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탈중앙화’는 가능한 일인가, 두 가지 견해
블록체인 시장에서 ‘탈중앙화’는 아픈 손가락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의 핵심 이념이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한 경우는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참여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탈중앙화의 이념이나 구조가 복잡해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져 버린다. 또 중앙의 통제를 완전히 받지 않는 네트워크에서는 자금세탁이나 투자 사기 등이 부작용 나타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법규제가 필수적으로 따라오게 됐다. 법규제를 통한 통제는 탈중앙이라는 이념과는 반대되는 길이다.
서상민 클레이튼 이사장은 <바이라인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이 탈중앙화 이념으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자금세탁이나 투자 사기 등이 부작용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법의 개입이 필수가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블록체인 개발자는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대중화 실현에 취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화된 성격의 무언가가 개입하는 것은 블록체인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는 블록체인 프로토콜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블록체인 프로토콜 경제는 모든 참여자들이 생태계에 기여한만큼 보상받는 구조로, 블록체인의 기본 이념이기 때문이다.
중앙 집중식 네트워크의 반대 개념인 탈중앙화는 블록체인의 기본 이념 중 하나로, 네트워크를 여러 곳으로 분산해 중앙 서버가 없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복잡하고 다양한 ‘탈중앙화’에 대한 기준
현존하는 대부분의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프로젝트 중 완벽한 탈중앙화를 구현한 사례는 ‘제로’에 가깝다. 이는 탈중앙화가 실현하기 복잡한 구조라는 것도 기인하지만, 각 네트워크마다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사람들이 ‘탈중앙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사실 서로 다른 세 가지의 탈중앙화를 뒤섞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탈릭 부테린에 따르면 탈중앙화는 각 네트워크 혹은 프로젝트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탈중앙화할 지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그는 탈중앙화는 ▲구조적 탈중앙화(기술 기반 구조 상 단일 지점 실패의 여지가 없다) ▲정치적 탈중앙화(누구에게도 통제 받지 않는다) ▲논리적 탈중앙화(하나의 합의된 상태가 존재하고, 전체가 한대의 컴퓨터처럼 작동한다)로 나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구조, 정치적으로 탈중앙화를 이뤘다고 볼 수 있으며, 블록체인 메인넷 ‘카르다노’는 구조적 탈중앙화만, 아발란체나 솔라나는 구조∙정치적으로도 탈중앙화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쟁글 리서치에 따르면 카르다노의 주요 의사 결정은 재단인 ‘IOHK’가 주도한다. 다만, 지분증명 방식(PoS)을 사용한 구조적 탈중앙화를 추구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중앙화돼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어느 정도 탈중앙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쟁글 리서치는 “카르다노 측은 온체인 거버넌스에 모든 권한을 양도한다고 했으나 이들의 로드맵은 꾸준히 지연돼 왔기 때문에 정치적 탈중앙화를 이룰지는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고 봤다.
“블록체인, 어느 정도는 중앙집권화가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
이렇듯 각자의 여러 이익에 맞춰 블록체인 플랫폼 및 거래소는 어느 정도의 중앙화를 수용하고 있다. 블록체인 대중화 및 상용화 측면에서 ‘중앙화 거래소’에 상장되기 위해 혹은 거래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중앙화될 수 밖에 없으며, 탈중앙화의 부작용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억압된 규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현준 해시드 심사역은 “정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다”면서도 “규제 도입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탈중앙화하는 모습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1900년대 중반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제 기업들 또한 여러 규제나 중앙의 억압을 받았지만 점진적으로 탈중앙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기업들 또한 그들과 비슷한 길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맥도날드 등의 중앙화 기업만이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1990년대 중반부터는 플랫폼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이 이용자가 되는 시장이 나타났고, 그 다음 블록체인 프로토콜 경제가 나타나 플랫폼의 개발이나 운영, 보상까지 이룰 수 있는 구조가 나타난 것이 여러 국가 규제와 중앙화된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서 클레이튼 이사장 또한 “탈중앙화와 법의 도입은 사실 별개의 문제고, 기술적 측면에서 법의 도입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적 활동에 위협을 가하거나 저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기술은 규제가 없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탈중앙화는 어떤 중앙화된 개체에 의존하지 않고 많은 참여자가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을 말하는 거지, 불법적인 활동을 판치는 것을 지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블록체인의 모든 것이 탈중앙화돼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탈중앙화만이 블록체인 기술을 흥하게 한다는 입장의 사람들은 “애매한 탈중앙화는 쓸 데 없다”고 평가한다. 탈중앙화는 중앙화된 어떤 것과 특정 비율로 섞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한 블록체인 연구원은 “중앙 세력이 존재하는 순간 탈중앙화라는 말은 섞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장중혁 블록체인경제연구소장은 “탈중앙화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탈중앙화라는 원리를 이용해서 금융 등의 측면에서 큰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탈중앙화가 이뤄지지 않은 중앙화된 거래소들은 모두 사라져야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탈중앙화된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탈중앙화된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블록체인을 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6월 코빗리서치센터가 발간한 ‘블록체인 탈중앙화 측정하기’ 보고서에서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는 탈중앙화된 솔루션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모든 블록체인 문제가 탈중앙화 솔루션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탈중앙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네트워크가 성숙해짐을 뜻한다고도 덧붙였다.
글.바이라인네트워크
<박지윤 기자> nuyijkrap@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