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브로드컴이 세계 팹리스 3위에 오르기까지

우리나라는 메모리 강국, 대만은 파운드리 강국, 미국은 반도체 설계(팹리스) 강국이라고 하죠. 메모리 시장에서 매출 기준, 국내 기업 점유율은 약 70% 가량 되고,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66% 정도 됩니다.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8%이고요.

이 중에서 이번 기사에서는 미국 팹리스 기업, 그 중에서도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 3위를 달리고 있는 브로드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2위를 달리고 있는 퀄컴, 엔비디아는 아무래도 언론에 많이 등장했으니까요.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때 퀄컴을 인수하려 했을 정도로 시스템반도체 업계에서는 영향력이 꽤 큽니다. 최근에는 실적 가이던스와 인텔과의 협업 등으로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죠. 브로드컴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성장했고 현재 어떤 사업을 영위하는지, 추후 실적은 어떻게 될 지 한 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M&A에 진심인 브로드컴

브로드컴은 1991년 설립된 미국 팹리스 기업으로, 1998년에 나스닥 시장에 입성했습니다. 분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는 점유율 5위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죠. 그만큼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꽤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케이블 TV용 셋톱박스에 탑재되는 반도체를 납품하는 곳이었는데요. 이후 수차례 인수합병(M&A)을 거치면서 유⋅무선 통신 경쟁력을 강화해 나갔습니다.

M&A는 브로드컴의 경쟁력 강화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간 브로드컴은 통상적으로 1년에 1개의 업체를 인수해 왔습니다. 업체를 인수한 후에는 1년에서 1년 반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사업을 정리하고 수익성을 높일 수 있도록 사업을 최적화했고요. 쉽게 말해 ‘브로드컴화’하는 것이지요. 2000년 이전까지 50개가 넘는 기업을 인수할 정도로, 브로드컴은 M&A에 진심입니다.

지금과 같은 유⋅무선 통신 부품 업체의 형태를 갖춘 시점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통신 업체 아바고 테크놀러지(Avago Technologies)에 합병된 이후입니다. 아바고는 2015년 370억달러(약 41조원)를 들여 브로드컴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아바고는 사명을 브로드컴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유⋅무선 통신 부품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바고와 합쳐진 브로드컴은 소프트웨어 기업을 중점적으로 사들였습니다. 2018년 브로드컴은 미국 통신칩 업체 퀄컴 인수에 실패한 후, 인프라⋅보안 솔루션 등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업체 CA테크놀로지를 189억달러(약 25조원)에 인수했고요. 2019년에는 보안업체 시만텍(Symantec)의 엔터프라이즈 보안 부서를 107억달러(약 15조원)에 매입했죠.

올해 5월에는 미국에 위치한 클라우드 컴퓨팅⋅가상화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VM웨어를 610억달러(약 77조원)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큰 규모의 M&A라 주목을 받았는데요, 브로드컴은 2023년 10월까지 주요 국가의 규제 당국 승인을 받아 모든 VM웨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브로드컴은 반도체 기업인데, 소프트웨어 업체를 계속 인수하고 있죠. 브로드컴이 소프트웨어 기업을 주로 인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출을 지속해서 안정적으로 만들어내고, 사업 영역을 더욱 확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네트워크 시장 경쟁력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두 가지 부문이 좌우하는데, 하드웨어 기술만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하드웨어는 일정 수준 이상 혁신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드웨어 개발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추후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시장 내 영향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네트워크 시장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이 점차 중요해지는 것이지요.

특히 데이터센터 부문에서는 소프트웨어 역량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반도체 프로그래밍이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하거든요. 한 서버 내 자원을 최적화해서 분배하는 소프트웨어 기술도 필요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VM웨어와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할 만합니다. 자원을 최적화해서 분배하는 기술은 그간 VM웨어가 가상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쌓아 왔기 때문이죠. 같은 맥락에서, 브로드컴은 VM웨어 인수를 통해 서버⋅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사업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산호세에 위치한 브로드컴 본사

브로드컴이 호실적 전망한 이유

브로드컴은 지난 1일 회계연도 3분기(5~7월) 실적과 함께 4분기(8~10월)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했습니다. 투자전문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회계연도 3분기에 매출 84억6000만달러(약 11조6409억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월가 예상치인 84억1000만달러(약 11조5553억원)를 상회한 수치입니다.

회계연도 4분기 예상 실적도 전분기 대비 5% 성장한 89억달러(약 12조원)를 달성할 전망입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이 줄줄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가운데에도 브로드컴은 어느 정도 실적 측면에서 선방한 셈이죠.

브로드컴 실적이 견조한 이유로 증권가에서는 아이폰과 인프라 관련 수요 증가를 꼽았습니다.

우선 브로드컴은 애플에 무선 통신칩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무선 통신칩은 통신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필수로 탑재해야 하는 반도체를 말합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애플은 무선 통신칩을 자체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애플은 브로드컴과 장기 계약을 통해 무선 통신칩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팔리는 만큼 브로드컴의 매출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브로드컴은 서버, 스토리지, 커넥티비티 등 엔터프라이즈 통신 솔루션 사업도 영위하고 있습니다. IT 서비스가 늘어나고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양이 방대해지면서 서버⋅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나고 있죠. 세계 곳곳에서 서버⋅데이터센터 증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브로드컴의 엔터프라이즈 통신 솔루션 수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브로드컴은 와이파이7 사업에도 손을 뻗고 있습니다. 와이파이7은 차세대 와이파이 규격으로, 5세대 이동통신(5G)처럼 4차 산업을 위한 와이파이라고 보면 됩니다. 브로드컴은 안정성 높은 저지연 통신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와이파이7 칩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이달 8일에는 인텔과 와이파이7 데모 시연을 했습니다. 와이파이7 솔루션을 갖춘 인텔 코어 프로세서 기반의 노트북에 브로드컴의 와이파이7 확장기를 탑재한 것인데요, 와이파이7 적용 성공 사례를 남긴 셈입니다. 브로드컴과 인텔은 지속해서 와이파이7에 대한 추가 역량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취재에 응한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올해 와이파이7 사업과 관련된 기업은 어느 정도 이득을 볼 예정”이라며 “내년에 와이파이7 전환이 빠르게 일어난다면, 브로드컴과 인텔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브로드컴이 부품 수요 감소로 단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반도체 부족 현상이 아직 시장에 남아 있기 때문에 여전히 브로드컴의 부품 수요는 높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공급망 부족 등 시장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업체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중으로 부품 주문을 넣고 있습니다.

브로드컴에 들어온 주문도 예외는 아니지요. 따라서 브로드컴의 실제 매출은 중복주문량을 제외하면 단기적으로 하락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브로드컴은 소프트웨어 부문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강화해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겠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브로드컴은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년 하나의 기업을 브로드컴이 인수한다고 했으니, 다음 기업은 어디가 될 지 궁금하네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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