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박스 가이’ 떠난 유니티, 여전한 수익성 고민

존 리치텔로 유니티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이사회에서도 떠난다. 런타임 요금제 논란이 촉발한 지 한달여 만의 일이다. 사임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는 개발자의 강한 반발과 불만에 따른 리더십 교체로 이해하고 있다.

유니티테크놀로지스는 지난 9일(현지시각) 존 리치텔로 유니티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고 밝혔다. (사진=유니티)

리치텔로 CEO는 지난해 포켓게이머와의 인터뷰 도중 게임 개발자들을 향해 ‘빌어먹을 멍청이들(fucking idiots)’이라는 표현으로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개발 초기부터 또는 부분유료화 전환 등으로 수익화를 염두 하지 않는 개발자들을 향해 순수하다고 말해 비꼬는 뉘앙스로도 읽혔다.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한 표현으로 볼 수 있으나, 다소 직설적인 단어 선택에 타 매체 인터뷰에서 “조잡한 단어 선택이었다. 더 잘하겠다”며 결국 사과했다.

<참고기사: John Riccitiello: devs who shun monetisation are “pure, brilliant” and “fucking idiots”>

리치텔로 CEO는 유니티 전에 일렉트로닉아츠(EA) 사장으로 재직한 이력을 들어 ‘루트 박스(loot box) 가이’로도 불린다. 루트 박스는 직역하면 전리품 상자다. 쉽게 말해 확률형 뽑기 아이템을 말한다. 국내에선 확률형 뽑기 아이템이 일반적인 수익모델(BM)이나, 서구권에선 게이머들은 물론 개발자의 반발도 적지 않다. 상업성을 강조하면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해친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가 EA에 재직할 당시 피파 시리즈 등에 루트 박스를 적용했다.

최근 국내외 게임업계를 달군 소식 중 하나가 ‘유니티 런타임 요금제’다. 리치텔로 CEO의 지난 인터뷰나 그가 주도한 잇단 인수합병 추진을 짚어보면, 수익성 강화를 꾸준히 이어온 유니티가 꺼낼만한 카드였다는 생각이 든다.

유니티 런타임 요금제는 영화 흥행 결과에 따라 배우나 스태프들이 받는 ‘러닝 개런티’ 계약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개발사가 유니티에 개런티를 지급한다는 것. 유니티는 내년부터 매출뿐 아니라 게임 설치 횟수까지 고려해 로열티를 받겠다는 요금제를 발표했다.

<참고기사: 유니티, 내년부터 ‘런타임 요금’ 받는다…성명서 등 우려 분출>

개발사(자)들은 추가 요금제 신설로 설치 횟수가 많아지고 성공할수록 로열티를 더 내야 한다는 소식에, 비판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처음 유니티 발표안엔 세부적인 내용이 없었다. 어떻게 설치 횟수를 감지할지 등 업계 우려에 대응한 한 차례 수정안이 발표됐지만, 거세진 불만을 잠재우진 못했다.

게임업계에 20년 가까이 몸담은 중견기업 임원은 이렇게 반응했다. 유니티의 이윤 추구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판단 미스를 꼬집었다.

“기업으로서 이윤 추구는 당연한 일인데, 다만 돈을 버는 회사들이 많이 내는 구조로 가야 한다. 돈을 못 버는 인디나 소규모 회사엔 앞으로도 무료로 풀면서 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엔진이라는 게 한번 쓰면 갈아타기가 쉽지 않다. 유니티를 가르치는 학원이 많아 관련 개발자가 많이 배출되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유니티를 많이 쓰다 보니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반발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지 않았나 한다.”

유니티의 경우 개인 개발자들도 애용하는 엔진이다. 크고 작은 개발사를 막론하고 풀뿌리 개발자들까지 비판 여론에 가세했고 몇몇 유명 개발사들은 유니티 엔진 보이콧(집단 거부)에 나섰다.

유니티 요금제 비교

결국 유니티가 백기를 들었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런타임 요금제를 무료 기반의 ‘유니티 퍼스널’ 플랜엔 적용하지 않는다. 과금 기준도 상향했다. 세부 요건도 없앴다. 현재 엔진 버전을 유지할 경우, 기존 약관이 그대로 유지된다. 런타임 요금제를 따를 필요가 없다. 2024년에 첫 출시되는 LTS(장기지원) 버전 이후 엔진을 활용한다면 런타임 요금제가 적용된다. 개발사는 매출 2.5%나 또는 신규 이용자 수 기반으로 로열티를 낼 지 선택하면 된다.

<참고발표: 유니티 커뮤니티에 전하는 공개서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치텔로 유니티 CEO가 사임한 것이다. 리치텔로 CEO는 2014년 유니티 대표에 선임돼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잇단 인수합병(M&A)에 힘을 쏟았다. 특히 앱플라이어와 아이언소스 등 굵직한 광고 수익화 플랫폼 기업들을 인수합병했다. 시각특수효과 스튜디오인 웨타 디지털 등 2020년 상장 이후에만 무려 10곳 이상을 인수했다.

이 중 아이언소스 인수금액은 44억달러(약 5조9600억원)로 가장 덩치가 크다. 웨타 디지털만 해도 16억2000만달러(약 2조1900억원)이다. 플랫폼 수익성 강화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공모자금을 포함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이제 유니티를 콘텐츠 제작 플랫폼 기업이 아니라 광고 수익화 플랫폼 기업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유니티 매출 비중이나 포트폴리오 무게 중심이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유니티 덩치는 엄청나게 커졌으나, 여전히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연간 매출을 보면 ▲2019년 5억4178만달러(약 7300억원) ▲2020년 7억7245만달러(약 1조400억원) ▲2021년 11억1053만달러(약 1조5000억원) ▲2022년 13억9102만달러(약 1조8800억원)다. 작년 연간 영업적자는 8억4017만달러(약 1조1300억원). 2023년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2억5498만달러, 1억8841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안에 전 직원 8%에 달하는 600여명의 인력 감축도 진행한다.

2020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유니티는 주가가 주당 200달러를 넘나들기도 했으나, 지난 13일 종가 기준 28.03달러를 기록 중이다. 런타임 요금제 발표일인 지난 9월 12일(현지시각)에 38.97달러를 기록한 이후 내림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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