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불황에 투자 줄인다던 TSMC “그래도 미국엔 한다”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가 애리조나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에 35억달러(약 4조5000억원)의 추가 투자를 단행하기로 했다. 당장은 반도체 불황이라도, 장기적으로는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미세 공정 생산라인을 다수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서다.

영국 IT매체 더 레지스터(The Register)는 14일(현지시각) “TSMC가 이번 주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에 추가 투자를 단행하기로 승인했다”며 “이번 계획은 회사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기존 대비 3배 늘어난 400억달러(약 5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지 몇 달 만에 나온 소식으로, 미국 시설 확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1월 TSMC 측은 2022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5나노 이하의 첨단 반도체 수요 견조세로 해당 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며 “하지만 세계 반도체 불황으로 주요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의 제품 생산 주문량이 줄어들어 설비 투자 비용을 10%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기조는 이어가기로 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2024년에는 4나노 공정의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2026년부터는 3나노 생산라인까지 해당 지역에 배치하겠다는 것이 TSMC의 계획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SMC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지역에 미세 공정 투자를 적극적으로 단행하지 않았다. 자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부품 공급망 안정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산업 내 상존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TSMC는 해외 지역에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하기 시작했다.

TMSC가 해외에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늘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 초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침공으로 벌어질 대만 방어전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팹리스 업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팹리스 시장점유율은 68%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주요 팹리스 기업은 미국에 위치해 있는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게 된다면 이들은 TSMC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실제로 발생했을 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국 내에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산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이 TSMC에 지속해서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대만 내 용수⋅전력, 인력 등 자원 부족 현상도 TSMC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에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인프라 확보가 필요한데, 대만은 용수⋅전력 수급 및 노동력, 토지 부족 등이 현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지난 해 반도체 세제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칩스법(CHIPS Acts)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염두에 두고 TSMC도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TSMC는 올해 하반기부터 애플을 포함한 주요 팹리스 고객사의 위탁생산 주문이 확대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미세 공정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하반기에 반도체 업황이 회복할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이 같은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반도체 기업은 자사 2022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상반기에는 일시적 생산량 감소와 재고 소진에 주력해 그 수준을 정상화할 것”이라며 “하반기부터 업황이 반등할 것을 기대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더 레지스터는 “3나노, 5나노 생산이 증가한다면 TSMC의 실적은 지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압도적인 캐펙스(CAPEX, 자본적 지출) 투입으로 장기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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