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리] 물류센터만 파는 자율주행로봇 만든다, 플로틱

이라인네트워크에서 타트업을 뷰합니다. 줄여서 ‘바스리’. 투자시장이 얼어붙어도 뛰어난 기술력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은 계속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바이라인의 기자들이 만나봤습니다.

로봇이 어떻게 사람이랑 같이 물류센터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로봇 사진을 잠깐 볼까요?

움직이는 선반처럼 생겼죠?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리진 않았지만, 사람과 섞여서 제몫의 일을 합니다. 물류창고로 들어오는 상품을 선반까지 날라다주고, 주문이 들어와 배송가야 하는 상품은 포장하는 곳으로 가져다주죠.

사진 속 로봇을 만든 회사는 플로틱. 공동창업자인 이찬 대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물류센터 입출고 작업을 위한 AMR(Autonomous Mobile Robots, 자율이동로봇) 솔루션 개발”이라고 말합니다.

3일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플로틱 본사에서 이찬 대표를 만났습니다.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다 로봇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죠.

플로틱을 찾은 이유는 이 회사에 최근 새소식이 많아서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동부 현지 투자자를 만나 볼 기회를 얻었고, 롯데글로벌로지스와는 물류센터에서 로봇과 관제 소프트웨어를 테스트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대표는 플로틱이 “물류 창고만 겨냥한다는 점”에서 시장을 차별화했고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창고관리시스템(WMS)과 로봇을 연동하는 미들웨어를 사용하기 쉽게 잘 만들었다는 것”에서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중요한 키워드 별로 정리해봤습니다.

이찬 플로틱 대표. 카카오벤처스, 배달의민족, 네이버랩스 등에서 인턴을 거치면서 로봇 개발과 서비스 전반에 대한 감을 익혔고, 심지어 창업의 동지들 역시 인턴 시절에 모았다고 합니다.

물류센터에 자율주행 로봇이 필요한 이유

“모두를 만족시키겠단 말은 단 한 명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 없다.”

플로틱이 물류센터만 파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쓸 수 있는 자율주행 로봇은 다시 말해서 어떤 산업에서도 100% 딱 들어맞는 능력을 보이긴 어렵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지죠. 왜 하필 물류센터야?

“사람 대신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로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로봇을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 플레이어는 많지 않으면서 앞으로 더 커질 시장’에 적용하고팠다. ‘이커머스’는 생긴지 얼마 안됐지만 엄청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물류센터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주목했다.”

이커머스가 커졌다는 것은 배송 시장도 따라 늘어난다는 것이지만 물류센터는 아직 그만큼 고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요. 물류센터가 더 많은 노동력과 효율적인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파악한 거죠. 그러나 그러려면, 잘 아시겠지만 돈이 듭니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류도 마찬가지라, 새 로봇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에 물류센터가 부담을 느끼진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찬 대표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커가는 이커머스 시장의 규모에 비해 물류센터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이 계속 필요한데 구할 수 없으니, 일부 업무는 로봇에게 맡기면서 사람은 꼭 필요한 곳에 투입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제안입니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건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는데요, 그러나 사람이 부족한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한 명에 주어지는 업무의 강도가 과중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로봇의 도입이 현장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보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루트만 따라 돌아다니는 로봇 솔루션의 경우에는 건물 인프라도 로봇의 이동에 맞춰 구현해야 하므로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실내측위로 움직이는 로봇은 초기 도입 비용이 크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죠.

실내측위는 실내 위치 추적을 말합니다. 카메라와 라이다 같은 센서를 통해 실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죠.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려면 로봇청소기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로봇청소기를 사면서 집안 구조를 청소기에 맞춰 바꾸지는 않죠. 로봇청소기가 홀로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구조를 머릿속에 담습니다. 이 과정을 맵핑이라고 하고요, 맵핑이 끝나면 청소기가 알아서 가구나 문턱을 피해가면서 청소를 합니다.

다만, 실제로 물류센터의 자율주행 로봇이 업무에 투입될 때는 로봇청소기처럼 단순한 맵핑 정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상품이 적재된 수많은 선반을 정확히 찾아가서 물건을 담고, 다른 로봇이나 사람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유동적으로 일해야 하는 일을 청소기와 비교할 순 없겠죠. 훨씬 어려운 작업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단에서 요구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단락에 해볼까요?

플로틱이 만든 물류 로봇의 초기 버전.

로봇에 정확한 작업지시를 내리려면

“물류센터에서 로봇은 상품을 A의 위치에서 B의 위치로 옮기는 일만 하지 않는다. 로봇이 상품을 효율적으로 나르기 위해서 어떤 상품을 챙겨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실시간 상품 조합과 동선을 짜야 한다. 매일매일 처리해야 하는 물동량도 다르다.”

오늘 1000개의 상품을 배송 처리한 물류센터가 날마다 하루 1000개의 상품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블랙프라이데이 때는 평소의 수십배 배송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물류센터 현장은 매우 유동적이며, 그래서 상품 입고에서 출고까지 원활한 작업 흐름을 위한 알고리즘을 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만큼 똑똑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이찬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플로틱의 강점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류창고에서 원래 쓰는 창고 관리 시스템(warehouse management system, WM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재고 위치와 수량, 주문량 같은 것을 담아두는 솔루션이죠. 사람도 이 WMS의 정보를 받아서 하루 업무량과 동선을 정해 일합니다. 사람은 눈으로 읽고 파악해서 움직이지만, 로봇의 경우에는 정확하게 업무를 인지시켜줘야 더더욱 실수가 줄겠죠.

그래서 플로틱은 이 WMS와 로봇을 이어주는 미들웨어를 만드는 데 공을 들입니다. 작업지시 알고리즘을 짜는 것인데, 아래 그림을 보시면 대략 눈치챌 수 있겠지만 복잡합니다.

만약 하나의 센터에 열 대의 로봇이 움직이고 있다면, 이 열대의 로봇에 공통적으로 지시되는 내용도 입력해야 하고, 개별 로봇의 하루 업무도 내려보내야 합니다. 군집 로봇과 개별 로봇의 제어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죠.

학교에서 꼭 지켜야 할 일은 교장선생님이 훈화말씀을 하고, 아이들의 학습 속도에 따른 훈육을 위해서는 선생님이 개별 상담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최적의 업무와 동선 알고리즘을 자동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이런 미들웨어가 가지는 경쟁력입니다.

이런 알고리즘을 잘 짜놓는다면 특정 환경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게 아니라, 다양한 환경을 가진 여러 물류센터에서 빠르게 적용해 써먹을 수 있다고 이찬 대표는 강조합니다.

플로틱은 하드웨어 로봇과 미들웨어를 묶어서 구독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갑작스럽게 물량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시점에는 센터에 로봇을 일시적으로 증원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마치 클라우드 서비스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하드웨어 로봇의 수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센터에서 미리미리 신청하는 부지런함은 필요하겠지만요.

미국 시장 진출은?

“눈도장을 찍고 오겠다”

준비를 마치는대로 미국시장에 진출하겠단 계획을 가진 이들에게 현지 투자자를 만날 기회는 매우 소중하죠.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플로틱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겼습니다. 미국은 물류의 중심인 나라이므로, 이찬 대표는 이번 기회를 허투루 날려버리진 않겠다고 말하는데요.

당장 투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진 못하더라도, 현지에 플로틱이 진출했을 때 “아, 거기 기술 좋은 곳”이라는 기억을 불러올 수 있을 정도로 임팩트를 주고 오겠다는 이야깁니다. 이찬 대표는 그 전까지 “한국에서 레퍼런스를 쌓아 힘을 기르겠다”고 말하는데요.

그 일환이 현재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진행하는 테스트 협업입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주관하는 ‘B.Startup 오픈이노베이션 챌린지 2023’에 최종 선정되면서 진행하는 개념증명(POC) 프로젝트인데요. 실증사업은 고양에 위치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icro Fulfillment Center, MFC)에서 진행됩니다. 도심형 물류시설의 특징은 배송을 빨리 할 수 있는 대신 공간이 좁기 때문에 효율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롯데와 플로틱은 이번에 MFC 특성에 최적화된 물류로봇 솔루션을 구축하겠단 목표를 같이 잡았죠.

이찬 대표는 이번 실증사업에서 플로틱의 로봇 솔루션이 제 역할을 한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면 계획하는 미국 진출에 힘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니콘으로 인정받은 물류 로봇 스타트업 로커서 로보틱스가 현장을 누비고 있는데요. 이들이 로봇 솔루션의 가치를 인정받아 시장을 넓혀 놓고 있으므로, 한국에서의 좋은 레퍼런스를 가진 팀이라면 후발주자라도 충분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거죠.

이찬 대표는 물류에서 로봇의 역할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물류 입출고의 일정부분을 담당하는 서비스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어떻습니까, 여러분. 로봇이 물류센터에서 사람의 동료가 잘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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