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서명까지 마친 美 칩스법, 한국에 미칠 영향은?

“미국이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20억달러(약 68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에 서명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의회 통과를 마친 반도체 지원법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을 마치면서, 법안이 발효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하원의장, 척 슈머(Chuck Schumer)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지나 레이몬도(Gina Raimondo) 상무장관과 반도체 업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의회 통과를 마친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했다.

미국 칩스법 통과로 업계에서는 그간 미국 투자를 진행해 놨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지원금 혜택을 받고 이득을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칩스법 자체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이기 때문에, 추후 국내 기업이 중국과 교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도 함께 나오고 있다.

칩스법 도입하는 미국의 속내는

바이든 대통령은 칩스법 서명 전 연설을 통해 “30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반도체의 30%가 미국에서 생산됐으나, 현재는 10%도 되지 않는다”며 “중국과 한국, 유럽은 반도체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역사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미국의 이번 칩스법은 미국 국민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법으로, 우리는 여기 미국에서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칩스법은) 미국이 그간 시행한 산업 개발 프로그램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다른 국가를 견제하는 한편,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을 키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외신도 “아시아 각국 정부는 오랜 기간 반도체 생산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서방 국가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반도체 제조 시장을 차지했다”며 “미국 정부의 칩스법은 초당적 법안으로,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해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반도체를 보다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과 미국 현지 외신을 살펴보면, 미국은 반도체 생산 측면에서 아시아를 견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 팹리스 기업이 현재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TSMC, 삼성전자 등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를 거쳐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아시아 국가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아시아에 위치한 주요 반도체 기업에게 러브콜을 보내 자국 내 생산라인을 유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은 지속해서 자국 중심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가기 위한 노력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미국은 자국 중심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난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주요 기업과 회의를 통해 “미국이 반도체 선두국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 정부가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기밀정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반도체 지원법 또한 미국 중심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는 셈이다.

미국과 동맹 맺어야 하지만… “국내 투자 절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도 미국 칩스법 통과로 이득을 볼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테일러시에도 170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신설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15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후공정 패키지 공장, 연구개발(R&D) 센터 등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해당 기업이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해 밝힌 바는 없지만, 법안대로라면 지원금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살펴보면, 반도체 산업에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 장비 등 기술 측면에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해당 부문은 국산화도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 불가피하다. 복수의 반도체 시장 전문가가 “미국과의 동맹 맺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반도체 법안이 우리나라에 온전히 이득만 가져다 준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칩스법에 포함된 “미국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 혹은 기업과 제조능력을 확대하지 말라”는 조항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조항이 그간 중국과 많은 교역을 이뤄 놨던 국내 기업에게 독소조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은 2005년을 기점으로 2020년까지 중국에 대한 투자를 압도적으로 늘려 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중국은 반도체 부문에서 협업 체제를 이미 단단히 다져 놓았다. 따라서 법안에 의해 단시간에 한국이 중국과 교역을 끊게 된다면, 반도체 수출 측면에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과 협업 관계는 다질 필요는 있지만, 특정 국가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국내 투자도 적극적으로 단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장 해외 투자를 늘리면 국내 투자가 줄어들고, 이는 곧 또 다른 국가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우리 기업은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면서도 “특정 국가에 편중하기보다는 현재의 공급망 재편을 기획하고, 특히 우리 자체 공급망 안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배유미 기자>youme@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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