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반도체 업계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났습니다. 상반기에는 반도체 수요가 워낙 높다 보니 호황을 넘은 수급난 상황에까지 이르렀죠. 하지만 여러 거시경제(매크로) 불확실성으로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불황에 접어들었습니다. 1년 안에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은 한 해라니, 말만 들어도 혼란스럽습니다.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가지고 업황 그래프를 그려본 후, 분석을 해봤습니다. 여기서 업황 그래프는 연령별로 인생을 곡선으로 나타낸 ‘인생곡선 그래프’의 반도체 산업 버전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50점부터 50점까지, 업계에 얼마나 긍⋅부정적 영향을 미쳤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겨 그려 봤는데요, 그래프 등락폭이 꽤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지난 2022년 세계 경제와 반도체 산업계에 있었던 핵심 이슈를 짚어보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잘 살펴보면 보면 업계에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속 생존이라는 큰 흐름이 있었는데요, 한 번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죠.

엔비디아-Arm 인수 무산에서 시작된 자국중심주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업계에는 작년 반도체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2021년 동안에는 코로나19와 거리두기로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됐고, 이를 이용하기 위한 스마트폰⋅PC 등 디바이스와 더불어 서버데이터센터 수요도 견조했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도 지난 해 내내 호실적을 줄지어 기록했습니다. 이 때에도 일각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빠르게 끝날 수 있다고 전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주요 기업은 긴축보다는 새로운 투자에 더 힘을 쏟는 분위기였습니다.

같은 달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제공업체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 제공업체 Arm 인수 무산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두 기업이 인수 무산 소식을 공식 발표한 시점은 2월 초이지만, 1월 중순부터 인수가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엔비디아 Arm 인수 심사를 담당한 국가가 반독점 우려의 목소리를 낸 데다가, Arm 설계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기업도 반대하고 나섰거든요.

엔비디아와 Arm에게는 아쉬운 소식이었겠지만, 퀄컴, 삼성전자, 미디어텍, 애플 등 Arm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기업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특정 기업이 Arm을 보유하게 되면 해당 기업이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데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고, 결국 설계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안심할 수 있었겠죠.

다만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실패 이후 주요 국가는 반도체 자국중심주의 정책을 마련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다른 국가의 기업이 언제든 자국 내 주요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하나를 빼앗기는 것은 곧 국가 경쟁력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고 인식한 것이죠. 결국 세계 각국 정부의 반도체 기업 지키기 현상은 심화됐습니다.

코로나19에 이은 대형 악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러던 중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해당 전쟁은 21세기에 일어난 첫 유럽국가 간 전쟁이라 그 사실 자체만으로 세계에 큰 충격을 줬죠.


당시 업계 관계자 대부분은 분쟁에 대해 “주요 기업이 코로나19로 위기 상황을 준비해 온 터라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장기화되면 세계 경제에 오는 피해도 만만찮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당시에는 그래도 금방 끝나겠지 라는 분위기가 대중 사이에 만연해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그 분쟁은 이어져 오고 있네요.

두 국가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주변국은 네온, 팔라듐과 같은 반도체 소재뿐만 아니라 곡물 등 식량과 에너지 자원 확보에도 차질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천연가스와 원유 생산량 부문에서 각각 2, 3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재가 러시아에 가해지자,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길을 막는 방식으로 대항했습니다.

곡물 측면에서는 러시아가 지난 10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는 ‘곡물 협정’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식량 가격이 올랐고요. 결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됐습니다.

그래도 2분기까지 주요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양호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거든요. 양사는 실적발표 당시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메모리 가격 하락폭이 낮았고, 데이터센터나 서버용 제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매출 상승세를 보일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불황의 조짐은 보였습니다.

불황의 조짐 1 – 파운드리 가격 인상

첫 번째 신호는 주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의 가격 인상 예고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지난 5월 CNBC 등 외신은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파운드리 주요 기업이 2021년 한 차례 대대적으로 가격을 올린 데 이어, 또 다시 추가 가격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파운드리 가격은 대외비이기 때문에 외부에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기업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분석은 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발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데다가, 또 다른 광물 공급 국가인 중국이 강력한 코로나 방역 정책(제로 코로나)을 펼치면서 공급망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원재료 가격이 올랐습니다. 이는 웨이퍼 가격과 반도체 원가 상승으로도 이어졌고요.

웨이퍼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네온, 크립톤 팔라듐 등 희귀가스 수급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결국 주요 파운드리 기업이 가격을 올린 이유는 원재료 공급난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불황의 조짐 2 – 미국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6월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 목표범위를 0.75~1%에서 1.5~1.75%로 0.75%p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전부터 금리 인상의 조짐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 때 본격적으로 금리를 대폭 올리는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밟게 된 것이죠. 이는 세계 각국이 적어도 빅스텝 이상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결과를 초래했고요.


여기에 제롬 파월(Jerome Hayden Powell) 연준 의장은 이후에도 꾸준히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미국과 주요 국가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세계적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침체되니 소비자는 지갑을 닫았고, 결국 컨슈머 디바이스 스마트폰⋅PC 수요가 하락했습니다. 주요 부품 공급업체의 출하량은 수요에 맞춰 감소했고, 매출에도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같은 달 삼성 파운드리가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를 도입한 3나노 GAA 공정 양산을 최초 시작했다는 좋은 소식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시장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이 더 문제로 대두되긴 했지만 말이죠.

미국의 생존전략 “반도체 생산 주도권 찾겠다”

공급망이 워낙 불안정하니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는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를 거쳐야만 했는데, 그 과정을 줄여 지정학적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지요. 결국 미국은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설립할 시 25%의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등 총 520억달러(약 68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칩스법(CHIPS Acts)을 8월 공포했습니다.

이 칩스법 통과에도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이미 유럽 국가에서는 반도체 지원을 위한 법안을 제정하고 나섰는데, 미국은 정당 간 갈등 때문에 통과가 지연되고 있었거든요. 민주당과 공화당은 칩스법 세부조항에서의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결국 보다 못한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장관이 총대를 매면서 빠르게 통과됐습니다. 지나 레이몬도 장관은 “일단 급한 반도체 조항만 떼서 합의하라”고 밀어 붙였고, 결국 양당은 합의를 마쳐 법안을 최종 공포할 수 있었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은 미국 내 생산라인 증설을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인센티브 제공 대상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인텔, 마이크론 등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기업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받으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됐죠.

다만 국내 기업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칩스법에는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나 기업과 제조 능력을 확대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을 제재한다는 말을 우회한 것이죠. 국내 기업은 2005년부터 지속해서 중국 투자 비중을 늘려 왔기 때문에, 해당 법안 적용 시 수출 측면에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국내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미국은 중국 제재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1 – 애플-중국 갈라놓기

미국의 대중국 제재는 곧바로 진행됐습니다. 먼저 9월에는 미국 정부가 애플을 대상으로 중국과 교역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원래 애플은 중국 메모리업체 양쯔강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메모리를 공급받을 예정이었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애플에 “불장난을 하고 있다(Playing with a fire)”라며 “중국과 관계를 더 진전시키면 전례 없는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습니다. 결국 애플은 중국산 메모리 탑재를 잠정 보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죠.

해당 사안 자체는 국내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국내 메모리⋅디스플레이 업체는 원래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중국 기업이 끼어들면 그만큼 시장점유율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미국이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하면 국내 업체는 경쟁자가 사라지게 됩니다.

한 글로벌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부품을 제공받지 못한다고 해서 애플의 제품 생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제품을 애플에 더 많이 공급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순식간에 겨울로 변해버린 반도체 시장에서는 그나마 따뜻한 소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2 – 수출금지 조치 강화

하지만 미국은 곧이어 10월 대중국 수출 규제 강화에 나섰습니다. 미국 정부는 KLA, 어플라이드마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등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를 대상으로 “대중국 장비 수출승인 심사에는 거부추정(Presumption of Denial) 원칙을 적용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제재 대상인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칩 생산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원칙적으로 거부한다는 겁니다.

다행인 점은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중국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두고 있는 기업에 1년 간 별도 허가 없이 중국 공장에 장비를 들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든 중국 공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같은 달 말 중국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습니다. 그간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미국의 제재에 직접 대항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연임이 확정되면서 한시름 놓은 중국 정부는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조금씩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은 12월12일 미국의 대중국 고성능 반도체 수출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습니다. 공평한 경쟁의 원칙에 위배되며,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어긴다는 이유에서죠. 이에 미국은 이틀 만에 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등재하면서 화답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 반도체 시장 숨통을 끊으려 하고, 중국은 자립시도를 지속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모두와 협업 체제를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을 포기하자니 반도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놓칠 수 없고, 중국을 포기하자니 시장의 큰 부분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니 결국 미국과 손을 잡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긴 합니다만, 그 결과 중국 시장을 잃은 만큼 주요 기업의 단기적인 실적 부진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반등할 수 있을까

결국 하락세를 면치 못한 2022년 반도체 산업. 내년에도 반도체 상황이 밝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가장 큰 문제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문제와 인플레이션이 단시간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등세는 보일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2023년 반도체 시장이 하반기부터 반등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습니다. 가장 큰 성장 모멘텀은 인텔의 서버용 프로세서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입니다.

해당 제품은 서버 성능을 높이고 전력 소모가 낮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준비해 놓았던 차세대 D램 ‘DDR5’와 호환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곧 서버⋅데이터센터 운영자가 에너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해당 프로세서로 교체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DDR5 교체수요도 함께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인텔의 신제품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당장은 반도체 시장이 잠시 위축된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발전에는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데이터는 반도체를 기반으로 처리가 되기 때문이죠. 결국 언젠가는 회복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내년이 될 지는 어느 누구도 확언할 수 없습니다. 언제 또 시장에 변화가 생길 지 모르거든요. 한 글로벌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이나 2024년쯤에는 시장이 회복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면서도 “워낙 시장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2023년 기업이 갖춰야 할 가장 큰 역량은 어떤 변화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연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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