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속 홀로 호황 누린 배터리, 2023년에는 어떨까

2022년은 사업 분야를 불문하고 세계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인플레이션,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제 전반이 얼어붙었다. 대표적으로 호황이 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던 반도체 시장조차도 불황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배터리 시장만큼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76% 성장한 202GWh를 기록했다. 또한 원자재 수급난에도 28개월째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친환경 정책을 마련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성장한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 중 국내 기업은 해외 시장, 특히 미국 시장 공략에 팔을 걷어 붙인 한 해를 보냈다. 우선 미국에 이미 공장을 확보해 놨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공장을 증설하고 원재료 공급망 안정화에 팔을 걷어 붙였다. 여기에 삼성SDI도 미국 진출 청사진을 밝히면서 배터리3사 모두 미국에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됐다.

미국에서 기회 잡은 국내 배터리 3사

먼저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자체 원통형 배터리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캐나다에는 스텔란티스와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후 8월에는 일본 완성차 업체 혼다와 합작법인 설립 체결식을 진행했다.

SK온도 지난 7월 완성차 업체 포드와 블루오벌SK(BlueOval SK) 합작법인을 공식 출범했다. 당시 SK온은 2025년부터 미국 테네시, 켄터키주 3개 공장에서 배터리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2월6일에는 켄터키주 글렌데일에 위치한 합작공장 기공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SK온 측은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 공장을 확보해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삼성SDI도 미국 진출 계획을 가시화했다. 삼성SDI는 지난 해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는데, 올해 5월 합작공장 부지를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장은 2025년 1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배터리 셀과 모듈을 생산할 계획이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먼저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 건설에 집중하고, 해당 프로젝트 완료 후 미국 내 생산량 확대 기회를 물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은 이후에도 미국에서 시장 확대 기회를 더욱 물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정부가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 정책을 내놔 배터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가, 중국 기업의 진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만 해도 위축되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친환경 정책에 대해 “불필요하고 쓸데없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다른 중국⋅유럽 등지에 비해 전기차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간 발전하지 못했던 전기차 시장 활성화에 속도가 붙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시장은 블루오션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은 지난 8월 현지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공포했다. 해당 법안에는 전기차 구매 시 신차는 최대7500달러(약 984만원), 중고차는 최대 4000달러(약 525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다만 세부조항에는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며, 미국에서 조립과 생산 과정을 거친 전기차여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중국 기업은 애초에 진출이 불가능하고, 국내 기업은 미국에 생산라인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기업은 이미 미국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었고, IRA 법안을 충족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간 원재료를 중국에서 주로 확보했기 때문에 새로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 투자는 필요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입을 모아 “이미 코로나19 이후부터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왔고, 이후에도 공급망 다변화는 해야 한다”며 “우려했던 만큼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이 배터리 산업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23년에도 배터리는 성장할 듯, 장비⋅폐배터리 수혜 보나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불어 닥친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여파로 배터리 수요 둔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경기 침체 자체가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가운데, 각국의 분쟁이 언제 종식될 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수요 둔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각 기업도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변화하고, 관련 시장이 확대된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전기차 비중이 10%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며 “내연차에서 전기차로의 변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고, 자체 계산해본 결과 전 세계 전기차 시장 성장의 기울기가 지금의 예상보다 가팔라질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각국 정부는 탕소 중립을 위한 친환경차 전환을 위한 방안을 찾고 있고, 보조금 지원과 충전소 설비 투자 등의 정책도 마련하는 중이다.

배터리 시장이 커지면 그만큼 생산라인이 늘어나게 된다. 박준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요 배터리 기업의 생산라인 증설 규모 계획은 향후 전기차 수요 성장세를 감안할 때 오히려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따라서 각 기업은 배터리 셀뿐만 아니라 소재⋅부품 등 다방면으로 추가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생산라인이 늘어나면 이에 들어가는 장비 수요도 늘어날 텐데, 그 과정에서 배터리 장비사의 호실적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트렌드로는 폐배터리 재활용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페배터리가 또 하나의 환경오염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는 데다가,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원재료 공급망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아직 구체적인 폐배터리 재활용 정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하지만 유럽은 현재 재활용 원재료 활용 비율 의무화를 부여한 상황이고, 이 같은 정책은 다른 국가도 추후 도입할 수 있다. 현재 유럽에서 생산하는 배터리에는 50% 가량의 폐배터리 재활용 원재료가 사용돼야 하며, 2030년에는 그 비중이 70%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 기업의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이 2023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라며 “전기차 배터리에서 폐배터리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5~10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보급 속도에 맞춰 점차 그 산업 규모도 확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SNE리서치도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5년부터 연평균 33% 성장해 2040년 574억달러(약 72조8700억원)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1위 배터리 제공업체 CATL

배터리 시장 선두 달리는 한⋅중, 시장 구도 어떻게 되나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배터리 시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추후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유럽 시장을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 기업이 모두 손을 뻗었기 때문에, 먼저 누가 자리를 잡고 시장을 선점하냐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 시장을 놓고 봤을 때에는 양국 간 경쟁 구도가 격화될 가능성은 낮다. 국내 기업은 비교적 비싸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은 3원계 배터리에, 중국 기업은 성능은 낮지만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략하는 부문이 다른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배터리 시장 전문가는 “LFP 배터리의 핵심은 가격 경쟁력인데, 다른 국가가 해당 사업에 뛰어들기에는 중국이 원재료를 자체 공급해 원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무리가 있다”며 “따라서 국내 기업은 기술 중심의 고성능 배터리에 주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당 전문가는 이어서 “결국 배터리 시장은 저가형과 프리미엄 라인의 3원계 하이엔드형, 투 트랙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면서 “중국은 저가형 배터리를, 국내 기업은 하이엔드 배터리를 중점적으로 납품하기에 경쟁 관계보다는 사업 영역에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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