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vs“없다”

드라마에서도 현실화 되지 못한 일이 과연 가능할까.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속 재벌그룹인 순양그룹은 순양금융지주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금산분리라는 현행 법에 부딪혀 무산된다. 순양그룹 사위이자 정치인인 최창제도 표심을 의식하며 금산분리 완화를 강하게 반대한다. 

현실도 드라마처럼 기업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다. 이를 ‘금산분리’라고 하는데, 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 결합을 제한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국내에선 금산분리의 하위원칙인 ‘은산분리’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에 제한을 두는 제도로, 은행법상 산업자본은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 4% 이상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최대 10%까지 보유할 수도 있다. 

은산분리가 시행된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재벌 그룹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즉, 재벌 그룹이 은행의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은행의 자금은 고객의 돈이다. 고객의 예금액을 바탕으로 대출이 이뤄지고 여기에 대한 이자를 받으며 은행은 먹고 산다. 그런데, 재벌 그룹이 은행을 갖게 되면 은행 돈, 즉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굴리며 사업을 확장하거나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위험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은행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과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지금까지 은산분리가 시행되어 왔다. 

다만, 은산분리에 대한 입장차는 오랜 시간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은산분리의 은행 지분 한도가 수십 년 간 수차례 바뀐 이유다. 1980년대에는 8%, 1994년에는 4%, 2000년대에는 9%, 2000년대 후반에는 지금의 4%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은행 사금고화를 막겠다는 전제가 깔려있지만, 어느 정도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주장과 대립되어 왔다. 

이런 은산분리의 강한 기조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약 4년 전이다. 지난 2018년 9월 20일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인터넷전문은행설립및운영에관한특례법)이 통과되면서 지금의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가 문을 열었다. 당시 핀테크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은행에도 혁신 금융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의지를 바탕으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이 제정, 통과했다.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은 은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했다. IT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의결권 있는 주식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대주주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은 대주주에게 대출을 할 수 없고 대주주가 발행한 주식을 취득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인터넷은행이 생기면서 금산분리(혹은 은산분리) 완화론은 더욱 힘이 실렸다. 금산분리 완화론자들은 금산분리가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며, 기존에 제기된 사금고화와 공정경쟁저해 등의 문제점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게다가 핀테크, 빅테크 등 IT기반의 기업은 금융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반면, 은행 등 금융사는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비금융 영역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금산분리 규제가 오히려 IT기업과의 공정경쟁을 저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금산분리 완화 반대론자들은 법 시행 취지대로 기업의 사금고화를 강력하게 우려한다. 이렇듯 금산분리 완화 찬반 주장은 오랜 시간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그런데 이번 금융 당국은 금산분리 완화론자의 팔을 들어줬다.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1월 열린 제4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금산분리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금융산업이 디지털화 등 환경변화에 대응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부수업무와 자회사 출자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사가 할 수 있는 비금융 업무의 범위를 법령에 반영하는 방식을 고민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금융위가 공개한 내용으로 봤을 때 은행에게 비금융 신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행법에 따라 은행은 비금융 업무를 할 수 없는데, 신한은행의 땡겨요(배달앱), KB국민은행의 리브엠(알뜰폰) 사업은 금융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영위하고 있다. 다만, 2년마다 한 번씩 사업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데 규제 개선을 통해 앞으로 당국의 승인이 없더라도 은행이 비금융 사업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열어주겠다는 취지로 해석이 된다. 결국 핀테크, 빅테크와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은행의 비금융 사업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의도다. 

아울러 금산분리 완화 반대론자들의 가장 큰 우려인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지분에 대해 변화가 생길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가 은행들에게 비금융 신사업만 열어줄지, 아니면 산업자본이 은행에 깊이 침투할 수 있도록 허용할지 모든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뚜껑은 당장 몇 달 뒤 열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초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구체적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홍하나 기자>0626hhn@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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