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반도체] 언젠간 경쟁자 삼성과 퀄컴, 지금 한 배 탄 이유는?

미국 통신칩 개발업체 퀄컴이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 IFA 2022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했죠. 행사에서 크리스티아노 아몬(Cristiano Amon)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연결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PC를 넘어 자동차와 사물인터넷(IoT) 등 소비자와 만나는 기기의 마지막 단이 모두 연결되는 경험을 할 세상에 대해서 말이죠. 발표 회사가 퀄컴이니 만큼, 그 핵심에는 퀄컴 칩셋 스냅드래곤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퀄컴은 모바일에 탑재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중심으로 제품군을 소개해 왔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는데요, 연초 열리는 IT 전시회인 CES2022와 MWC2022에선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모바일에만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죠. IFC2022에서도 퀄컴은 기조연설을 통해 종합 IT기술업체의 면모를 보여 줬습니다.

퀄컴의 영역 확장에는 당연히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기조연설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곳은 삼성전자입니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는 가장 먼저 삼성전자의 최신 갤럭시 Z시리즈 신제품에 자사 AP 스냅드래곤 8+ 1세대가 탑재됐다고 홍보했죠.

그는 “스냅드래곤과 갤럭시의 조합은 놀랍다”면서 “이미 양사는 분리할 수 없는 파트너”라고 말했습니다. 뒤이어 최원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도 발표를 이어갔고요. 이번 인사이드 반도체에서는 퀄컴과 삼성전자가 이처럼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앞으로 두 기업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생태계 넓히는 삼성⋅퀄컴, 협업 더욱 깊어진다

퀄컴과 삼성전자는 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협력 체제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두 기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양사의 관계에 대해 “삼성이 잘 돼야 퀄컴이 잘 되고, 퀄컴이 칩을 잘 만들어야 삼성도 잘 된다”면서 “두 기업은 한 배를 탄 셈”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두 기업이 한 배를 타게 된 배경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넓혀가기 위함입니다. 우선 스마트폰 측면부터 살펴보면, 퀄컴은 AP 중에서도 주로 프리미엄 제품에 탑재되는 칩셋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프리미엄 안드로이드 시장에서는 퀄컴 AP가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애플이 삼성전자를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그 뒤를 바로 삼성이 잇고 있습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10위권 안에 애플이 5개, 삼성이 4개의 제품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삼성전자 보급형 스마트폰인 갤럭시 A 시리즈도 해당 순위 내에 포함돼 있었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이 애플 다음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등 디바이스에 자사 운영체제 iOS를 적용하고, 자체 개발한 칩셋 ‘애플실리콘(Apple silicon)’을 탑재합니다. 다 스스로 하려고 하는 애플의 생태계를 뚫고 다른 업체가 끼어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퀄컴 입장에서 AP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고객사는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하는 삼성입니다. 삼성전자도 자사 스마트폰에 좋은 AP를 적용한다면 그만큼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올라가게 되겠죠.

여기에 퀄컴과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넘어 디바이스 전반에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퀄컴은 올해 초부터 모바일과 PC, 자동차, IoT, 엣지 등과의 연결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아몬 CEO는 이번 기조연설에서 ”컴퓨터 디바이스, 자동차, 사물인터넷, 엣지 등에서도 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며, 회사 가정 등에서의 사용자 경험도 바뀌고 있다”면서 “이제는 모든 디바이스가 똑똑해지고 AI화되고 클라우드와 연결되는 새로운 세상에 맞춰 스냅드래곤도 사용돼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퀄컴은 IFC에서 메타 플랫폼(Meta Platforms)과 전략적 협업 체결을 발표하고, 미국 음향장비 업체 보스(Bose)와도 협업관계를 지속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퀄컴은 스냅드래곤을 메타버스, 무선 오디오 등에도 적용하고 생태계를 넓히겠다는 포부도 함께 전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모바일 칩셋 하나로만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부문에도 손을 뻗기 시작하는 것이죠.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품 간 호환이 잘 되고 삼성 생태계가 견고하게 구축될 수 있는 ‘원 삼성(One Samsung)’이 되어야 한다”면서 “사업부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올해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개최했던 MWC 2022 행사에서 자사 노트북 ‘갤럭시북’ 신제품을 공개하면서 매끄러운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 Things)’를 중심으로 기기 간 연결성과 협업 체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신사업 AI부문도 강화하고 있는데요, ‘똑똑한 디바이스와 연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국 삼성전자와 퀄컴, 두 기업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자체 생태계 구축입니다. 이제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 통신 기술 관련 수요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삼성전자와 퀄컴은 모바일의 근간이 되는 스마트폰 부문에서부터 협력을 해 왔는데요, 추후 두 기업은 그간의 협업 체제를 기반으로 생태계를 넓히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양사는 더욱 깊은 밀월 관계를 맺게 되겠죠.

삼성, 퀄컴과 밀월관계 얼마나 이어갈까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두 기업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의존도를 줄이려고 할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퀄컴 입장부터 살펴봅시다. 물론 퀄컴은 삼성전자를 중요한 협력사로 여기고 있지만, 다른 기업과도 협업 체제를 지속해서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업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험할 뿐더러, 삼성전자가 다루지 않고 있는 사업도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사업을 지속하고 자체 AP 개발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사업 중단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재 중장기 경쟁력 강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고,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주요 고객사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문 부사장도 올해 초 “커스터마이징 AP 개발을 고민해 보겠다”고 밝힌 데 이어, 언팩 이후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관련 팀과 파트너사가 열심히 자체 AP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구체화되는 시점이 되면 시장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체 AP를 개발하든 이전과 같은 형태로 엑시노스 사업을 영위하든, 삼성전자가 AP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삼성전자가 AP 사업을 다시 활성화한다면 그만큼 퀄컴 의존도는 줄어들겠죠.

증권가에서는 내년에 새로운 엑시노스 칩셋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봅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 엑시노스가 내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것”이라며“다만 성능이나 평가 등은 출시 이후를 봐야 알 수 있고, 이 때 성능에 따라 추후 삼성전자의 AP사업 방향성이 갈릴 전망”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보급형 AP로 방향성을 전환한다고 예측하는데, 이는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 반도체 시장 전문가는 “애초에 삼성 엑시노스는 프리미엄 제품군을 타깃으로 개발된 AP인데, 중저가형으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개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여기에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을 중점적으로 밀고 간다고 한 만큼, 엑시노스는 중저가형으로 가기보다는 프리미엄 제품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분간 삼성은 퀄컴과 협업체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목표도 같거든요. 또한 두 기업 모두 애플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밀월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추후 사업의 위험성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자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의 의존도를 줄이려고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는 삼성전자 AP사업 상황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 두 기업의 행보를 한 번 지켜보자구요.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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