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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중국과 RISC-V, 반도체 굴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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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죠. 올해 10월에는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장비를 납품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중국 반도체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추가로 올려버렸습니다. 아예 숨통을 끊어버리겠다는 목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WTO에 미국의 경제 제재가 부당하다며 제소한 상황이고요.

미국의 중국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금의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보다 더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트럼프는 단순히 중국의 몇 개 업체만 견제했지만, 바이든은 아예 중국의 첨단 산업을 막아버리겠다는 기조의 정책을 펼치고 있거든요. 칩스법, IRA, 칩4동맹 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베이스를 깔고 있죠. 트럼프는 지극히 경제적 관점으로 중국을 대했지만, 바이든은 사회적 이념으로 중국을 대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이후에도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

중국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중국은 2014년 반도체 자립을 하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죠. 2025년까지 반도체 자립률 70%를 달성한다는 것이 원래 그들의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약간 그 결이 바뀌었습니다. 성장보다는 생존 쪽으로 말이죠. 미국이 전방위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니, 중국은 반강제로 자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 등 가릴 것 없이 반도체 산업 전반에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가 시스템반도체 설계입니다. 미국의 제재로 미세 공정에 한계가 있다 보니, 중국은 설계를 더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은 RISC-V라는 아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 리스크 브이라고 안읽고, 리스크 파이브라고 읽습니다. RISC-V는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해주는 일종의 약속 체계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세서는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입력하는 명령어에 따라 데이터를 처리하고 작업을 진행하죠. 그런데 프로세서가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명령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언어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죠. 이 언어 체계가 바로 명령어셋 아키텍처입니다. 개발자는 이 체계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하고 하드웨어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명령어의 종류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길고 복잡한 형태의 CISC와 짧고 간단한 형태의 RISC로 말이죠. CISC 는 인텔과 AMD가 제공하는 x86이 대표적인데요, 명령어가 복잡하다 보니 전력 소모가 크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속도는 느립니다. 하지만 고용량 혹은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할 때 적합하죠.

반면 RISC는 명령어가 짧고 간단하다 보니 전력 소모가 적고 데이터를 빨리 처리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디바이스에 많이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다만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프로세서가 프로그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번 정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RISC 명령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기술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람하고도 소통이 어려운데, 기계하고 소통해야 하는 거니까요. 이 수요를 알고 프로세서 설계도부터 이를 잘 인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지적재산권으로 제공하는 업체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Arm입니다. Arm은 풀네임부터 Advanced RISC Machine입니다. 애초에 RISC 하려고 태어난 기업입니다.

Arm은 1990년 이전부터 RISC 아키텍처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부가적인 툴킷도 함께 제공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Arm은 자체 생태계를 넓혀 왔죠. 지금 Arm을 사용하는 기업을 꼽으면 애플, 퀄컴, 엔비디아, 미디어텍, 심지어 아마존웹서비스 서버용 CPU까지, 거의 자체 프로세서 설계하는 업체라면 다 Arm을 거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제는 성능도 좋아졌어요. 과거에는 그냥 모바일용이다, 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PC나 서버 등 고용량 데이터 처리도 커버할 수 있게 됐죠. 그러다 보니 주요 기업도 돈 주고 Arm 라이선스를 구매해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하고 판단한 것이죠.

중국도 마찬가지로 반도체 설계 시 Arm으로부터 라이선스를 구매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이 Arm을 두고 직접적으로 중국을 제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아직은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언제든 Arm을 내려놓아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따라서 중국은 오픈소스인 RISC-V를 사용하기 위한 기술 개발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RISC-V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Arm이 생태계를 많이 넓혀 놨는데, 현재 Arm이 라이선스 비용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거든요. 단적인 예로 Arm은 지난 8월 퀄컴과 자회사 누비아를 대상으로 라이선스 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쉽게 말하면 “누비아 라이선스 사용하려면 퀄컴은 라이선스 비용 더 내야한다”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원래는 퀄컴이 Arm보다 좀 더 갑의 위치에 있었는데요, 이제는 그 생태계가 워낙 넓다 보니  Arm의 콧대가 높아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Arm이 라이선스 비용을 올려 받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용을 올리는 것이 단순히 퀄컴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애플, 엔비디아, 미디어텍 등 여러 기업이 Arm 생태계에 물려 있거든요. 이들도 다 비용을 올려받게 된다는 건데, 더 많은 지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니 해당 기업은 대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중국 외 다른 기업도 RISC-V를 주목하고 있는 겁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무리 중국이 RISC-V로 반도체 자립을 시도하겠다고 해도, 원하는 수준의 성능까지 도달하기에는 어렵다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이를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기술 개발까지의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반도체 설계를 위해서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시장을 미국이 꽉 잡고 있습니다.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봐야죠. 미국으로부터 해당 소프트웨어를 공급받아야 하는 건데, 미국이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타격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겠죠.

물론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산업이 Arm 아키텍처, RISC-V, x86 이 세 아키텍처가 공존하는 구조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엔비디아는 Arm 라이선스를 20년 간 확보했고, 애플은 Arm을 설립하는 데 일조했거든요. 이 기업은 Arm을 포기하지 않겠죠. 하지만 RISC-V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주요 팹리스가 실적발표에서 RISC-V 관련 내용을 자주 언급하고 있거든요. Arm 측에서도 RISC-V가 자사 생태계에 위협이 된다고 언급한 적도 있고요. 과연 중국도 그럴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아무래도 RISC-V가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네요.

영상제작_ 바이라인네트워크 <임현묵 PD><최미경 PD>hyunm8912@byline.network
대본_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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