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을 기업 전략과 경쟁 구도, 시장 배경과 엮어서 설명합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식이 매일같이 쏟아지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 기업의 전략과 성장 배경을 알면 왜 그 제품을 출시했는지, 회사의 전략과 특성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 넓게는 시장 상황과 전망을 살펴볼 수도 있죠. 하나씩 함께 파고 들어가보면 언젠가 어려웠던 기술 회사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올 거예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에 최종 서명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꼽자면 ▲기후변화 대응 ▲헬스케어⋅의료보장 확충 ▲대기업 증세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해당 법안은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통해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달러(약 484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죠.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추진해 오던 BBB(Build Back Better) 법안의 축소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도 떠들썩합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한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안에는 전기차를 구매할 시 신차는 최대 7500달러(약 984만원), 중고차는 최대 4000달러(약 525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기차 시장을 파격적으로 지원해 널리 보급하겠다는 계획인데, 이 말은 곧 해당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 수요도 증가함을 의미하죠.

그런데 여기에 미국은 자국 중심의 세부 조항을 덧붙였습니다.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핵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며, 미국에서 조립과 생산 과정을 거쳐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든요. 여기에 일정 비율 이상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 핵심광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에 따른 국내 배터리 기업의 반응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우선 국내 배터리 기업은 미국 시장을 두고 중국 기업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득이라고 보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이 아예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해버리니, 우리나라가 미국 배터리 수요를 대부분 충족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국내 배터리 기업이 중국으로부터 대부분의 원재료를 들여 오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중국 제재가 마냥 좋게 작용한다고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의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이드 배터리에서는 IRA 법안에 대한 국내 배터리 업게의 의견과 추후 전망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 “반사이익 기대중”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내 기업은 미국의 이번 IRA 법안 도입으로 반사이익을 볼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주요 배터리 3사 모두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거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해야 한다는 조항은 국내 배터리 기업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게다가 CATL 등 중국 1, 2위 배터리 기업은 미국의 직접 제재 대상입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 1위 배터리 기업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33.7%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세계 1위를 기록했죠. 그 뒤를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이 14.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면서 2위 자리를 달성했죠.

CATL은 올해 초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쳐 왔습니다. 미국은 전기차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집권할 당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는 지지부진했지만, 같은 시기 유럽 등지에서는 친환경 정책을 통해 전기차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단행해 왔습니다. 정권이 교체된 이후 미국은 뒤늦게 시장을 따라잡기 위해 전기차 관련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 시장에 통 큰 투자를 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미국 배터리 시장은 블루오션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장을 중국이 차지할 수 없게 된 겁니다.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국내 배터리 기업이 입게 되겠죠. 한 국내 주요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기업의 경쟁사는 CATL, BYD 등 중국 기업”이라며 “미국이 선제적으로 해당 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고 있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기업은 이번 법안 통과를 기회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원재료 측면에서는 단기적으로 타격이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중국 원재료 시장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산업은 음극재⋅양극재 부문에서70% 이상, 분리막은 50% 이상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중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양극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구체의 경우 92% 가량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국내 배터리 기업은 보도된 만큼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그간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며 “합작법인 설립이나 장기 공급계약 등의 방식을 취해 공급망을 다원화하고 위험요소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우려만큼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 관계자도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당장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이번 법안 통과를 다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주요 소재는 장기공급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국내 배터리 업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공급망 다변화는 이미 기업에게 주어졌던 과제이고 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마냥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IRA 법안이 우리나라에게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먼저 국내 완성차 업체 발등에는 불이 떨어진 셈이죠. 현대기아차의 경우 전기차 모델의 전량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미국의 지원금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미국 판매비중이 높기 때문에 해당 시장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현대차의 경우 올해 말부터 미국 엘리베마주 공장에서 전기차 모델 제네시스 GV70을 생산하고, 조지아주에도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지아주 공장이 2025년 완공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규 모델을 통해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현대기아차는 미국 투자를 더 늘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상황에서, 미국에 투자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겠죠. 따라서 조만간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의사결정을 하게 될 전망입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경우에는 미국 시장을 차지하는 대신, 유럽 시장에서 약간 한 걸음 물러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CATL이 미국의 이번 제재를 계기로 유럽 시장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유럽 내에서는 미국산 자동차 판매 비중이 높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가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따라서 CATL을 비롯한 중국 기업은 남은 시장인 유럽을 공격적으로 공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기업이 유럽 내 공장을 증설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됩니다. 다만 유럽 시장에는 국내 기업도 진출해 있는데요, 결국 유럽 내에서 배터리 경쟁이 격화될 전망입니다. 추후 국내 기업이 유럽에서 한 발 빼고 미주지역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갈 수도 있고요.

다만 CATL이 단시간에 유럽 시장을 장악하기에는 약간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한 배터리 시장 전문가는 “유럽에는 배터리 공장을 운영할 만한 인력이 부족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배터리 생산성을 높이는 데 어려운 입지에 있다”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유럽 시장 진출 초기에는 생산성을 올리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CATL도 마찬가지로 초기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IRA 법안은 국내에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마냥 우리나라에게 좋은 법안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여기에서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바이든은 미국의 대통령이고, 미국은 자국중심주의적인 정책을 지속해서 내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나라도 이 같은 법안의 이득은 취해야겠지만, 마냥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위험하겠죠.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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