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도체 기본재료 실리콘 웨이퍼, 전고체 배터리에도 사용된다?
보통 ‘실리콘 웨이퍼’라고 하면 반도체 기판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는 규소 단결정(원자가 같은 규칙을 가지며 배열된 상태)으로 이뤄진 기둥(잉곳)을 썰어 만든 원판을 말한다. 여기에 화학 처리를 하고 빛을 쏴서 회로를 새기면 우리가 아는 반도체가 된다.
웨이퍼의 쓰임새는 이뿐만 아니다. 반도체 기판 외에도 배터리, 그 중에서도 전고체 배터리 음극재 소재로도 사용될 수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흑연 음극재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주목 받는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액체 전해질 배터리에 비해 안전성과 에너지 용량이 높아 ‘꿈의 배터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꿈의 배터리에 실리콘을 더하면 더 완벽에 가까운 배터리가 되지 않을까. 임종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나익천 박사과정 연구원은 실리콘 웨이퍼를 전고체 배터리 전극으로 구현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전고체 배터리 용량은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2~3배 이상 높이면서 상온에서 100회 이상 안정적인 충·방전에 성공하며 안정적으로 구동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국제 학술지 ‘ACS 에너지 레터스’에 실렸다.
임종우 교수는 이차전지 분야 중에서도 전극 재료의 전기화학 반응과 제어 방안 등을 연구하고 있다. 배터리 내부와 각 전극 소재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화학반응 전반이 그의 연구 범위다. 배터리에 적합한 더 좋은 소재나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하는 임종우 교수를 만나 실리콘 웨이퍼 전극의 전고체 배터리 적용 연구와 추후 기대감에 대해 들어봤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실리콘 웨이퍼가 배터리 전극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니 새롭게 다가온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나?
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 기판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실리콘 단결정 판을 통칭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실리콘 웨이퍼를 배터리 음극재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는 이미 20년 전에 한 차례 진행됐다. 음극재 주원료로 사용되는 흑연에 비해 실리콘의 에너지 용량이 더 높은데, 단위 부피당 더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실리콘 입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 조건만 놓고 보면 실리콘 웨이퍼는 오로지 실리콘만으로 이뤄진 큰 덩어리라 에너지 용량을 높이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다.
하지만 실리콘 웨이퍼 전극은 액체 전해질과 만나는 계면(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맞대고 있는 경계면)에서 발생하는 부반응 때문에 그간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물질이든 상이한 물질이 만나면 반응이 발생하는데, 실리콘 웨이퍼를 사용하면 전해질과 만나면서 표면부터 점차 부서지게 된다. 따라서 배터리 업계는 계면에서 발생하는 부반응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리콘을 파우더나 입자 형태로 만든 뒤, 이를 압착하는 형태로 음극재를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전해질이 액체에서 고체로 바뀌면 그 문제가 해결된다. 액체는 흐르는 성질이 있고 고체는 단단하게 형태를 고정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고체 전해질은 실리콘 웨이퍼 전극을 물리적으로 잡아 줄 수 있다. 따라서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에서는 실리콘 웨이퍼 전극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연구를 진행했다.
이번에 진행한 연구는 어떤 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나?
전해질과 전극의 특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앞서 고체 전해질에서는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가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체 전해질에 적용할 때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계면 들뜸 현상이다. 배터리 내에서 에너지가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해질과 전극이 밀착해 있어야 한다. 리튬이온은 각 전극에 담겨 있어 에너지를 담당하는데, 이들은 전해질을 통로 삼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면 들뜸 현상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마치 물에 빠진 물체가 젖듯, 액체 전해질은 전극과 자연스럽게 밀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고체는 다르다. 고체 전해질에서는 전극과 한 치의 오차 없이 밀착돼야 리튬이온이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에 리튬이온이 불균형하게 들어가면 특정 부분만 팽창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계면이 들뜨게 되고, 리튬이온은 정상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격자는 틀어지고 리튬은 제대로 확산하지 못해 결국 불량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연구실에서는 실리콘 웨이퍼 계면에 요철을 만들고, 이를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고체 전해질에 꽂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웨이퍼를 습식 식각해 표면 거칠기를 조절해 웨이퍼와 고체 전해질 간 접촉력을 강화했다. 이렇게 되면 실리콘 웨이퍼 계면과 전해질이 꽉 물리게 돼 리튬이온은 웨이퍼 전반에 고르게 확산된다. 특정 부분만 불균형하게 부푸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리튬이 확산되는 방향이 제각각이면 마찬가지로 또 불균형이 일어나지 않나.
리튬이온이 하단으로만 확산되게끔 유도했다. 통상 실리콘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격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어떤 방향으로 자르냐에 따라 리튬이온의 확산의 방향이 달라진다. 구조에 따라 수평, 수직, 심지어 대각선으로 리튬이온이 확산할 수도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 사용한 실리콘 웨이퍼는 리튬이 아래 방향으로만 확산할 수 있도록 자른 것이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만 리튬이온이 확산되면 팽창 문제를 관리하는 데 좀 더 수월해진다.
실리콘 음극재 팽창 문제는 지금도 해결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지금 그 기술을 도입할 수는 없는 건가.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이유는 실리콘 입자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인 웨이퍼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리콘 웨이퍼는 단결정으로 구성돼 있어, 모두 같은 방향의 격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사용되는 실리콘 음극재 대부분은 파우더 혹은 입자 형태로 덩어리를 쪼갠 후 압착시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결정 방향성이 입자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한 방향으로 맞추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실리콘 음극재의 팽창을 특정 방향으로만 유도할 수 없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는 고체 전해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전고체 배터리에서만 가능한 기술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도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있다. 이들은 대부분 파우더나 입자 형태의 실리콘을 기반으로 전극을 만드는데, 추후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확대되면 이들의 경쟁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볼 수도 있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에 딱 맞는지는 음극재는 업계와 학계가 다 같이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 양극재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처럼, 여러 접근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 기술이 더 확대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추가로 개선돼야 할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실리콘 웨이퍼가 고체 전해질에 최적으로 잘 맞물릴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웨이퍼 표면을 어떤 모양으로 가공해야 전해질과 딱 맞아 떨어질 지 추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극과 전해질에 가해지는 압력을 완화해야 한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실리콘은 매우 단단하다. 그만큼 결정 구조에 무리가 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다른 원소와 섞어 실리콘 웨이퍼를 부드럽게 만들면 소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일 수 있다.
전극의 유연성을 늘리기 위한 연구도 필요하다. 배터리 전극은 회전 롤에 감으면서 가공하는 롤투롤 공법을 적용해야 균일한 생산이 가능하다. 롤투롤 공정으로 전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를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 한다. 결국 소재를 부드럽게 만드는 방향의 연구가 대부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고체 배터리 시스템 전반에서 일어나는 전기 화학 반응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정말 이해하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 정부와 이번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에서도 기대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는 이번에 개발한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 기술이 단순 연구에서 끝나지 않고, 상용화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더 저렴하게 실리콘 웨이퍼 음극재를 전고체 배터리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이번에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전고체 산업을 앞당길 수 잇는 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