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지올팍의 머릿속

튀는 아티스트가 더 튀는 일을 합니다.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노래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씹어먹은 가수 지올팍(박지원)이 내년 1월엔 패션 브랜드를 론칭합니다. 회사 이름은 ‘신드롬즈’. AI 기반으로 커스텀 패션 커머스 플랫폼을 만듭니다.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표정을 지으며,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AI 로봇이 신드롬즈의 페르소나입니다.

지올팍은 AI와 공상과학을 기반으로 패션브랜드를 만든 이유를 지난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열린 ‘컴업2023’ 기조연설 자리에서 풀어냈습니다. 가수이기 이전부터 패션계에서 이미 주목받던 그가, 대중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이때, 왜 AI와 로봇을 가져다가 패션 브랜들를 만들었는지 말입니다. 그의 말을 요약해봤습니다.

#1. 되는 브랜드와 되는 브랜드의 기준을 찾다

잘 되는 브랜드와 안 되는 브랜드를 구분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과정이다. 브랜드와 소비자, 두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는데 잘 안 되는 브랜드는 ‘대화의 소재’가 없더라. 대화를 이어나가기 힘들어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브랜드는 창업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멋’이라는 가치에 기대 브랜드 활동을 전개한다. 그런데 멋은 모호한 가치이며 주관적 가치다. 그 가치에 기대 브랜드를 전개하다보면 브랜드 스토리의 유지력을 잃기 쉽다.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옷은 대체품이 널렸다.

그렇다면 잘 하는 브랜드는? 대화의 테이블에 확실한 대화 주제를 올린다. 예를 들어 슈프림. 1990년대에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사랑하는 소년이 프로 보더들을 상대로 “제가 여러분의 문화를 너무 사랑해서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한 번 만들어보려 한다”고 말했고, 사랑받는다. 브랜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키우기 위해선, 결국엔 그 브랜드에 강력한 컬처 코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 2. 브랜드의 대화코드로 AI 나온 이유

그 컬처 코드로 ‘AI’를 왜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나의 작곡방식을 알려주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이 음악 산업에서 AI 기술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피부로 경험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곡을 만들 때, 먼저 멜로디 라인을 생각한다. 동시에 머릿속에 구상을 한다. 이 멜로디 라인에 어떤 비트를 묻히면 좋을지, 또 이 비트에는 어떤 악기소스를 이용하면 좋을지, 이러이러한 장치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지 등을 생각하면서 곡을 만든다.

이 이야기는, 함께 일하는 작곡가 친구에 전달되고, 함께 곡 편곡을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전달받은 곡 파일은 원래 내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그 친구는 – 아무리 오래 일했다고 하더라도- 내머릿속을 100% 알 순 없기 때문이다. 곡 작업은, 이런 요청과 재요청의 작업이 몇번이고 이뤄져야 완성되는 작업이다.

여기에 AI 기술의 필요가 있다. 이제 상상을 해보는 순간이다. 생성 AI 기술이 상용화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난 작곡가 친구와 일을 할까, 이 AI 친구와 일을 할까? 당연히 AI 친구다. 그것이 훨씬 더 시간 절약이 되고 쓸데 없는 노동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창작의 고통에는 90%가 쓸데없는 고통이라고 본다. 그 쓸데 없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가수만 그러한가? 방송 영상을 만드는 촬영 스태프의 노동 환경을 생각하면, 영상에 들이는 노동과 시간, 비용을 AI가 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아이돌 프로덕션과 나와 같은 인디 프로덕션의 규모 차이 또한 줄어들지 않겠나. 간극이 좁혀지면, 조금 더 공평한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예술가들을 이 구렁텅이에서 끄집어 내줄 수 있는 게 AI 기술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3. AI 가수를 대체하게 될까

문제는 그것이다. “이러다가 우리 AI에 대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그렇게 생각할까”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 그러냐면, 일단 보컬 생성형AI가 대중들에 지금 많이 친숙하다. 예를 들어,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하입보이(Hype boy)’ 같은 것(생성 AI가 커버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보면서 하나도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았다. 가수들이 말하는 ‘대체’라는 것이 지금 “보컬리스트라는 직업을 대체하는 것”을 말하는지, 아니면 “지금 이 시장에서 내 위치가 위협받는 건지” 불분명하다.

만약 이 두 가지를 모두 위협으로 느낀다 하더라도, 사실은 AI가 (특별히 더)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에 내가 나온다고 치자. 나보다 내 모창을 더 잘하는 분이 나와 결국에 나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 모창가수가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가수’라고 말하는 대상은 그 직업군이 아니라 한 IP를 특정해 말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이 시장은 이미 서로를 위협하고 있다. 가수든 배우든, 시장에 새로운 ‘신인’이 등장하면 기성 가수나 배우는 위협을 받는다. 보컬 생성형 AI가 나중에 안정화되어 가상의 가수를 만들어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기존의 (인기있는) 가수를 위협하는 것 뿐이다. 새로운 가수가 등장해 기존 인기 가수를 대체하는 것과 딱히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작곡가 역시, 보컬 생성 AI를 통해 나오 같은 가수를 만들어 음원을 낼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오히려 음악 산업 구조가 변화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은 늘 새로운 개성강한 트렌드를 불러왔다. 그런데 왜 대중은 계속해서 극단적으로 “우리는 대체될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4. 고하라, 우리 모두는 대체될 것이다

AI 시대가 온다면 비효율로부터 해방되고, 진정한 개인화의 시대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인류의 많은 문제가 AI 기술을 통해 회복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유토피아 세상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로봇 공학자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내가 물었다. “인간은 왜 인간 형태의 로봇을 만들려고 할까요?” 그가 답했다. “AI가 계속 발전한다면 뇌 밖에 없을 것이다. AI에게 인간의 몸을 줘서 인간 세상을 직접 겪게 하고 싶다.” 그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인간한테 최적화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어서다. 인간의 몸을 갖지 않은 로봇은 인간이 갖는 불편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문을 열거나 변기에 앉거나 하는, 모든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이다.

인간의 몸으로 움직이면서 갖는 고통이나 문제를 로봇이 공감할 수 있다면, 데이터를 더 많이 쌓기 쉬울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알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는 것.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AI의 이야기가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 사상과 닮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캐릭터가 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웃음).

인간의 몸을 입은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스토리가, 인간의 몸을 입은 AI가 인간의 문제를 찾아 개선하는 스토리와 닮아 있다고 봤다. 굉장히 유토피아적인 세상이 올 거라는 더 강한 확신이 서기 시작했다. 내 브랜드는, ‘스킨톤’을 시그니처 컬러로 잡았는데, 인간의 몸을 입은 AI를 상징한다.

내가 브랜드를 만든 이유? 세상이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렇게 AI 기술이 판을 치고 있는데 나는 이 기술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내가 어떤 포지션으로 시대를 받아들이고 역할을 해야 할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 속에서 과학자와 예술가, 문학가는 분명 다르게 존재해왔다. 과학자는 당연히 기술 개발을 지속 해왔지만 예술가나 문학가는 “기술이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거나, 어떤 사상을 전달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한 아티스트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할까?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면, 이 기술이 나아가는 방향을 대중들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AI는 컴업에 온 당신들 스타트업의 정신과도 비슷하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대중들이 말하는 그 ‘(AI로의) 대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대체되려 한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로 AI시대에 예술가가 전해야 할 메시지를 전한다. 고로, 내가 만드는 브랜드의 슬로건과 기도문은 이렇다.

“고하라, 우리는 모두 대체될 것이다.
……
(그러나) 두려워 하지 마라, 휴먼들이여.”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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