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사라진 콘텐츠 시장, ‘경쟁’을 위해 논해야 할 것들

“IP가 제일 중요하다”

콘텐츠 회사로 취재를 가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하나의 소스(one source)로 여러 유형의 콘텐츠(Multi Use)를 만들 수 있으니 웹소설로, 웹툰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다방면 활용할 수 있는 IP를 발굴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요즘 디지털 콘텐츠 활황을 이끄는 곳은 플랫폼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채널, 음악을 듣는 스트리밍 사이트,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플랫폼까지, 디지털 콘텐츠 마켓이 활짝 열린 상황이다. 플랫폼은 ‘원 소스 멀티유즈’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단위도 다르게 만들었다.

시장이 커지다보니 새로운 고민도 생긴다. 콘텐츠 시장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이제는 국내외 빅테크가 됐다는 점이다. 글로벌로 경쟁이 치열해졌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있다.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서 IP 독점이나 플랫폼 내 자사 콘텐츠 우대라는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플랫폼이 생기면서 산업이 커졌지만, 이제는 플랫폼이 산업의 황금알을 독식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다고 이들 플랫폼에 더 이상 몸집을 키우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정부의 규제가 또 한 번,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란 문제제기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인터넷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열렸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한국벤처창업학회가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공동개최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변화에 따른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 영향” 토론회다. 토론회는 콘텐츠 생태계의 구성원 중, 플랫폼 입장에서의 담론이 주로 다뤄졌다.

화두 중 하나는 콘텐츠 산업의 경쟁에 이제는 국경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발제를 맡은 상명대학교 최영근 교수는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국내 콘텐츠 관련 기업들이 해외 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디지털콘텐츠플랫폼은 IP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한국벤처창업학회가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공동개최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변화에 따른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 영향”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제공=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교수는 최근의 상황을 “디지털 콘텐츠의 D2C화”라고 표현했다. D2C는 ‘다이렉트 투 컨수머’의 약자로, 자사몰에서 직접 상품을 파는 형태를 말한다. 예전에는 대형 마트에 입점하지 않으면 소비자를 만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좋은 상품과 고객 데이터가 있으면 얼마든지 자사몰을 열 수 있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고객 데이터를 갖고 있고 상품을 개인화 할 수 있으며 좋은 이용자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역시나 빅테크다.

문제는, 빅테크 주도의 플랫폼들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 빅테크들이 인수합병(M&A)나 투자를 통해 IP 회사를 자사화하고 있고, 플랫폼 내에서도 자사 콘텐츠를 우대하는 상황이 이뤄질 수 있다.

최 교수는 “콘텐츠플랫폼의 경쟁 구도, 멀티호밍으로 인한 시장 지배 불가, 독과점이 어려운 경쟁 시장 내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자사 우대의 배제적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디지털콘텐츠가 성장하는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면, 독과점에 대한 정의를 기존의 산업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인수합병을 통해서 데이터를 확보, 그 결과에 맞춰 인기있는 IP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IP를 확보하지 못하는 곳은 그만큼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

최 교수는 “디지털콘텐츠플랫폼이 M&A를 통해 자사화를 하는 이유는 소비자의 요구와 니즈 대응, 데이터 기반의 기획, 행태 데이터 분석과 내부 전문가의 직관과 결합하여 창작자들을 인큐베이팅하는 ‘데이터 기반 콘텐츠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내 플랫폼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기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해외 콘텐츠 플랫폼과의 국내외 시장 경쟁을 위해 국내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인수합병(M&A)를 통하여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창작 생태계의 선진화를 위한 정부 지원 정책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한양대학교 강형구 교수는 디지털콘텐츠 플랫폼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강 교수는 “음원, 스토리, 영상 산업의 산업 연관 효과 분석 결과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생산유발효과는 119조(GDP 5%), 고용유발효과는 69만 명, 수출 효과는 3조 가량 된다”라고 밝히며 디지털콘텐츠 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여기에 더해 해당 분석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무시한 보수적 예측이므로 콘텐츠 산업이 문화 전파, 외교/교류 촉진, 브랜딩 등에 기여하는 소프트파워, Web/메타버스/게임 등 산업과의 직접적 시너지 등을 고려한다면 디지털콘텐츠의 영향력은 천문학적 수치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진정한 디지털콘텐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이 ‘플랫폼의 플랫폼’, 즉 플랫폼이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배출하여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이 필요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리더십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인터넷기업협회 조영기 사무국장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의 인수합병과 국내 콘텐츠 기업의 인수합병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잣대에 대해서 지적하며 “글로벌 영상 플랫폼이 한국에서도 나와야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는 있었으나 실질적인 노력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우수한 크리에이터와 제작사들을 국내에 있는 기업들에서 산하 자회사 내지는 산하 크리에이터로 영입하고 있는 멀티스튜디오 체제로 제작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생존방식의 하나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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