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다른 나라엔 안 팔아” 커지는 반도체 자국 중심주의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본사를 두고 있는 넥스페리아가 영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뉴포트 웨이퍼 팹(NWF) 인수를 취소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넥스페리아는 NWF를 지난 2021년 7월에 인수했는데요. 영국 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지분의 86%를 매각하라고 넥스페리아 측에 요구했습니다. 회사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이고요.

영국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 배경에는 반도체 자국중심주의 정책이 있습니다.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중국 국영회사인 윙테크 테크놀로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사실상 중국 기업이죠. NWF는 영국 내에서 가전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개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21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보의 조처에 대해 현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인데요. 로이터통신은 루스 존스(Ruth Jones)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수 번복으로 넥스페리아 근무자 수백명이 직업을 잃을 수 있다”며 “넥스페리아가 NWF을 소유하려 하는 움직임을 지지한다”는 노동당 측 입장을 전했습니다.

반면 영국 정부는 “넥스페리아의 NWF 인수는 영국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루스 존스 의원은 세부 사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이 발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지난 4월 제정한 국가 안보 및 투자법(NSI)법을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 팹리스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가 공식적으로 불발한 지 2개월 만에 공개했는데요. NSI법은 ▲로봇 ▲AI ▲양자 기술 ▲반도체 등 부문에서 자국 안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기업과 투자자를 면밀히 조사하고 개입할 권한을 국가에 부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영국은 이미 한 차례 Arm을 미국에 빼앗길 뻔한 전적이 있습니다. Arm은 퀄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등 모바일 칩에 자사 아키텍처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반도체 생태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국 규제당국이 자국 내 반도체 기업 보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반도체 자국중심주의 정책은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실례로 지난 2월에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가 독일 웨이퍼 업체 실트로닉을 인수하려 했으나, 독일 정부가 무산시켰죠. 당시 독일 규제당국은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기술 리더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조치라고 추측했습니다.

이미 세계 각국은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의 피인수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각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있죠. 국가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하면, 해당 기업은 피인수 시 더욱 수월하게 국가가 개입할 수 있거든요.

물론 앞서 언급한 루스 존스 노동당 의원의 이야기도 일리는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인수 무산은 곧 인원 감축으로 이어지거든요. 양사의 합병이 무산된 직후, Arm은 영국과 미국에서만 1000명 정도의 인력을 정리 해고하겠다고 밝혔죠.

당시 Arm 측은 “Arm은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전반적인 비즈니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며 “Arm 직원에 유동성을 주는 것도 그 방안 중 하나”라고 답했습니다. 인수합병이라는 것 자체가 큰 규모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한 번의 인수 무산은 회사 내부 인력과 재무 상황에는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넥스페리아의 NWF 인수 무산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NWF는 현재 실리콘카바이드(SiC)를 비롯한 전력 반도체 생산도 담당하고 있는데, 해당 부문은 유럽의 최우선과제이기 때문에 더욱 피인수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엔비디아-⋅Arm이나 글로벌웨이퍼스⋅실트로닉 인수 실패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국가 차원의 압력이 가해지면 기업은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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