 캐시백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어서, 해당 솔루션도 관심을 받고 있다.
페어리의 최종적인 종착지는 미국이다. 다만, 미국으로 가기 전에 싱가포르에서 레퍼런스를 먼저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어권이기도 하고, 업무적인 의사소통 방식이 미국처럼 깔끔해 테스트하기에 좋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업체 몇 곳과 접촉을 하고 있고 빠르면 내년 상반기쯤 소식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회사의 수익모델은 무엇인지?
SDK 판매를 통해 일어난다. 구독료 기반이어서 꾸준히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이것도 두 가지로 나뉘는데, 앱 푸시당 가격 책정과 사용자 기반의 가격 책정으로 나뉜다.
-2021년에 창업을 했으면 사업기간의 절반은 스타트업 호황기, 절반은 암흑기(?) 였을텐데, 이 시기를 모두 겪으면서 어땠나?
페어리의 경우 운이 좋았다. 시기가 좋았을 때 투자를 받았는데, 2022년에 인포뱅크 등 4곳에서 13억원을 투자유치했다. 당시 구글 출신이 모여서 시장에 없던 서비스를 하겠다는 점을 인정 받았다.
-구글 출신 직원들은 몇 명인가?
저를 포함한 5명이다. 그 중 3명이 개발자고, 사업 이사, 구글플레이 광고 영업 파트너십을 맡았던 직원이 합류했다.
-어떻게 의기투합해서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게 됐는지?
페어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들 공감을 많이 했다. 또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응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당장 고객사에 영업을 하러가도 어떤 것이 힘든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올해 가장 중요한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지?
아직 고객사와 계약한 것이 없는데, 서비스 공급 계약을 하게 된다면 서비스 운영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상반기 고객사의 서비스가 잘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집중할 목표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성장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