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반도체 지원법, 왜 통과 늦어질까?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산업은 기업이 잘 하면 되는 분야’라는 인식이 컸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공급망 혼란이 발생했고, 그 결과 세계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동맹이 편성되고, 세계 각국이 반도체 지원 정책 마련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죠.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유럽 등지에서도 반도체 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동맹을 맺는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반도체 자국중심주의가 만연해 있는 데다가, 또 다시 시장 불확실성에 의해 공급망 혼란이 발생한다면 또 다시 자국 내에서 반도체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든요.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도체가 필수로 도입돼야 하니, 각국 정부도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 지원법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우리나라 반도체 정책 현황과 문제점, 해결 방안 등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그간 세계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겠군요.

인프라 지원 정책 미비한 한국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나라 반도체 지원법이 어디까지 왔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지난 8월 4일,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가 반도체 지원법을 발의했습니다. 당시 발의한 법안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이 담겼고요.

먼저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을 영위하는 데 제한이 되는 정책을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특화단지 지정을 위한 인⋅허가 신속 처리 ▲전문인력 양성 ▲임용 자격기준 제정 등이 이에 해당되죠. 이 법안은 발의한 지 47일만인 지난 9월 19일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반도체 관련 세액공제가 핵심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 기간 2030년까지 연장 ▲공제액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고요.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은 20%, 중견기업은 25%, 중소기업은 30%까지 세액공제를 받게 됩니다. 기존에 각각 6%, 8%, 1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비중이 꽤 커졌죠.

그런데 문제는 이 법안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상정되지 못한 채 계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담당하고 있던 기재부는 반도체 관련 인프라 구축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죠. 이를 두고 현 정부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액공제 관련 법안이 가장 절실합니다. 공장을 건설할 때 뿐만 아니라 공장을 운영하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거든요. 전기, 용수 등 자원 사용 비용이 막대하게 드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만 살펴봐도 반도체 기업이 생산라인을 만드는 데 지원 정책을 얼마나 중시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칩스법(CHIPS Acts) 통과가 지연되자 인텔,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은 “보조금 없이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었죠.

세계 각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빠르게 통과시키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보니, 국내 기업과 정계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삼성전자 평택공장

가장 큰 문제는 이해도 부족⋅정파 싸움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만 이렇게 반도체 지원법 통과가 더디 이뤄지고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정치 관계자들의 반도체 기술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이유가 꼽히고 있습니다. 이해도가 부족하니 왜 지원 정책이 필요한지, 왜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는 것이지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간 반도체 산업은 ‘기업이 잘 하면 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기술은 어렵습니다.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전문가의 도움 없이 반도체 법안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정계에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이 한 협회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해당 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고, 그러다 보니  반도체 관련 지원이 미비했다”며 “최근 반도체가 세계적인 이슈로 대두되면서 정계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긴 했으나, 단시간에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도체특위가 구성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반도체특위는 정계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가 모여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한 위원회이거든요. 양향자 반도체특위 위원장도 삼성전자 출신 임원이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반도체 특위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민의힘이라는 특정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여야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겁니다.

양향자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반도체 특별법이 조속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 초당적 지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여야가 함께할 수 있는 특위가 필요하다”며 “그럴 때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더 힘을 받아 현재 논의 중인 법안이 빠르게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양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 정부에는 반도체 지원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물론 정계가 반도체 지원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보는 양상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났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반도체 지원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정당 간 분쟁으로 의회에 법안이 계류되고 있었거든요.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자 원하는 세부 법안을 반도체 지원법과 엮었고, 두 정당은 세부 조항에서 오랜 기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하지만 미국의 우리나라의 현황과 다른 점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두 정당 모두 반도체 지원법이 빠른 시일 내에 통과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레이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부 장관이 총대를 매고 “반도체 법안만 별도로 처리하고, 협상 과정을 거쳐 8월4일까지 법안을 완성하라”고 했을 때 이 말에 두 정당 모두 동의했고, 그렇게 8월 9일(현지시각)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에 최종 서명할 수 있었죠.

결국 우리나라도 반도체 지원법을 정쟁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양향자 위원장은 “이슈가 있는 항목들은 상정을 해서 심사를 하면 되는 문제이지만, 이를 완전히 보류해 놓고 쳐다보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며 “첨단 기술 전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이 법안 통과가 절실하고, 다른 국가가 이미 정책 측면에서 앞서가고 있는 만큼 빠른 통과가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도체 산업의 경우에는 초당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반도체 산업만큼은 같은 마음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법안 통과에도 속도를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체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말이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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