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2023] 신사업 확대하는 통신업계, 반도체도 다품종 소량화

“이제는 모바일 통신 사업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는 시대다.”

지난해부터 통신 업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야기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세가 줄면서 업계는 신사업 모색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자율주행 등 통신이 접목된 분야라면 어디든 손을 뻗기 시작한 모습이다.

반도체 업계도 마찬가지다. 범용 반도체 시장 확대에 주력하던 기업들은 신기술의 효과적인 구현에 특화된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통신칩 업체가 모바일을 넘어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에 적용할 기술을 공개하거나, 반도체 설계(팹리스) 스타트업이 통신사와 긴밀히 협업하며 신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변화는 2일(현지시간)까지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도 확인됐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자율주행과 가상현실(XR) 관련 솔루션이다. 글로벌 통신 부품업체 퀄컴은 이와 관련한 솔루션을 대거 공개했다. 지난 MWC 2022부터 퀄컴은 XR 부문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자동차 산업에 주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왔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던 QCT 사업부를 ▲핸드셋 ▲RF(Radio Frequency) ▲IoT ▲자동차 네 부문으로 나눈 것도 전문성을 세분화하기 위함이다.

퀄컴은 자동차에 탑재하는 스냅드래곤 오토 5G 모뎀 무선장비(RF) 2세대를 발표하면서 디지털 섀시 커넥티드카 제품군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해당 부품은 최대 200MHz에 이르는 네트워크 용량을 제공하고 고성능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속도를 높였다는 특징을 가졌다. 여기에 회사는 지상 기지국 통신에 비해 커버리지가 넓은 위성통신을 결합해 더 폭넓은 커넥티드 카를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차 외에도 XR 부문에서의 성과도 공개했다. 퀄컴은 행사에서 스냅드래곤 스페이스 신규 XR 개발자 플랫폼 생태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CMCC, 도이치텔레콤, KDDI, NTT등 통신사와 XR 생태계 확대를 위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통신사와 AI반도체 업계 간 협업도 도드라진다. SKT와 KT는 이번 MWC에서 모바일 통신보다는 신사업에 방점을 뒀다. SKT는 오래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에 활용하는 ‘장기기억’ 기술과 텍스트·사진 및 음성 등 복합적인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 기술을 전시했다.

KT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 ‘디지코(DIGICO)’ 사업을 키우기 위해 싱가포르텔레콤(싱텔)과 협업한다. 전시관도 ▲DX(디지털전환) 플랫폼 ▲DX 영역확장 ▲DX 기술선도 3개의 테마존으로 구성해 로봇, 디지털 금융, 클라우드, AI 서비스 등을 선보였다.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은 앞서 언급한 통신사들과 함께 MWC 2023에 참가했다. SKT의 AI반도체 자회사 사피온(SAPEON)은 SKT 전시부스에서 자사 제품 X220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이미지 화질 개선 기술 ‘슈퍼노바(Supernova)’가 적용된 ‘매직 터치’ 앱을 공개했다.

회사에 따르면 X220은 트랜스포머(문장 속 단어와 어순 간 관계를 추적해 맥락과 의미를 학습하는 신경망) 계열 중에서도 가장 범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버트(BERT) 기반의 자연어 처리에 특화돼 있다.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KT 파빌리온 부스에 자사 가속기 ‘아톰’을 전시했다. 트랜스포머 계열 모델을 지원하는 AI 가속기로 올해 2월 출시됐다. KT는 지난해 7월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에 300억원 규모의 전략 투자를 진행하고 사업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 4월에는 KT의 초거대 AI 서비스 ‘믿음’ 경량화 모델에 아톰이 적용될 예정이다.

리벨리온 아톰 칩(출처=리벨리온)

그간 SKT와 KT의 ICT 인프라 사업은 대부분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기반으로 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AI반도체 시장점유율은 97%다.

하지만 GPU는 애초에 AI 알고리즘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도체가 아니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할 때 전력 소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든다. 대체재가 없어 AI 서비스 업체는 GPU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업계에서는 더 효율적인 대규모 AI 처리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었다. 국내 통신사가 AI반도체 확보에 팔을 걷어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이번 MWC에 비친 청사진에서 볼 수 있듯, 통신 업계의 신사업 확대에 발맞춰 더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가 필요해질 전망이다. 자연스레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중요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은 1%에 그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전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는 메모리 시장의 약 2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시장이 메모리에 편중된 터라 이 같은 성장세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신 업계의 신사업이 제대로 속도를 붙이려면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 또한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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