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분석] 멈출 수 없는 ‘확률 뽑기의 맛’
2023년 상반기 국내 게임 기업들이 선택한 승부수는 ‘리니지라이크’였습니다. 다를까 싶은 게임도 있었으나, 큰 틀에선 변화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리니지라이크는 ‘리니지를 닮았다’는 뜻으로 고강도 확률 뽑기 수익모델(BM)을 갖춘 게임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리니지 시리즈가 BM의 교본과도 같은 입지를 다졌네요. 이 같은 확률 뽑기 BM을 ‘페이투윈(Pay to Win, P2W)’이라고도 합니다. P2W는 돈으로 승리를 쟁취하거나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게임 콘텐츠 구조를 말하는데요. 이용자에게 게임 내 스펙을 판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확률 뽑기는 세계 4위 규모의 한국 게임산업을 일군 획기적 BM으로 출발했으나, 최근 수년간 비판이 잇따르고 있네요.
게임 패키지가 오히려 싸다?
확률형 아이템은 쉽게 말해 뽑기 아이템입니다. 10% 뽑기 확률이라면, 뽑을 때마다 10%가 적용됩니다. 운이 없다면 매번 90% 실패 구간에 포함될 수 있고요. 언젠가 뽑기 상품이 바닥을 드러내는 오락실 문구점 오프라인 뽑기와는 다릅니다.
보통 게임 내 10개 캐릭터를 뽑는데 3만원대인데요, 운이 좋으면 높은 등급 캐릭터를 한번 만에 뽑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경우는 잘 없죠. 고등급 캐릭터에 욕심을 내다가 수십만원이 들기도 합니다. 뽑기 실패가 지속돼 일정 뽑기 횟수나 액수에 다다르면, 보상을 주는 이른바 천장 시스템이 있는데요. 물론 천장이 없는 게임도 있습니다. 그 경우엔 수백, 수천만원을 들여도 원하는 캐릭터를 뽑지 못하거나 보상 없이 돈과 재화가 증발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패키지게임 가격이 올라 일반판이 10만원을 넘봐도, 확률형 아이템에 들이는 돈 대비해선 ‘오히려 싸다’라는 평가가 나오네요. 대규모 서버를 돌리는 운영비를 고려해 패키지와 부분유료(무료 서비스+유료 아이템 판매) 게임 간 직접 비교는 어렵다지만, 이용자들이 비판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뽑기 품목은 캐릭터뿐 아니라 무기, 방어구, 의류, 장신구, 펫(보조캐릭터) 등 다양합니다. 수시로 이벤트를 진행해 한정 뽑기 상품도 팔고요. 뽑기 외에 강화(인챈트)도 있습니다. 무기 등 강화도 사실 뽑기인데요. 이게 엄청난 매출을 일으키는 BM입니다. 더 강한 전투력을 원해서 무기 등 강화 수치를 높여나갈수록, 다음 단계 성공(뽑기) 확률은 낮아집니다. 강화 실패 시 강화 재료와 함께 기존 무기도 증발하는 경우가 있고요. 유튜브를 보면 게임에 수백, 수천, 심지어 수억을 들였다는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 같은 초고액 결제는 ‘극소수 이용자 생태계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게임사들이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에 사실상 돈을 지원해 일반 대중에 뽑기를 장려하는듯한 마케팅 모델을 취해 논란이 된 사례를 보면, 그들만의 리그로 모는 것은 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확률 뽑기 BM은 국내 게임산업을 이루는 핵심 축입니다.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모바일게임 매출액은 12조1483억원, PC게임 매출은 5조6373억원인데요. 상당 비중이 확률 뽑기 아이템·강화 매출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가면 뽑기 BM이 절대적 비중이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임으로 이 정도 거대 산업을 일군 우리 기업이 참 대단하다고 봅니다만, 최근 수년간 확률 뽑기 BM에 한참 매몰돼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P2W 모델을 피하고 서구권까지 겨냥한 모험적 시도를 하겠다는 목소리는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네요.
게임 전문가들도 ‘이제 바뀌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2월 21일 한국게임미디어협회 주최로 숭실대학교 전산관에서 열린 게임시장 전망 신년토론회를 통해 확률 뽑기 아이템에 대한 의견이 분출했습니다. 그동안 게임 전문가 토론회에선 점잖은 얘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당시 토론회는 달랐습니다.
<참고기사: [게임 신년토론②] ‘확률형 수익모델’ 공방…변해야 한목소리>
첫 발제자인 김윤명 기율특허 연구위원(경희대 겸직교수, 법학박사)이 테이프를 끊자, 확률형 뽑기 아이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기간 구독제와 배틀패스(유료 패스 구매 시 추가 보상) 도입 등 기존 BM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차 제기됐네요.
김윤명 교수는 최근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연구노트를 공유해왔는데요. 논문 준비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구 내용 중엔 ‘바다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등 대단히 강성 의견도 있어 전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법 개정법상 확률표시 의무화는 소비자를 위한 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비자 보호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등 지적한 부분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통화에서 “게임법 개정안엔 소비자 보호가 전혀 없는 구조”라며 “확률형 아이템 이벤트는 단타로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아, 규제도 안 된다. 법의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게임법 재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소비자가 바뀐다지만…그럼 기업은?
전문가들은 게임 소비자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뽑기 BM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는 점을 들어, 산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변화의 동인이 소비자라는 것인데요. 숨은 전제가 있습니다. 업계 스스로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 것인데요.
주요 게임 기업의 전략 타이틀은 매출 확보가 지상과제입니다. 기업 생리상 돈은 더 벌어야 하고, 그중 접근이 쉬운 매출 확보 해법이 바로 리니지라이크인데요. 경영진이 작심하거나 정말 뛰어난 개발자가 출현하지 않는 이상, 기업 스스로 멈출 수가 없으리라 봅니다.
두 해전부터 게임 이용자들이 외부에 불만을 표출하고 트럭 시위를 벌여 조금씩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제 기업이 나서서 변화를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소비자 보호 관점이라면 건설적인 법적 규제 마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프랜차이즈를 보면 소비자가 수만원, 많게는 수십만원을 쓰면 멤버십 등급이 올라가고 혜택이 달라집니다. 백화점 VVIP가 될 만한 돈을 써도, 게임 서비스에선 그런 제도가 없다시피한데요. 오히려 중국 기업들이 돈을 쓴 만큼, VIP 혜택을 주는 모델을 만들어 일부 차용한 사례가 있네요.
게임 아이템은 수천만원을 써도 눈에 보이는 현물이 아니라 여러모로 소비자에게 불리한 지점이 있는데요. 소유권이 게임사에 있다 보니, 게임사가 수시로 쥐락펴락하는 게임 내 경제로 인한 피해 여부를 따지기도 애매하고요.
국내에서만 10조원이 넘어갈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일궜다면, 이제 이용자 케어에 더욱 신경 쓰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돈 쓴 것 대비해 소비자 혜택은 물론 보호조차 미비하다는 점은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대호 기자>ldhdd@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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