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국산화는 왜 필요한 일일까?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 인터뷰

‘휴보’는 우리나라 로봇사에 이정표를 새긴 이름이다. 2004년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에 의해 태어난 휴보는 다섯 손가락 관절을 따로 움직여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고, 시속 1.2㎞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 당시 화제가 됐다. 휴보의 명맥은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잇고 있다. 2011년 카이스트랩에서 분사한 후 휴보와 같은 이족보행 로봇은 물론, 산업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협동로봇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로봇 팔이 커피를 내리고 치킨을 튀기는 모습은 요즘들어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제 할일을 수행하는 로봇을 ‘협동로봇’이라고 부른다. 특히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협동로봇의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로봇만을 위한 전용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어려운 중소 공장에서 협동 로봇을 선호한다는 것이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의 설명이다.

이정호 대표를 최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만났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만든 협동로봇을 내년부터 북미와 독일 등으로 수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자리였다. 이 대표에 따르면 유통망은 이미 구축한 상태. 올해 이 회사의 협동로봇 생산량은 550대 수준이었는데, 해외 판매를 위해 2025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3000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공개했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

협동로봇 기술 내재화는 왜 중요할까

협동로봇 시장이 얼마나 큰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지난 6월, 유진투자증권이 발행한 ‘로봇과 공존하는 세상’ 보고서에 따르면, 협동로봇의 시장 규모는 올해 가을 기준 1조9000억원에서 오는 2030년에는 7조8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하대수로 치면 26만7000여대 수준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양승윤 애널리스트는 “협동 로봇은 안전하고, 조작이 쉽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생산업과 서비스업 현장에서 앞으로 협동로봇을 적용하는 일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협동로봇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주요 매출원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시장은 플레이어가 꽤 있기 때문에 레인보우로보틱스가 선택한 경쟁력은 부품 내재화다. 감속기, 구동기, 엔코더, 브레이크, 제어기 등 다섯개 부품이 협동로봇을 만드는 전체 원가의 68%를 차지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중 현재 개발을 진행 중인 감속기를 제외한 네 개 부품을 자체 생산 중이다. 부품을 자체 생산하면 원가를 절감해 가격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고, 또 연구개발로 기술 자체의 고도화를 꾀할 수 있다.

이정호 대표는 “협동로봇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면서 “내재화하지 못하는 곳은 해당 부품을 주로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원가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생산량은 적은 편이다. 올해 협동로봇의 판매량은 550대 수준인데, 이를 늘리기 위해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 로봇 생산 공장이 들어설 부지를 매입한 상태다. 예정대로 3년 내 공장이 들어서게 될 경우 회사의 협동로봇 생산 능력은 연간 3000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이 대표는 전망했다.

사람처럼 걷는 로봇, 어디에 쓰이나

사족보행과 이족보행 로봇, 정밀지향 마운트 시스템 등도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기술 개발의 목표로 가져가는 영역이다. 이날 발표에서는 일명 ‘로봇개’라고 불리는 사족보행 로봇을 깜짝 등장시켜 시연하기도 했다. 연구원이 리모트 콘트롤러로 조정하자 로봇개는 방향을 바꿔가며 걸었고, 기지개를 펴는 듯 몸을 비틀고 다리를 쭉 뻗었다가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아직은 걷는 움직임이 아주 빠르거나 가볍지는 않았지만, 관절이 무리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족보행은 최근 기술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영역이기도 하다. 테슬라가 AI데이에서 두 발로 걷는 휴머노이드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현대자동차가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앞서 있는 부분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 분야에서 아직은 경쟁자를 따라잡아야 하는 위치다. 다만, 휴보가 미국 국방성의 연구개발담당부서인 다르파(DARPA)가 주최한 로보틱스 챌린지(이하 DRC)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을 만큼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측은 로봇이 사물을 들거나 두발로 걸을 때 꼭 필요한 부품인 ‘유압장치’를 직접 개발하는 등 연구 개발을 하면서 경쟁력을 도모 중이다.

회사의 로드맵에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AI)를 탑재한 협동로봇부터, 무선원격제어로 동작하는 다족 로봇 플랫폼 개발까지 빼곡하게 포함되어 있다. 다족 로봇의 경우 군사 목적에 수요가 가장 크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현재 다족형 로봇을 평지를 시간당 4km 걸을 수 있도록 목표 삼아 개발 중이다. 여기에 로봇팔을 탑재해 비살상무기를 작동하고 센서로 지형지물을 감시하는 능력을 집어 넣으면 대테러 용도나 재난 현장에서 구조 목적으로 쓸 수 있다. 이런 기술은 군사 목적을 넘어 자율주행이나 또는 일상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이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이정호 대표는 “로봇의 장점은 확장성”이라면서 “현재는 로봇을 전문가가 쓰고 있지만 미래에는 정말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쉽게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바뀌면서 산업이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남혜현 기자> smilla@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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